[고향 가는 길] 광산서 골병들어 숨진 조카에게

남한에 조류 인플루엔자 즉 AI가 번진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다행히 더 이상 조류독감 발생 지역이 생기지 않고 있어 남한 당국도 한시름 놓고 있습니다.
워싱턴-양윤정 yangso@rfa.org
2008.05.28
이번 조류독감으로 인해 닭 농가 등 닭고기 요리 식당들의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는데요. 한국식품연구원 김영진 박사팀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즉 조류독감의 바이러스 증식을 예방 억제하는 음식을 연구 발표했는데요. 뭐냐면은요… 김치입니다. 사실 색다를 것은 없습니다. 김치의 효능은 지난번 중국에 사쓰가 발생했을 때 김치의 효능이 세계적으로 이미 알려졌는데요. 이번에 조류독감이 남한에서 발병하자 조류독감 예방 및 억제 음식을 연구했는데 연구팀은 조류독감 예방과 억제에 "김치 이상 더 좋은 것이 없다"라는 결과를 내 놓았습니다.

'김치' 효자네요. 음식이 국위선양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와인 이 '포도주'하면 프랑스가 떠오르고요. 스시 '회'하면 일본이 또 '카레'하면 인도 이런 식으로요. 이젠 '김치' 하면 한국이 생각이 나겠죠?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또 건강에도 좋은 '김치' 갑자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포기김치 쭉쭉 찢어 얹어서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기네요.

오늘도 훈훈한 소식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그리고 음악 갖고 떠나겠습니다. 먼저 노래한곡 듣고 시작할게요.

(정광태 / 김치주제가)

탈북자 김호연씨께서 그리운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가 서로 헤어진지도 1년이 모자라는 10년이 되었구먼.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소? 정치적 차별 대우와 감시, 굶주림 속에서 조카를 비롯한 온 가족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 삼촌이지만 별 다른 대책 없이 세월의 흐름과 같이 나이만 먹어 이제는 나도 70을 바라보고 있소.

해방 전에 사진사를 했다는 것이 죄가 되어 너의 아버지는 친일 주구로 몰리게 되었고 할 수 없이 부모형제와 어린 자식들을 정든 고향에 남겨두고 38선을 넘었지 그렇게 한국에 온 네 아버지 때문에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정치적 핍박과 차별대우를 받았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차려지는 것이 오직 하나 '월남자 가족'은 응당 말없이 당에 충성하는 것. 그래야만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것뿐이 아니었소.

큰 조카가 영영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소. 광산에서 작업반장을 하던 큰 조카의 영웅담은 온 광산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눈 감는 순간까지도 자기의 소원을 성취 못했소.

광석을 실어 나르던 삭도가 쇠와 줄이 중간에 걸리며 언제 끊어질지 모르던 위기일발의 순간, 온 광산이 수백 미터 위에서 대롱대롱 흔들거리는 수십 개의 삭도를 바라보면서 숨죽이고 있던 그 순간, 큰 조카는 온 광산 종업원들과 지휘관들 앞에서 "제가 저 쇠밧줄을 연결시키겠습니다. 전부 임무라고 생각하고 생산을 정상화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만약 살아 돌아오지 못하면…" 라고 다음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저를 노동당원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저의 자식들을 당원의 아들, 딸이라고… 하며 사고지점까지 향해 갔지. 고산지에 겨울이라 그날따라 바람은 얼마나 기승을 부리는지 큰 조카가 탄 드럼통은 마치 공중곡예를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바람 따라 마구 흔들어댔지. 심장박동소리도 멈추듯 다들 손에 땀을 쥐었지만 결국 광산의 생산을 정상화 했지.. 하지만 모두들 온 광산의 영웅이라 칭찬했지만 월남한 아버지 때문에 "숨은 영웅"이라는 접두사를 앞에 달면서 70도 못되어 골병이 들어 사망했다니 정말 억울하다. 이것이 나나 조카들 앞에 차려진 운명이었소. 나 역시 30대 후반까지도 노동당원이 못되고 말이지.

그런데 우리 운명이 이렇게 180도 변할 줄 상상인들 해 보았겠소. 내 6촌 동생이 흠잡을 데 없이 체계적인데다 온갖 악기는 다 유능하게 다뤘는데 인민군 협주단에 발탁돼 단소로 "용진가"를 불렀었지 그 단소소리를 들은 김일성의 딸 김경희가 자기 아버지에게 보고하면서 우리가족은 혁명가 유가족이란 명예를 받았지만 조카네는 월남한 아버지 때문에 계속 그늘에서 살았지 나는 대학교수로 승승장구했지만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조카들은 그래도 이 유급 당일꾼인 이 삼촌을 큰 기둥으로 자랑으로 여겼지. 조카들의 그 마음이 고맙기에 앞서 나를 몹시도 아프게 하였다오. 그런 나를 조카들은 이 삼촌이 풀죽으로 끼니를 잇고 몸이 퉁퉁 부어오르자 우리 가문의 기둥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며 '우리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삼촌만이라도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라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압록강가까지 데리고 와서 안내원에게 맡기었지. 하지만 우리의 운명은 가혹했지 얼마간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면 돌아가려고 했는데 북한 보위부에서 날 찾는다는 소식에 잡혀서 개죽음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을 굳혔소.

그러나 한국행 역시 험난한 노정이었소.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몽골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몽골주재 한국 대사관에 갔고 한국행에 성공했소.

여기 온지 7년째… 한국에서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불편없이 모든 조건을 다 들어주고 있소. 또 나는 나이가 많다고 여러 가지 추가 혜택도 받고 있소. 내 나이 70이지만 오히려 그 곳을 떠날 때보다 더 젊어진 것 같소 .

그 후 이 삼촌 때문에 조카들이 받고 있을 정치적 핍박과 차별대우의 값을 치르려고 수천에 걸쳐 지원금을 보냈는데 한 번도 성공 못했구려. 금년 초에 이곳에 온 고향 사람들을 만나 조카들의 소식을 들었는데 힘들게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소. 조금만 기다려 주오.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면서 강하게 살아갑시다. 건강히 잘 지내요. 나도 죽어서라도 고향에 꼭 가고 싶은 심정이오. 죽기에 앞서 꼭 살아서가기만을 희망하오. 안녕히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네.. 삼촌이 조카한테 쓴 편지인데요. 운명이라고 하나요. 팔자라고 하나요.. 옛날 어른들이 이런 말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지질이도 복 없다’는 삼촌이 생각하기에 조카들이 안타깝고 가슴이 에일 정도로 험난한 인생을 산 조카들에게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썼는데요. 뭐 어떻게 해 줄 수도 없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듣는 우리의 마음도 착잡하네요.

(사랑이라는 이유로 / 조트리오)

고향가는 길… 함께 하고 계십니다.

저희 고향가는 길에서는 탈북자들의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소개해 드리고 있는데요. 구구절절마다 애절하고 한 맺힌 사연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요즘 남한에 유행하고 있는 한 개그맨, 희극인의 유행어중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 라는 말이 생각이 나는데요. 분단의 현실로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생이별로 한번 그리고 멀지도 않는 지척에 가족들을 두고 만나지도 보지도 못하는 아픔으로 또 한 번 죽이는 정말 세계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인데요. 탈북자들 편지를 보면 통일이 될 때까지 제발 가족이나 친지가 살아만 있어달라는 간절한 희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들은 남한에 와서 또 제3국으로 가서 정착해 편안히 살고 있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을 가족을 친지를 잊지 못하는 고통을 함께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그들…

유행어인 나를 두번 죽이는 거예요. 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유행어인 "당신과 함께 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나의 기쁨이에요" 라고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가는 길' 임재범의 '고해' 들으시면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 더 따뜻한 소식과 편지 갖고 다시 찾아 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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