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 탈북자 황보 혁


2005.02.02

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 2000년 가족과 함께 탈북해서 중국과 버어마를 거쳐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황보 혁 씨의 이야기입니다. 황보 혁 씨는 현재 남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하고 있습니다. 담당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탈북자 황보 혁 씨는 지난 81년 함경북도 청진시 부령구역 사할이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9살 때 까지 그곳에서 살았고 탈북 전까지는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구에서 인민군 입대를 2달 남겨놓고 가족과 함께 탈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황보 혁: 솔직히 탈북할 마음은 없었는데 부모님들이 제가 군대 입대 하니까 13년 동안 고생하는 것 못 보겠다고 탈북하자고 하더라고요. 군대에 가게 생겨서...

탈북 당시인 97년은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한 때로 굶어죽는 이들이 숱하게 많았고 군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황보 혁: 무척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군인들이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도둑질 하고 그랬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런 것을 다 봤거든요.

살기 위해 &# xC11C; 탈북을 했지만 북한을 떠났다고 해서 곧바로 남한으로 가자고한 것은 아니었다고 황보 혁 씨는 설명했습니다.

황보 혁: 탈북해서 남한에 오기 까지는 딱 2년 걸렸습니다. 탈북 했을 때는 한국으로 올 생각은 없었고 중국에서 살다가 통일되면 나가자고 해서 왔는데, 중국에서 1년 정도 살면서 한국 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한국에 있는 친척을 찾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친척이 돈을 대줘서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남한행을 위해 중국에서 버어마로 갔고, 그곳에서는 불법체류자로 버어마 경찰에 체포돼 6개월여 간의 감옥생활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 뒤 남한에 이미 도착했던 가족들의 노력으로 결국 무사히 남한 땅을 밟을 수 있었고, 그도 여느 탈북자들이 경험하는 &# xB0A8;한사회적응 과정을 겪게 됩니다. </p> <p> <font color="#6666cc"> 황보 혁: 처음 도착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서 돈으로 성공해보자 &# xACE0;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생활 조금씩 적응을 하다보니까 이 사회에서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다시 들어가서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죠. </font> </p> <p> 남한생활이 4년여가 됐지만 지금도 가끔씩은 자신이 아직 북한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보지만 남한에 온 것에 대한 후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p> <p> <font color="#6666cc"> 황보 혁: 남한에서 대학생으로 생활하는 것은 솔직히 학교생활에 적응이 안돼서 힘들었는데 긍지와 자부심이 있습니다. 북한에 있었으면 군대 나가서 지금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남한에서 당당히 대학생이 됐다는 그런 것 때문에 뿌듯합니다. </font> </p> <p> 황보 혁 씨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서는 졸업하기 위해 학생 모두가 영어시험을 보는데 영어 실력이 딸리는 그에게는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1년 동안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로 가서 생활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p> <p> <font color="#6666cc"> 황보 혁: 뿌듯했던 것이 북한에 있었으면 솔직히 여권도 안 나오고, 내가 호주라는 나라를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중국에 올 때도 외국이지만 여권이나 비자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두만강 건너서 왔는데, 호주를 갈 때는 제 이름으로 나온 여권을 가지고 비자 받아서 가니까 ...북한에 있었으면 이런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뿌듯하더라고요. </font> </p> <p> 황보 혁 씨는 호주의 대학으로 유학을 간 것이 아니고, 여행자 신분으로 그곳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영어를 배웠고, 호주에 거주하는 한인동포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의 생활비를 자력으로 충당했다고 합니다. 호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현재 남한으로 돌아간 그는 이제 1년 반 남은 대학 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p> <p> <font color="#6666cc"> 황보 혁: 일단은 취직을 해야죠. 학교 다니면서 취업공부해서 취직할겁니다.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펼쳐 보다가 안 되면, 회사에서 쫓겨나기 전에 제가 먼저 나와야죠. 그래서 사업을 하던 그럴 겁니다. </font> </p> <p> 그는 또 일부 남한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을 못하는 그런 나약한 존재로 인식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며며 오히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보다 탈북자들이 강하다고 말합니다. </p> <p> <font color="#6666cc"> 황보 혁: 저뿐만 아니라 탈북자분들을 대부분 보면 의지가 강한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그런 &# xB9CE;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죠. 야밤에 두만강을 건너오고.. 솔직히 죽음 앞에까지 갔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것을 보면 의지가 강한 것 같고. 한국 사람들이 자살하고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이해가 안갑니다. 저희는 살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여기 사람들은 편하게 살아서 그런지. </font> </p> <p> 올해 26세인 황보 혁 씨는 결혼은 남한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족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이 될 때 하게 될 것이라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p> <p> 이진서기자 </p> <div class="copyright"> &#169; 2005 Radio Free Asia </div> <!--end content div--> <div class="borderbox" class="linklist"> <h4> 남한의 보금자리 </h4> <ul> <li> <a href="/korean/weekly_program/nest/nest_nk-20050126.html"> 남한의 보금자리 - 남남북녀 여금주, 김상희 부부 </a> </li> <li> <a href="/korean/weekly_program/nest/nest_nk-20050119.html"> 남한의 보금자리 - 탈북자 여금용, 굴염경 부부 </a> </li> <li> <a href="/korean/weekly_program/nest/nest_nk-20050112.html"> 남한의 보금자리 - 남한생활 10년 탈북자 여만철 </a> </li> <li> <a href="/korean/weekly_program/nest/nest_nk-20041229.html"> 남한의 보금자리 - 남한 국가대표 아이스하키선수 탈북여성 황보영 </a> </li> </ul> </div> <!--end sidebar div--> <!--IE6 likes this div--> <!--end wrapper div--> <!--end containe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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