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보안부· 보위부 왜 성으로 바뀌었나?

서울-문성휘 xallsl@rfa.org
2017.04.03
kim_inspection_1 숙청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상.
사진 - 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 알아보는 ‘북한은 오늘’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문성휘입니다.

‘공산당 선언’을 통해 코민테른이라는 첫 국제공산주의 조직을 만든 칼 맑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사회주의는 불평등한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이상이 실현된 공산주의로 가는 과도적 사회이다.

한마디로 사회주의는 영원한 제도가 아니고 인간 세상이 공산주의로 진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걸쳐가는 임시적인 사회라는 얘기입니다. 북한 세습봉건 체제의 골간인 주체사상에서도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적 사회라고 밝혔습니다.

공산주의가 뭡니까? 화폐가 없어지는 사회, 누구나 일하고 싶으면 마음껏 일을 하고 필요에 따라 물질적인 수단을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사회가 곧 공산주의라고 했습니다. 그런 세상을 꿈꾸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북한영화 ‘월미도’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아득한 옛적부터 이 땅에서 살았고 그때에도 종달새는 울었소. 난 그 종달새가 우짖는 곳에서 왜놈의 채찍 밑에 뼈가 휘도록 고역살이를 했소. 그러니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이겠소?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종달새 우짖는 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낙원을 위해 피땀을 바쳤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내놓은 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리키는 대로 별 짓을 다 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후대들에게 차례진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선대들이 남긴 피와 땀은 돈과 권세가 있는 몇몇 노동당 간부들이 모두 차지했습니다. 해방 전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처럼 지금 북한의 인민들은 꿈조차 마음대로 꿀 수 없습니다. 이밥에 기와집을 쓰고 살아 보려던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젠 마음껏 꿈을 꾸는 세상을 북한 인민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인민들이 하나로 뭉쳐 꿈을 꿀 수 있는 권리를 찾겠다고 나서면 그 무한한 힘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자, 북한은 오늘 시작하겠습니다.

북한의 언론들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3일 앞둔 4월 12일에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은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통해 기존의 국방위원회를 해산하고 대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옛 국방위원회나 신설된 국무위원회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산하 주요 사법기관들인 인민보안부와 국가안전보위부를 각각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성으로 개편했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장이었던 김원홍은 노동당 정치국 위원이었습니다. 같은 사법기관이지만 인민보인부장인 최부일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북한의 서열로 따지면 김원홍에 밀리는 수준이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기존 인민보안부와 국가안전보위부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을 때 부장들이었던 최부일과 김원홍은 매달 중앙으로부터 내각총리 박봉주와 꼭 같은 기준의 생필품과 식료품을 공급 받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민보안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성으로 이름이 바뀐 뒤 이들 수장들인 최부일과 김원홍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내각 산하 수산상이라든지 농업상과 같은 수준의 공급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또 소식통들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가 성으로 격이 낮아진 것은 기존 국방위원회가 국무위원회로 바뀌면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방위원회가 해산되고 국무위원회가 조직된 뒤 서열이 바뀐 기관은 인민보안부와 국가안전보위부밖에 없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소식통들은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최근 자유아시아방송과 연계가 닿은 자강도의 한 소식통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가 갑자기 국가안전보위성과 인민보안성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배경은 사법권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암투가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인민보안부가 맡아야 할 사법권을 옛 국가안전보위부가 제 멋대로 행사하고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인민보안부 간부들을 끊임없이 감시하며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의사에 맞지 않는다면 보복성으로 죄를 들씌웠다고 소식통은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인민보안부 간부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간부사업까지 개입하는 문제와 간련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도 국가안전보위부에 여러 차례 경고했고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의 도를 넘어선 행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했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8월에는 국가안전보위부가 내각 전력성의 ‘북창화력발전소’ 개보수 공사권을 빼앗아내자 격분한 인민군총정치국장 황병서가 이 사실을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11군단 병력을 들이밀어 ‘현장 지휘부’를 밀어버렸다고 소식통은 지적했습니다.

양강도의 한 소식통도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가 성으로 격이 낮아진 동기는 지난해 6월 초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송림시를 잇는 도로에서 국가보위부 10호 초소와 인민보안부 기동타격대 사이에 있었던 패싸움도 원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북한의 각 지방과 지방을 잇는 도로들엔 국가안전보위부가 관할하는 ‘10호 초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노동당 번호판과 인민군 번호판을 달지 않은 모든 운전기재들, 지나가는 행인들의 짐과 몸수색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싸움은 사리원과 평양으로 이어진 도로에서 송림시로 갈라지는 도로에 위치한 ‘10호 초소’ 군인들이 인민보안부 기동타격대 자동차를 가로막고 숱한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지휘관들의 몸을 낱낱이 수색하면서 시작됐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기동타격대 지휘관들이 거칠게 항의했음에도 ‘10호 초소’ 군인들이 끝까지 몸수색을 고집했고 이에 분노한 기동타격대 병사들이 초소원들을 집단 구타하면서 초소내부의 기물들을 모조리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급해 맞은 ‘10호 초소’ 군인들이 공중에 대고 자동보총(소총)을 마구 난사했다”며 “인민보안부 기동타격대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칫 그들이 무기를 소지했다면 큰 총격전으로 번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로 조직된 기동타격대는 평시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다며 이 싸움으로 국가안전보위부 ‘10호 초소’ 군인들 9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인민군 경무국이 동원돼서야 겨우 싸움을 말릴 수 있었다고 소식통은 언급했습니다.

현재 북한 당국은 ‘10호 초소’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며 김원홍은 이 사건으로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이 시작되자 산하 ‘612 상무’를 동원해 가짜 진술서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숱한 지방 당 간부들을 숙청했다고 소식통은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국가안전보위성만이 아닌 인민보안성도 사건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인민보안상 최부일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들의 구체적인 행방은 오는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오늘’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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