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이 희망의 근원지 입니다’

워싱턴-이장균 leec@rfa.org
2014.12.31
wish_ball_b 서울 강남구는 31일까지 신논현역에서 강남역 사거리까지 양방향 인도에 60개의 초대형 '위시 볼(Wish Ball)'을 설치해 시민들의 새해 희망 메시지를 적어 넣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음악 : Anthem / Vangelis)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으면 헛된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말입니다.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온 2014년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새해 을미년 ‘2015년’이 밝아오는 새벽입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 날의 기억들은 어둠 속에 묻어버리고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힘을 내야 할 시간입니다.

‘라디오문화마당 - 세상을 만나자’는 지난 한 해 동안에도 한국의 기독교 방송에서 공개방송으로 마련하고 있는 강연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꿈과 희망을 주는 좋은 내용을 발췌해서 ‘용기를 주는 한 마디’ 코너에서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오늘은 세 분의 강사가 전해 드리는 희망에 관한 얘기와 음악을 통해 마음 속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다짐해 보는 시간으로 꾸며 드립니다.

국제 인문학 잡지 '인디고'라고 하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편집장 박용준 씨는 미항공우주국에서 찍은 지구의 야경 사진에서 가장 어두운 북한 쪽을 보여주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땅에서도 희망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희망의 근원지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박용준 : 네, 이 지도는 나사(NASA) 항공사에서 찍은 지구의 밤 사진입니다. 아름답죠? 하지만 사진을 다시 한번 보게 되면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린 때론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게 되고 또 혹은 보고 싶은 것들만 보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이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은 미국 동부, 일본, 한국, 유럽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은 훨씬 많죠 아프리카, 호주, 남미, 그리고 북한은 너무 정말이지 너무 어둠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도시의 밤하늘을 비추는 불빛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문명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이 지도 안에도 사실은 그 문명의 격차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정말 지독하게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간 운명의 동시대적인 공존에 대해서 실은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아는 것 그로부터 사실 희망도 인간적인 삶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한 개인의 선택이 전지구적 변화를 일으켜 낼 수 있다라고 하는 그 사실 거기서부터 희망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대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걸 의심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그걸 역으로 생각해 보면 한 인간이 전 지구를 얼마만큼 망쳐놓을 수 있는지도 히틀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손에, 혹은 한 인간의 생각 때문에 500만 명, 600만 명이 죽었으니까요
우리의 힘은 훨씬 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까지 미칠 수가 있습니다. 우린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개인의 한 노력과 선한 꿈이 이뤄낼 수 있는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범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존재의 있음과 없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뢰와 불신, 내가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희망의 진원지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간디가 얘기했듯이 '당신이 원하는 변화, 그 변화가 되어라' 희망의 진원지는 선한 꿈을 갖고 있는 혹은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여러분 그리고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희망을 믿는 것, 그 희망이 내가 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믿는 것, 그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음악 : 출발 / 김동률)

134cm로 쏘아올린 희망 - 김해영 국제사회복지사


국제 사회복지사인 김해영 씨는 키가 134cm밖에 되지 않습니다.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아버지의 실수로 척추장애인이 됐고, 초등학교 때 어머니의 학대를 이기지 못해 무작정 가출했습니다.

가난과 장애를 가진 134cm의 소녀에게 세상은 거대한 암흑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김해영 씨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직업학교에서 14년간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오늘의 김해영 씨가 있게 된 것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장애까지 가진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김해영 : 제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열네 살 초등학교 졸업 장애인 여자 아이.. 그리고 또 저희 어머니께서 사고로 머리를 잘 쳐서 정신질환을 앓고 계셨고 또 5남매의 저는 맏이였고 제가 초등학교 졸업하던 그 해에 저의 아버지께서도 이 세상살기 너무 힘들다 그래서 도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는 저희 어머니의 학대와 매 타작을 견디지 못해서 가출을 해야 했습니다. 열네 살 저는 갈 데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은 굉장히 암흑 같았고 저를 알아주고 보호해 주고 인도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일 년 후에 저는 두 가지를 했습니다. 기계 편물 기술을 배웠고 또 종교를 갖게 됐습니다. 물론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 다섯 되던 해에 저한테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 째는 그 때까지 제 마음에 어떤 게 있었냐 하면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딱 죽어버리자..’ 그런데 저의 아버지께서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죽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죽을만큼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자, 그것이 저한테 한 약속입니다. 두 번 째 저 자신한테 했던 약속은 제가 저 자신을 곰곰이 생각하니까 제가 장애를 면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무슨 수로 제 키를 늘리겠습니까?
그래서 장애인이 된 저 자신을 제가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약속을 했습니다.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몸이 아퍼, 그렇다면 내가 마음 아픈 일은 안 시켜줄 거야. 그렇게 저한테 약속을 했습니다.
마음 아픈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참 마음 먹기에 달렸다 라는 것을 저는 그 때 알게 됐습니다. 저는 편물 기술을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죽을 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그 하루를 보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84년도 전북장애인기능경기대회 1등, 그 다음에 전국기능경기대회 1등, 85년도 세계장애인기능경기대회 국가대표로 가서 1등 했습니다
저는 잘 나갔습니다. 성공 성공 성공하며 20대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경쟁하고 성공하던 그 어느 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인생을 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내가 이렇게 성공 성공하다 살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
그렇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인가.. 아프리카 보추아나였습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그곳에 가서 직업학교를 세웠고 편물, 양재, 목공 교사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제 눈에 들어온 것 입니다
20대 중반 저는 한국에서 아프리카 보추아나로 날라갔습니다. 제가 10대 때 제 자신의 마음을 바꿨다면 20대에는 그 아프리카 사람들이 저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보추아나 그 학교의 청소년들이 그 남녀 학생들이, 특히 여학생들이 저를 볼 때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 참 예뻐, 무지하게..’ 세상에 참 한국에서 제가 그런 말을 들었나요? 한국사람들은 저를 ‘척추장애인 김해영’ 이렇게 대해 주었습니다.
보추아나에 갔더니 그 보추아나 학생들이 제가 무엇을 하든지 저를 인간 김해영으로 대해 준 것입니다. 저는 교육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직업학교 일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도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육 받아야겠다, 나를 교육시켜야겠다, 그래서 미국으로 왔습니다. 8년 전에..
미국에 왔을 때 제 수중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뉴욕에 올 때 두 가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는 자부심입니다. 나와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은 나와 보세요.. 또 하나는 믿음입니다. 그 칼라하리 사막에서 저는 저를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유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믿음은 맞았습니다. 인생은 콩 심은 데 콩 난다 라고 저는 말을 합니다. 2년 전에 저는 그 유명한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마치면서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앞으로 일을 하는데 나를 월급 줄 수 없는 곳으로 가자..
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제가 월급을 받으면서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특히 이 미국에 계신 분들이 저를 공짜로 공부 시켜 주셨는데.. 그래서 저는 월급 받지 않고 일하기를 결심했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그 이전에 있던 자리, 아프리카로 반드시 가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 저는 한국에 있는 밀알복지재단의 희망사업본부의 본부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지역 총책임자입니다. 희망 사업은 아프리카 지역에 학교 지어주기 프로젝트입니다.
저의 일터는 지구촌이고 저는 저와 같은 아이, 아프리카에서 자라고 있는 희망이 없고, 암울하고 소망이 없는 그 아이들 하나 하나 찾아내서 저와 같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저 한국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네 인생이 이렇게 변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아프리카 아이들을 하나씩 건져내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우리 사람은 절대 그냥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그것, 제가 가진 그것이 바로 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믿으십시오. 그것이 오늘 날의 저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음악 : 거위의 꿈 / 인순이)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뤄진다 - 성악가, 테너 조용갑

성악가 조용갑 씨는 지독한 가난과 폭음과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 그런 가정 속에서 삐뚤어진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모두가 가는 고등학교를 집안 형편으로 갈 수도 없었던 조용갑 씨는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며 좌절하다 자살까지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겠다는 꿈이 생기면서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철공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꿈을 잃지 않았던 조용갑 씨는 권투선수를 하다 스물 일곱 살의 늦는 나이에 성악에 도전했습니다.

조용갑 씨는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조용갑 : 절벽 위에 서서 인생을 포기할까 했던 순간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때 제가 안 뛰어 내려서 오늘날의 성악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삶이 어떤 환경에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역전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의 꿈들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할아버지로 엄청난 재산을 물려 받아서 제게 빚이라는 재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사업을 하다 망하시고 어렵게 지냈습니다. 제 성격은 비뚤어져 갔고 꿈은커녕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성수동에 공장에 취직을 합니다 .심부름 하면서.. 그 때 제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원망과 불평만 하지 말고 내가 삶을 바꾸고 운명을 변화시켜 보자, 그래서 제가 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공장에서 벌었던 돈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유배달도 같이 했습니다. 낮에는 무슨 장사든 다 했습니다. 이것 저것 안 해본 게 거의 없습니다. 저에겐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려운 모든 것들을 3년 내내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우연찮게 기타를 배우면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노래는 제게 위로가 됐습니다. (노래)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그런 노래들을 많이 했어요. 꿈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환경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음반 가게에 가서 테이프를 하나 샀습니다. 그 때 산 게 파바로티의 테이프였습니다. 틀어보니까 이상한 노래가 막 나오는 거에요
(파바로티 노래) 제가 그렇게 따라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흉내내면서 노래가 너무너무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태리로 가야겠구나.. 열정을 갖고 연습을 했습니다. 꿈을 갖고 노력했더니 그 꿈이 이뤄졌는데 쉽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0년 걸렸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 1억이라는 돈이 후원이 돼서 이태리로 떠나게 돼서 꿈을 이루게 됐습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않으면 환경도 바뀌고 상황도 바뀌고 또 모두가 밖에서 여러분의 후원자가 되고 그 열정이 퍼져서 감동시키고 변화해서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행복하게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도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북한 주민 여러분 밝아오는 2015년 새해에는 정말 좋은 일만 가득 생기길 빕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족과 친구, 동료의 따뜻한 사랑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라디오문화마당-세상을 만나자’ 마칩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음악 : Anthem / Vange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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