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⑨ 국립민주주의기금 (NED) "민주 개혁과 자유에 대한 중요한 공헌자"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09.12.15
2009.12.15
미국과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국립민주주의기금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Good morning and welcome, it's good to have you all to help celebrate this launching of a program with a vision and a noble purpose.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is...(더빙)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비전과 고귀한 목적을 가진 단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분이 와주셔서 기쁩니다. 아시다시피 국립민주주의기금은 초당적 성격을 지닌 단체입니다. 하지만 국립민주주의기금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당파적 성격을 넘어 민주주의 이상과 제도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에 바탕을 두고 창립된 겁니다. 이 단체는 이제 전 세계 각 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겁니다.
이미 고인이 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3년 12월 16일, 각계각층의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미국 백악관의 축하행사에서 행한 연설에서 향후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역할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런 기대는 크게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책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은 국립민주주의기금이 지난 20여 년간 "구소련 연방국들, 중국, 쿠바, 이란, 이라크, 니카라과와 베트남의 민주화 운동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앞서 워런 크리스토퍼 전 미국 국무장관은 1995년 국립민주주의기금을 가리켜 "민주적 개혁과 자유에 대한 중요한 초당파적 공헌자"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외교관 출신으로 창립 당시부터 계속해서 이 단체를 이끄는 칼 거쉬먼 회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가진 단독회견에서 국립민주주의기금이 북한 인권과 관련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Carl Gershman: It goes back to the early 1990s when two members of the NED Board...(더빙) 1990년대 초였습니다. 당시 저희 단체의 이사회 회원이었던 스티븐 솔라즈 전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과 프레디 클레이 전 국방차관이 국립민주주의기금이 이제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들여다볼 때가 됐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1980년 7월 미국 공직자로는 사상 처음으로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 그에게 'President,' 즉 '주석'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솔라즈 전 위원장은 미국 정가 내 대표적 친 김대중 전 대통령 성향의 인사입니다. 그런 그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방향과는 다르게 북한의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 두 명의 유력한 이사회 회원이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국립민주주의기금은 얼마 안 가 북한 인권에 관한 연구 작업을 할 단체 후보의 물색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국립민주주의기금은 민주적 제도를 수립하려는 민간교육기관, 인권 단체, 그리고 언론기관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게 주된 과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어디를 봐도 지원해 줄 단체는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전문가 몇 명을 초청해서 간단한 강연회를 갖는 수준에 머물기를 서너 차례, 그러던 찰나, 국립민주주의기금 본부가 있는 워싱턴에 북한인권 전문 학술지인 '생명과 인권' 한 부가 배달됩니다.
Carl Gershman: The moment we saw this journal in 1996, we said, "Well, now we have somebody to talk to." And what happened with the Citizens' Alliance was that...(더빙) 우리는 1996년에 난데없이 날아온 잡지를 보자마자 "드디어 함께 논의할 상대가 떴다"고 기뻐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학술지는 한국이 군사정권하에 있을 때 국제사면위원회의 한국지부를 이끈 윤현 씨가 설립한 인권 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이하 '시민연합')'이 발간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민연합은 저희 단체의 첫 협력단체(파트너)가 되었죠.
이런 국립민주주의기금과 시민연합의 만남으로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국립민주주의기금이 발행하는 저명한 계간지 '민주주의 저널'은 1998년 여름호에 4명의 탈북자와 시민연합을 대서특필한 '북한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목소리'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또 시민연합은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지원으로 북한 인권에 관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매년 개최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회의가 1999년과 2000년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2001년부터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과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일본 도쿄,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노르웨이 베르겐, 영국 런던, 호주 멜버른을 돌며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Carl Gershman: The results of all this -- international coalition really did develop...(더빙) 이런 일련의 활동은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가 더욱 깊고 넓게 형성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유럽 연합 등에 있는 여러 인권 단체가 연대해 국제적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공론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고,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제도도 마련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인권 단체인 ‘미국북한인권위원회’나 ‘북한자유연합’이 결성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설립 취지 목적에 가장 들어맞는 주요한 사안 중의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국립민주주의기금은 북한의 인권 문제와 관련한 어떤 건설적인 제안에 대해서도 이를 검토하고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지원 대상과 규모를 대폭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2004년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립민주주의기금은 1999년 이후 2004년까지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내정치범돕기시민연합,’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북한인권정보센터’ 등 북한과 관련한 인권단체 5곳에 9억 원, 미화로는 약 77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한국 내 인권 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135만 달러로, 지원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지원대상도 5개에서 13개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북한개혁방송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NK 커뮤니케이션,’ ‘자유북한방송,’ ‘열린북한방송,’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NK’를 비롯해, ‘북한지식인연대‘와 북한 내 지하기자들이 만드는 잡지 ‘림진강,’ 탈북청년들의 모임인 ‘백두한라회,’ ‘북한인권탈북청년연대' 등이 올해 지원받았다고 국립민주주의기금 측은 밝혔습니다.
Carl Gershman: One dimension of what we do, we call it "capacity building" to build the capacity of...(더빙)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는 역량강화사업입니다. 특히 탈북자 단체들이 새 조직을 만들고 북한의 인권과 관련한 사업을 펼쳐나가면서 자체적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겁니다. 북한 체제가 영원히 갈 줄 아십니까? 북한 체제가 무너질 때 민주사회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탈북자들이야말로 북한 사회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입니다.
한국 내 탈북자 2만 명 시대. 북한의 재건과 북한민주화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탈북자들에 아낌없이 지원하는 국립민주주의기금은 그리 멀지않은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듯합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국립민주주의기금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Good morning and welcome, it's good to have you all to help celebrate this launching of a program with a vision and a noble purpose.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is...(더빙)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비전과 고귀한 목적을 가진 단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분이 와주셔서 기쁩니다. 아시다시피 국립민주주의기금은 초당적 성격을 지닌 단체입니다. 하지만 국립민주주의기금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당파적 성격을 넘어 민주주의 이상과 제도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에 바탕을 두고 창립된 겁니다. 이 단체는 이제 전 세계 각 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겁니다.
이미 고인이 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3년 12월 16일, 각계각층의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미국 백악관의 축하행사에서 행한 연설에서 향후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역할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런 기대는 크게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책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은 국립민주주의기금이 지난 20여 년간 "구소련 연방국들, 중국, 쿠바, 이란, 이라크, 니카라과와 베트남의 민주화 운동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앞서 워런 크리스토퍼 전 미국 국무장관은 1995년 국립민주주의기금을 가리켜 "민주적 개혁과 자유에 대한 중요한 초당파적 공헌자"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외교관 출신으로 창립 당시부터 계속해서 이 단체를 이끄는 칼 거쉬먼 회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가진 단독회견에서 국립민주주의기금이 북한 인권과 관련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Carl Gershman: It goes back to the early 1990s when two members of the NED Board...(더빙) 1990년대 초였습니다. 당시 저희 단체의 이사회 회원이었던 스티븐 솔라즈 전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과 프레디 클레이 전 국방차관이 국립민주주의기금이 이제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들여다볼 때가 됐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1980년 7월 미국 공직자로는 사상 처음으로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 그에게 'President,' 즉 '주석'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솔라즈 전 위원장은 미국 정가 내 대표적 친 김대중 전 대통령 성향의 인사입니다. 그런 그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방향과는 다르게 북한의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 두 명의 유력한 이사회 회원이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국립민주주의기금은 얼마 안 가 북한 인권에 관한 연구 작업을 할 단체 후보의 물색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국립민주주의기금은 민주적 제도를 수립하려는 민간교육기관, 인권 단체, 그리고 언론기관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게 주된 과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어디를 봐도 지원해 줄 단체는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전문가 몇 명을 초청해서 간단한 강연회를 갖는 수준에 머물기를 서너 차례, 그러던 찰나, 국립민주주의기금 본부가 있는 워싱턴에 북한인권 전문 학술지인 '생명과 인권' 한 부가 배달됩니다.
Carl Gershman: The moment we saw this journal in 1996, we said, "Well, now we have somebody to talk to." And what happened with the Citizens' Alliance was that...(더빙) 우리는 1996년에 난데없이 날아온 잡지를 보자마자 "드디어 함께 논의할 상대가 떴다"고 기뻐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학술지는 한국이 군사정권하에 있을 때 국제사면위원회의 한국지부를 이끈 윤현 씨가 설립한 인권 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이하 '시민연합')'이 발간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민연합은 저희 단체의 첫 협력단체(파트너)가 되었죠.
이런 국립민주주의기금과 시민연합의 만남으로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국립민주주의기금이 발행하는 저명한 계간지 '민주주의 저널'은 1998년 여름호에 4명의 탈북자와 시민연합을 대서특필한 '북한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목소리'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또 시민연합은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지원으로 북한 인권에 관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매년 개최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회의가 1999년과 2000년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2001년부터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과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일본 도쿄,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노르웨이 베르겐, 영국 런던, 호주 멜버른을 돌며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Carl Gershman: The results of all this -- international coalition really did develop...(더빙) 이런 일련의 활동은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가 더욱 깊고 넓게 형성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유럽 연합 등에 있는 여러 인권 단체가 연대해 국제적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공론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고,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제도도 마련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인권 단체인 ‘미국북한인권위원회’나 ‘북한자유연합’이 결성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설립 취지 목적에 가장 들어맞는 주요한 사안 중의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국립민주주의기금은 북한의 인권 문제와 관련한 어떤 건설적인 제안에 대해서도 이를 검토하고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지원 대상과 규모를 대폭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2004년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립민주주의기금은 1999년 이후 2004년까지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내정치범돕기시민연합,’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북한인권정보센터’ 등 북한과 관련한 인권단체 5곳에 9억 원, 미화로는 약 77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한국 내 인권 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135만 달러로, 지원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지원대상도 5개에서 13개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북한개혁방송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NK 커뮤니케이션,’ ‘자유북한방송,’ ‘열린북한방송,’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NK’를 비롯해, ‘북한지식인연대‘와 북한 내 지하기자들이 만드는 잡지 ‘림진강,’ 탈북청년들의 모임인 ‘백두한라회,’ ‘북한인권탈북청년연대' 등이 올해 지원받았다고 국립민주주의기금 측은 밝혔습니다.
Carl Gershman: One dimension of what we do, we call it "capacity building" to build the capacity of...(더빙) 국립민주주의기금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는 역량강화사업입니다. 특히 탈북자 단체들이 새 조직을 만들고 북한의 인권과 관련한 사업을 펼쳐나가면서 자체적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겁니다. 북한 체제가 영원히 갈 줄 아십니까? 북한 체제가 무너질 때 민주사회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탈북자들이야말로 북한 사회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입니다.
한국 내 탈북자 2만 명 시대. 북한의 재건과 북한민주화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탈북자들에 아낌없이 지원하는 국립민주주의기금은 그리 멀지않은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