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 대토론회 ①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북한 당국의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기록하기 위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공식적인 차원에서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남한 내부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변창섭 xallsl@rfa.org
2009.08.27
0827_305.jpg 26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북한인권정보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과 합리적 운영방안’에 관한 토론회 현장.
RFA PHOTO/변창섭
서울통신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북한인권정보센터가 26일 공동으로 주최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과 합리적 운영방안’에 관한 토론회 내용을 오늘과 내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해 드립니다. 오늘은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을 지냈고 현재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윤여상 박사가 제기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필요성, 설립과 운영에 관한 추진위원회 구성 문제에 대해 살펴봅니다.

북한인권 문제는 유엔에서 북한 당국에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여러 차례 통과될 만큼 국제적인 현안으로 떠오른 지 오랩니다. 특히 남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처음으로 지난해 11월엔 남한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 제안국으로 나설 만큼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남한 정부의 이런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아직 남한에는 정부 차원에서 북한의 인권 침해 사례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 동서독 분단 당시 서독 정부가 동독 공산정권 아래에 벌어진 인권침해를 기록하기 위해 잘츠기터 인권침해중앙기록보존소를 설치해 운영했던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룹니다. 현재 북한 인권침해에 대한 수집과 기록 업무는 지난 2003년 설립된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 등록된 북한인권침해 사례는 4천 건을 넘어섰고, 관련 인물도 3천 명을 훌쩍 넘긴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북한인권의 침해 사례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이제 민간 차원이 아니라 공식적인 기관 차원에서 떠맡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그 경우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이 과연 필요한가, 또 그 기능과 역할은 어떻게 해야 하며, 이런 기관을 설립을 국가 혹은 민간이 전적으로 떠맡아야 할지, 아니면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구성해야 할지 등등에 관한 문제를 다각적으로 짚어보는 토론회가 8월26일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일찍이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을 주창해온 윤여상 박사 (전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현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객원연구원)은 이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지금처럼 민간단체가 아닌 더욱 공식화된 공인된 기구로 설립하고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그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윤여상: 지금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분명히 북한의 인권개선과 인권에 대한 예방 기능을 갖지만, 더 나아가 북한의 인권피해자를 구제하고 보상 기능까지 함께 가져야 한다. 좀 더 장기적으론 북한 지역에서 발생한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는 시발점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자료조사와 보관의 기능, 북한에 대한 경고와 예방적 기능,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보상의 기능, 상호 어떤 방식으로 과거청산이 이뤄지든 그에 대한 논의와 기초 자료의 확보까지 우리 사회가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윤 박사는 지금까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과 운영의 주체, 조사의 범위와 방법, 나아가 조사 결과에 대한 관리와 활용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윤 박사는 지난 2000년 이후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을 통일부에 제의했지만,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일도 있습니다.

윤 박사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설립되면 그 일차적 기능은 북한인권과 관련한 자료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설립되면 그 기능이 제한적이든 포괄적이든 북한은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실제로 이런 보존소가 공식적으로 출범한다면 북한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윤 박사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또 다른 기능으로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구제, 보상 문제를 꼽았습니다. 비록 현재 시점에선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주된 기능이 북한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이지만 나중에 통일 시점에 과거 청산의 차원에서 가해자에 대해 적정한 수준의 조치는 물론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보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윤 박사는 현재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강력한 반대는 물론이고 남한의 야당과 진보적 태도의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어 자칫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않은 채 설립을 서두를 경우 남•남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여상: 이 사안이 우리 사회 내에서도 특수한 사안이고, 특히 남북한 관계를 봤을 때 상당한 특수성을 갖고 있어 현실 제도화에 오면 반드시 특수성을 고려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윤 박사는 동서독 분단 당시 서독 정부가 잘츠기터 인권침해중앙기록보존소를 설치한 데 대해 동독 정부가 끈질기게 폐쇄를 요구했는가 하면 각종 회담의 전제조건으로도 폐쇄하라고 요구한 바 있어, 남북 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갈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 박사는 이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하면 정권의 교체 혹은 입맛에 따라 소멸하지 않도록 제도화하고, 일단 제도화되면 정치적 독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여상: 어떤 조직이든 기관이든 간판을 걸면 우선 오래가야 한다. 그리고 간판 위치를 자주 바꾸면 안 된다. 기관의 안정성과 독립성, 특히 인권에 대한 사안만큼은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기관의 안정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정치적 독립성은 북한 당국으로부터의 독립성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권교체와 같은 국내적 상황에서도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윤 박사는 특히 인권 문제는 정부 부처만이 아니고 민간 활동가나 국제적인 인권규약 등이 서로 연계됐을 때 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윤 박사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하면 주체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면서 우선 정부의 경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윤여상:
정부가 했을 때 확고한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고, 공신력 있고, 예산도 갖다 쓸 수 있다. 국민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만일 북한이 정상급 회담 요구하면서 전제조건으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폐쇄를 요구하면 우리 대통령,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동서독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또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과연 이게 지속할 수 있겠는가? 이런 여러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윤 박사는 반대로 민간이 주체가 될 때 충분한 재원 확보가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여상:
우선 재원확보가 잘 안 된다. 이게 공적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품화가 안 된다. 국가가 상품을 구매하는 유일한 집단인데 민간이 이걸 살 이유가 없는 상품이다. 그래서 재원확보가 어렵고, 그래서 인력 확보도 안 된다. 또 민간이 하니까 정부기관의 협조를 받기도 어렵다. 민간이 공신력에 있어 약점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정부, 민간이 주체가 돼서 설립할 경우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윤 박사는 정부와 민간이 협동형 방식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들었습니다. 그럴 때 정부는 재원과 조사협조와 자료지원, 운영과 관리감독을 맡고 민간은 기관에 대한 실질적 운영과 전문가의 참여, 국내외 관계 기관과 협력해 안정적인 운영을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윤 박사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과 운영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윤여상: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여당과 야당, 정부의 각 부처, 북한인권 관련 단체와 연구자와 활동가들 내에 공청회와 검토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고개를 끄떡일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단순히 입법화를 통해 법이 되면 집행되고 실행되는 것이니까 그런 과정에 앞서 이런 선행과정이 이뤄져야 그 기능의 효과성을 기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설립과 운영방안을 찾아볼 수 있는 추진위원회를 내부적으로 구성해서....

윤 박사는 이어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문제는 단순히 인권 침해의 기록과 관리 차원을 넘어서 북한 지역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준비 작업의 목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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