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기행] 몽당연필-묻은 손때만큼이나 진한 추억이…

(연필로 글 쓰는 소리) 오랜만에 연필을 잡았습니다. 사각 사각, 연필로 글을 쓰는 소리는 몽당연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09.01.19
너무 작아 / 손에 쥘 수도 없는 / 연필 한 개가 누군가 쓰다 남은 / 이 초라한 토막이 / 왜 이리 정다울까 욕심 없으면 / 바보 되는 이 세상에 몽땅 주기만 하고 / 아프게 잘려 왔구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 깨끗한 소멸을 그 소박한 순명을 / 본 받고 싶다 헤픈 말을 버리고 / 진실한 표현하며 너처럼 묵묵히 살고 싶다 / 묵묵히 아프고 싶다 / 묵묵히 아프고 싶다

한국의 유명한 수필가 중 한 명인 이해인 수녀가 쓴 ‘몽당연필’입니다. 한반도에 현대적 의미의 필기도구가 등장한 것은 1945년 광복 이후입니다. 대전에 지어지던 일본의 연필공장을 인수한 ‘동아연필’이 1946년 설립되면서 한국에서 연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연필은 흑연에 진흙 혼합물을 첨가한 원시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연필심은 강도는 약하면서도 표면은 거칠어서 부러지기 십상이고 종이를 찢어놓기 일쑤였습니다. 연필로 진한 글씨를 쓰겠다고 연필심을 빨던 어린이들은 “납독 오른다”며 부모님께 혼쭐이 났습니다.

지우개나 연필 깎는 칼 같은 것은 아예 있지도 않았던 시절, 아이들은 낫이나 부엌칼로 연필을 깎아서 썼습니다. 연필이 닳아지도록 쓰다가 작아지면 아직 쓸 만한 누이의 볼펜을 몰래 꺼내 꼭지를 떼어내고 연필을 대신 꽂아 사용했습니다.

이 당시 볼펜을 만들었던 회사는 몽당연필을 꽂아 쓰기 좋게 볼펜대를 연필과 같은 6각형으로 만들었다고 홍보담당자는 말합니다.

“몽당연필하고 연관해서는 예전 분들이 많이 기억하실 텐데요, 몽당연필이 짧아지면 당시만 해도 플라스틱으로 돼있는 물건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값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저희 회사 제품을 깍지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모양도 일부러 일반 연필이 6각으로 되어 있어서 형상에 맞춰서 6각형으로 만들었습니다.”

몽당연필을 추억하는 내용은 연령에 따라 다릅니다. 볼펜깍지에 끼워야만 쓸 수 있던 손가락 끝마디보다 작은 몽당연필은 절약의 상징이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 남한의 학교에서는 절약을 교육하면서 필통 속 몽당연필을 검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남한 출신 사람들은 멀쩡했던 연필이지만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서 일부러 짧게 깎아 몽당연필을 필통에 하나씩 넣어 다녀야 했다고 기억합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이웃과 몽당연필에 대한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몽당연필을 만들려고 연필깎이로 계속 깎아서 조그맣게 만들었다고” “그걸 왜 그래, 연필을 세 조각을 내면, 몽당연필 세 개가 그냥 나와” 연필을 깎아 쓰던 손맛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몽당연필을 돌려가며 예쁘게 깎는 기술을 선보일 때면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깎은 연필의 흑심 가루를 정성껏 벗겨낸 뒤 입 바람으로 후 불어 날리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합니다.

연필을 교실 바닥에 떨어뜨리면, 연필심이 속에서 부러져 낭패를 보기도 했습니다.

“깎는데도 연필심이 계속 부러지는 거야, 깎아도 깎아도..” “아직까지도 한국의 연필 나무가 좋은 게 미국 것은 깎으면 결대로 안 되고 부러지고 그러는데, 한국 연필은 아직도 나뭇결이 정말 좋아” 볼펜대에 꽂아 쓰던 몽당연필은 이제는 말 그대로 추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6각형인 연필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몽당연필을 끼우기 안성맞춤이었던 볼펜이 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저희 회사 153 볼펜이 몽당연필을 끼울 수 없는 형태로 바꿨어요. 예전에는 PVC 재질로 153 볼펜을 만들었는데, 재활용 할 수 없는 재질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재활용 할 수 있는 재질로 바꿨습니다. 전에는 몽당연필 쓰셨던 분들이 깎으셔가지고 앞쪽에 끼워서 썼는데, 신제품은 나사를 박도록 설계가 바꿨습니다. 현재로서는 끼우기가 어렵습니다.”

몽당연필을 추억하는 내용은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몽당연필을 만들기 위해서 멀쩡한 연필을 깎거나 부러뜨렸다는 남한 사람들의 추억과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 기억하는 몽당연필의 추억은 다릅니다. 한국에 위치한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김광진 선임연구원입니다. “그냥 몽당연필이라도 손에 쥐어주면 고마운 거죠, 학생들이 연필을 쓸 수가 없습니다. 몽당연필이라도 연필을 쓰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치 키 작은 아이가 맨 앞줄에 서 듯, 연필의 길고 짧은 길이에서부터 나란히 줄지어 누워있던 필통 속의 연필. 키 큰 연필들 무리에서 몽당연필은 마치 덧니처럼 엎드려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빨로 물어뜯은 듯한 몽당연필이 더 오랜 시간 잊히지 않는 것은 아마도 새 것이 아닌 오랫동안 손때 묻은 물건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남북문화기행, 몽당연필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김진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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