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 생활비, 꾸준히 북한 가족에게 전달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8.09.07
dandong_nk_ppl-620.jpg 중국 단둥시 외곽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 주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탈북여성 김시연 씨는 최근에 남한에 정착한 사촌언니네와 함께 한국에 와서 가정을 이룬 시댁 어른 들의 묘소 벌초 작업에 함께 참여를 했는데요,

김: 한국에와서 시골도 가보지 못해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갔는데 가면서 오면서 한국의 시골에 어쩌면 도로를 이렇게 잘 뽑아 놓았나 나무가 너무 많아서 아름답다며 굉장히 좋아 했어요

한국에 온 후 첫 나들이 지역이 강원도 삼척으로 북한 가까이 가니까 고향 생각에 북한에서 지냈던 옛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고 하는데요, 여성시대 북한 보안서에서 근무 했던 탈북여성 김시연 씨와 함께합니다.

묘소는 북한과 가까운 시댁 고향 마을이라 북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보다는 북한의 가족들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는 군요

김: 고향 얘기도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쫓기고 감시당하며 살다 오니까 여기서는 감시도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너무 자유스럽고 좋다고 그런데 북한에 남편이 안계신 맏언니가 있는데 언니 얘기를 하더라고요

남한에서 살아보니 하루 속히 언니를 데려 올수 있으면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 하겠는데 심한 단속으로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 데려 올 수만 있다면 데려 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오겠느냐고 하면서 단속이 지금 엄청 심하다며 요즘에 나와 움직이다가는 큰일 난다고 하니까 형편이 조금 나아 질 때를 기다려서 돈 열심히 벌어서 데려오는 방향으로 해야 되겠다고…

김시연 씨는, 사촌 언니의 맏언니는 지금 59살인데 남편도 안계셔 더욱 마음이 쓰인다며 하지만 소식은 조금씩 들을 수 있고 또 생활비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하네요.

김: 간접적으로 주고 받는데 언니가 생일이 다가오는데 그때 중국 돈으로 500위안을 전해달라 500위안이면 한국돈 10만원이 안되요 적은 돈이지만 인편으로 먼저 전달해 주면 우리가 그 돈을 보내겠다고 전화를 하더라고요. 500위안이면 옥수수 500키로 정도 산다고 해요 여기서는 10만원 작은 돈이지만 북한에서는 그래도 옥수수를 500키로 살 큰 돈이니까 생일에 보내면 엄청 좋아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인편 으로라도 북의 언니도 소식을 들을 수 있는지요, 돈 보내는 길에 소식이 전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북측에서 굉장히 조심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 아직 언니하고는 직접 통화는 하지 못하고, 북한에 있을때 장사를 같이 하던 사람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심부름을 보내요 직접적으로 연락하기는 전화 통화하다가 걸릴 수도 있고 해서 단속이 심하다는 얘기는 많이 전해 듣는다고 해요

현금으로 보내도 중간에 사라지거나 하는 위험성은 없다고 하는데 북한에서 부터 믿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액수에 따라 중개료가 달라진다는 거죠.

김: 돈이 액수가 크지않고 가깝게 지내는 중국인이 전해 주니까 떼어 먹지는 않는데요 그런데 만약 우리 탈북민이 보낸다고 하면 30% 를 중개료로 떼고 국경연선 지역이 아니고 황해도나 함남도쪽으로 들어가서 돈을 전달하게 되면 40%를 뗴고 더 비싸게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60%씩 뗀다면 사람들이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보내는 돈의 절반 이상을 심부를 하는 사람의 몫이니까

사촌 언니 외에도 주변의 탈북민들이 북한의 친척 가족들에게 이런 식으로 돈을 보내고 있다는군요,

김: 돈 몇백만원씩 많이는 보내지 못해도 70-80 만원도 보내고 백 만원도 보내고 최근에는 한국돈 100 만원 보내는 것을 좀 많이 보내는 것으로 보더라고요

그런데 한국도 지금 경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에 다들 어려워하고 있다고 김시연 씨는 염려합니다.

김: 100만원 보내면 많이 보내는 거라고 해요 그런데 대부분 50-80만원 정도 보낸다는데 이정도면 한 2년 정도 먹고 사는 것은 버티죠.

김시연 씨의 언니는 한사람이 아닌 두 세사람과 연결이 되어 돈을 보내기 때문에 안전 하다는군요

김: 언니가 라선에서 살다 왔으니까 라선지역에서 장사를 조선족들도 하고 한족들도 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많이 알다 보니까 선이 한 사람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고 몇 사람을 통해고 한다고 그래요.

돈 심부름을 부탁해도 중국 사람일 경우는 더 안전하기도 하지만 부탁하는 입장에서 좋은 조건을 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 보위원들도 덜 감시를 하고 그리고 장사하는 중국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니까 먼저 가족에게 전달해 달하고 하고 후에 줄 수도 있고 그리고 그 사람이 집을 직접 찾아가서 전달 할 수도 있고 그런 여러가지 좋은 조건들이 있어요

생일 뿐 아니라 명절이나 연말에도 조금씩 전할 수 있다는군요

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저한테도 집에다 보내려면 보내라고 하는데 요즘 우리 사무실 경기가 안좋아요 그래서 나는 좀 있다 여유가 생기면 보내겠다고 했어요

한국의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매일 전해지고 있는데 김시연 씨는 직접 피부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김: 저희도 작년 부터 좋지가 않아요 그동안 벌어 놓은 것이 있어 지금 버티고 있는데 저희가 부동산을 하는데 공장만 전문으로 해요 그런데 제조업들이 거의 옮기지도 않고 땅이나 공장을 사지 않아 거래가 잘 되지 않아요 그런데 월급 받는 사람들은 별로 관계가 없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사업하고 식당 하는 사람들이 장사가 안된다고 많이 걱정해요

아울러 추석을 앞두고 이번 시댁 묘지 벌초에서도 북한과는 다른점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김: 북한에서는 미리 벌초하는 것은 없고요 모든 땅이 국유지 개인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묘들이 모두 작게 있어요 땅을 많이 차지 하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당일날 가서 낫으로 베어도 금방 해요 한때는 북한도 묘비도 세우기도 했는데 도시미화에 장애가 된다고 해서 묘비를 땅에 다 눕히라고 해서 눕혔어요

이렇게 된다면 혹시 이산가족들이 마음대로 왕래를 할 수 있다거나 앞으로 통일이 된다면 가족의 묘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데요,

김: 저도 남편이 사망한지 20년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만약 북한에 간다고 하면 묘를 을 수가 없을것 같아요 그동안 돌보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거기게 흙이나 먼지가 쌓이면 묘비가 누워 있기 때문에 찾을 수가 힘들거예요 통일이 된다고 해도

일반인들의 공동 묘지외에 북한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능이 있죠

김: 유공자들은 한국의 국립현충원에 모시듯이 평양에 열사능이 있거든요 일반인들은 다 국유지인 공동묘지에 그리고 시골 같은데는 주변의 공지에다 묻기도 하는데 도시 사람들은 모두 공동묘지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 오래동안 가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아마 찾기가 어려울것 같아요

오랫동안 돌보는 사람들이 없는 묘지는 북한 당국에서 정리 할 수도 있을것 같은데요,

김: 한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제가 탈북해서 한국온 다음에 이곳의 땅은 국가에서 쓰겠다고 이곳의 묘지를 다른 곳으로 이장 시키라고하면 그러는 과정에어 주인이 없는묘는 버리는 거죠 북한은 법도 없고 무법천지니까

김시연 씨의 가족 묘지는 시댁어른 들을 모신 사유지라 벌초 작업이 힘들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김: 저희 시댁은 개인 땅에도 증조 할아버지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셔서 여기에 모셨는데 그 땅에 개인것이라 넓어요 그러다 보니 벌초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드는지 남자 3명이 달려들어 했는데 오전 내내 했어요

벌초가 끝나고 바닷가로 나가 북한에서 온 형부가 바다 잠수를 해 오랫만에 싱싱한 해물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네요

김: 형부가 북한에 있을때 잠수를 해서 바다에서 성게도 잡고 전복도 따고 조개 잡아서 저녁에 그것을 끓여서 술 안주 해서 먹었어요

특히 성게잡이는 북한에서 보다 쉽게 짦은 시간에 많이 잡았다고 자랑합니다.

김: 야! 여기 성게가 정말 많다고 여기서 이런 것만 따다 팔아도 돈 벌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북한은 사람들이 너무 먹을 것이 없으니까 바다에 너도 나도 많이 들어가서 따내니까 많지 않은데 여기 한국은 잠수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바다를 여지저기 다 훓트면서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희가 갔더 곳을 장호 항 이라고 강원도 삼척 쪽에 거기갔는데 들어가서 몇분 땄는데 세 주머니 정도 따가지고 왔어요

북한에서는 성게도 외국으로 많이 수출하고 또 있더라도 비싸기 때문에 잘 먹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김: 엄청 비싸고 일반인은 먹지도 못해요 잡으면 일본 배들이 들어와서 모두 사가거든요 그래서 북한 사람 일반인들은 맛도 볼 수 없어요 배타는 사람들이나 잠수공 이런 사람들녀 조금씩 먹어 볼 뿐이지 그런데 여기는 본인이 바다에 들어 갈 수 있다면 …나도 놀랐어요 그렇게 많은 지 야 정말 많구나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북한에서 와 처음으로 벌초 작업에 참여 했던 사촌 언니네도 놀라더라는군요

김: 자기네는 벌초 하러 간다고 해서 북한처럼 작은 묘를 간단하게 낫으로 베면 몇분이면 다 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묘지가 이렇게 넓고 잘 되어 있고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면서 놀라더라고요

묘소까지 가는 길에 고속 도로 중간 중간 휴게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잖아요

김: 휴게소에서는 맷반석에 구운 오징어도 사먹고 통감자를 기름에 튀겨서 익힌 것도 먹고 그랬는데 그동안 와서 일만하다 여기에 나와 보니 너무 좋다고 그래요 그런데다 요즘 한국의 공기가 너무 깨끗하고 맑거든요 그러니까 공기도 너무 좋고 숲도 파랗게 우거 졌으니까 야! 뭐 외국 부럽지 않다고, 외국못지 않게 멋있다고 하면서 정말 좋아했어요.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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