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영주권 인터뷰 앞둔 워싱턴 지역의 탈북여성

오늘은 미국에 들어온 탈북자 가운데 워싱턴 지역에서 영주권을 신청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영주권을 받은 나오미 씨에 이어 두 번째 여성 탈북자가 곧 영주권을 받게 된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0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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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미: 영주권 인터뷰를 하라고 이민국에서 편지가 날아왔어요. 쉽게 받을 수 없는 영주권을 이민자들은 받으려고 해도 어려운데 미국에서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 주어서 영주권을 받게 되어 기뻐요.

이번에 영주권을 받게 되는 30대의 가명을 쓰는 유선미 씨는 중국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을 통해 지난 2007년 12월 중순 미국으로 입국했습니다. 영주권 인터뷰를 앞둔 선미 씨를 워싱턴 인근 지역에서 만났는데요. 건강한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이 여성은 지금은 어렵지만 영주권을 받으면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에 차있습니다.

유선미: 열심히 살아 미국에 보답하고 싶어요. 영주권이 나오면 그 일이 좀 더 쉬워질 수 있고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선미 씨의 영주권 절차를 담당한 워싱턴 인근 전종준 법률사무소의 전종준 변호사는 워싱턴 지역에서 첫 번째 탈북여성 나오미 씨의 경우보다 영주권 진행 속도가 좀 빨라졌다고 전했습니다. 나오미 씨는 2006년 태국에서 난민지위를 받아 그 해 5월 미국에 체일 처음에 입국했던 6명 중의 한 명으로 1년 만에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오미 씨는 당시 인터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영주권을 받았다고 전 변호사는 밝혔습니다.

전종준: 나오미 씨 같은 경우 인터뷰 없이 통과되어 영주권을 받았는데 지금 이분은 인터뷰가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어떤 신상문제 때문에 인터뷰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탈북자들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인지 그 문제는 인터뷰 때 가보아야지 확인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영주권을 신청했던 탈북자들이 거의 모두 영주권을 받았는데요, 유선미 씨는 인터뷰에서 어려움은 없을지 전 변호사의 얘기 다시 들어보죠.

전종준: 현재까지 탈북자로서 난민조건은 다 해당되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고 그분의 신상문제가 과연 이민법 위반이 돼서 영주권을 받는 데 지장이 있는지는 가서 어떤 신상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 결정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탈북 난민으로서 개인의 신상문제 때문에 영주권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는지 궁금한데요.

전종준: 그 형태에 따라 틀린 데요 어떤 경우는 받을 수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소위 면제신청이라고 해서 면제 신청이 가능한지 결국 신상에 대한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만약에 미국 내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한 범죄를 범했다거나 혹은 가중 흉악범 에 해당이 되면 안 되는데 아직 이런 행위는 확인된 것이 없으니까 인터뷰 날에 가보아야 합니다.

영주권을 받는 탈북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더 많은 탈북자들이 영주권을 신청하고 받기까지 수속기간이 좀 더 빨라 질 수 있는지 들어봅니다.

전종준: (시간이 단축된다), 그렇게까지 보기는 어렵고 일단 탈북자로 미국에 들어온 난민 자들은 미국 내에서 영주권 받는 것은 이민국에서 잘 수속을 해주고 있고 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나오미 씨에 이어 유선미 씨의 영주권 신청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전종준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일단 신분문제가 해결돼야 취업을 할 수 있고 운전면허도 신청은 물론 보험 등 모든 것이 보장되기 때문에 영주권을 받을 때 미국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전종준: 탈북자에게 영주권은 미국에서는 제2의 AMERICAN DREAM, 미국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주권 인터뷰를 앞둔 선미 씨는 처음에 미국으로 들어 온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그동안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에 긴 시간을 허비해 아직 운전 면허증이 없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유선미: 노동 허가증도 우리 난민들이 두 달 만에 받아야 하는데 제가 2007년 12월 19일 날 왔어요. 그러면 2008년도 2월에 노동 허가증을 받아야 해요 그런데 노동 허가증을 받지 못해 운전면허를 따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제가 2009년도 4월에 전종준 변호사를 통해서 노동허가증을 받았어요.


난민들을 위한 정부지원은 보통 6개월로 이 기간이 지나 일을 시작하면 정부의 지원은 모두 끝납니다. 하지만 선미 씨는 아직 일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후드 스탬프, 즉 정부가 저 소득층에게 주는 식량 구매권을 받고 있다며 하루속히 자신도 국가에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유선미: 한 달에 후드 스탬프, 식량구입권이 200달러씩 나와요. 그런데 200달러도 받으면 안 되죠. 일을 해야 하는데 운전도 못 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제가 탈북자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요.

유선미 씨는 2007년 12월에 미국에 들어와 이미 운전면허증도 받아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미국 정착이 늦은 것은 처음에 배치 받은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선미: 처음에 제가 켄터키 주에 배치 받았어요. 켄터키에 오자마자 봉사단체나 탈북자 사역을 하는 분들이 서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탈북자들이 배치 받은 곳을 떠나면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자본주의 사회는 물론 미국 사회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을 듣고 다른 곳으로 옮겨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며 미국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유선미 씨는 강조합니다.

유선미: 다른 곳으로 움직이겠다고 해도 잘 설명해주고 타일러서 움직이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배치 받은 곳을 떠나면 운전면허도 받지 못하고 노동허가증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 보니 고생을 하고 있어요.


유선미 씨는 또 앞으로 더 많은 탈북자를 위해 미국에도 한국의 하나원 같은 정착 교육기관이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국에서는 각 지역에 있는 난민관련 민간단체에서 미국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받지만, 하나원 같은 기관이 기본적인 교육을 받는 동안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탈북자들의 보호가 절실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선미: 미국에서 우리 탈북자들을 받아 준 것만 해도 감사한데요, 하나원 시설같이 일정기간 동안 외부와 접촉을 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었으면 합니다. 서류를 다 갖출 수 있도록 노동허가증 받고 운전면허증까지 다 따고 미국 사회로 나오면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거죠.

선미 씨는 이제 지난 일을 거울삼아 영주권을 받게 되면 열심히 살아서 미국에 좋은 일로 보답하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립을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선미 씨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북한 음식점을 꾸려 이 지역에 사는 실향민들과 한인들은 물론 미국인들 에게도 북한 음식을 알리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유선미: 제가 요리를 하기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북한에서도 제가 요리한 것을 사람들이 많이 먹어보고 참 맛있다고 얘기하셨어요. 그리고 여기 와서도 제가 한 음식을 한국 분들도 드셔 보셨는데요, 북한 음식을 하는 북한 식당을 차리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미국에서 꿈을 이루고 싶다는 미선 씨는 북한 음식을 한 가지씩 설명할 때는 표정도 밝아지고 말소리도 높아졌습니다.

유선미: 북한요리는 닭곰이 있는데요, 닭으로 찹쌀을 넣고 곰 하는 요리가 있어요. 아바이 순대도 있고 명태 대가리 순대도 있고 김치를 맛있게 잘해요. 북한식으로 그래서 식당을 잘 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미국에 보여주고 싶죠.

중국에서 수없이 공안에 쫓겨 다니느라 건강이 많이 나빠져 고생을 했지만 미국에 오면서부터 다행스럽게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지금은 무슨 일이든 할 것 같다고 하네요.

유선미: 중국에 살았을 때 심장이 많이 놀랐어요. 그리고 북한을 뛰쳐나오기 전에 고문을 많이 당했어요. 그래서 중국에 있을 때는 많이 아프고 늘 미열이 많이 났어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미열이 떨어졌고 지금은 아픈데 하나도 없고.. 첫째 무엇이겠어요? 건강이죠. 이렇게 아프지 않게 해주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선미 씨는 지금 워싱턴 인근 지역에 있는 예진회라는 봉사단체에서 노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이 단체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단체인 것 같아 봉사를 해도 즐겁다고 하는군요. 또 지금까지 미국 생활이 힘들었지만 중국에서 쫓겨 다녔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유선미: 우리가 중국에 있을 때 얼마나 쫓겨 다녔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우리를 받아 주었죠. 그래서 잡혀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아직도 중국에 있었다면 항상 조마조마 하면서 언제 잡혀갈까 살아갈 희망이 없죠. 그런데 미국에 와서 마음 편안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것만 해도 저도 감사해요.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 겪다가 자유국가에 와 보니 고향에 있는 가족은 물론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유선미: 북한은 독재주의 국가로 김정일만 숭배하는 나라니까 이런 자유의 나라가 정말 사람 사는 곳이고 얼마나 좋은지 아직도 자유를 모르고 사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죠.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미국처럼 한국처럼 자유롭게 인민들이 굶지 않고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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