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북한을 배운다

서울-이현주 leehj@rfa.org
2012.02.23
unification house 305 2008년 서서울생활과학고에서 문을 연 서울 통일관.
RFA PHOTO-노재완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남한 대학에는 북한학과가 개설돼있습니다. 말 그대로 ‘북한’을 공부하는 학과인데요. 북한 사회와 정치를 학문적으로 연구합니다. 이 학과엔 북한에서 온 탈북 학생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살다 나왔는데 굳이 북한을 공부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제 질문에 서울의 한 대학, 북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함북 출신, 이혜숙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그 사회에서 살 때 그 실체에 대해서도 잘 몰랐거든요. 제가 탈북하기 전까지도 오로지 우리 장군님은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나셨고 이런 것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였는데 정작 북한을 떠나서 바라본 북한은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저는 정말 북한학과에 잘 들어왔고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북한이라는 국가에 대해 본질적으로 접근을 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상하의 구분이 명확하고 지방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의 특성상, 북한에서 나고 자랐다고 해도 잘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또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북한 땅을 떠난 탈북 청년 중엔 고향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에 온 탈북 청년들, 이곳에서 북한을 공부합니다.

<젊은 그대>에 참여하는 <나우> 모임에서도 ‘통일 학교’라는 이름으로 이번 방학 동안 북한을 공부했는데요. 오늘 <젊은 그대>에서 이 얘기 나눠봅니다. 이 시간,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 모임, <나우>의 지철호, 이수연 씨 함께 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지철호, 이수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수연 씨, 철호 씨 모두 북쪽 출신인데요.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철호 : 북한 사회에 대해서는 알지만 극비사항, 간부들만 알고 있는 그런 수준은 모르는 게 많습니다.

이수연 :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느꼈던 북한과 여기 나와서 느낀 북한이 많이 다르거든요? 북한에 있을 때는 이런 부분은 좋고 어떤 부분은 안 좋다고 생각했지만 얼마만큼 잘 못 됐고 뭐가 나쁘다고 분석할 수준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와서 얼마나 그 우물이 좁았는지를 알아가듯 저도 그렇습니다. 남한에 와서 확실한 정보와 고위급 간부들의 증언, 학술적인 자료들을 접하면서 좀 더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근데 솔직히 저도 대학교를 진학할 때 북한학과를 갈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스스로 접었습니다. (웃음) 남한에 오니 정말 북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특히 남한 사람인데도 대학원 박사 과정 밟고 계신 분들을 만나보면 제가 깜짝 깜짝 놀랄 만큼 체계적으로 북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세요. 아, 진짜 제가 만날 때마다 저는 다른 계통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접었습니다.

진행자 : 근데 처음에 북한학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이수연 : 관심도가 낮은 줄 알았어요. 처음 왔을 때 남한 사람들은 통일에 관심도가 낮다, 북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얘기들이 들렸어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대학 진학 준비할 때 ‘그래, 남한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하니 나라도 공부를 해보자’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닌 거예요. (웃음) 공부하고 계신 분들도 많고요. 제가 북한에서 살다 왔다고 해서 막 잘난 척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예요. 겸손하다 못해 그냥 고개를 팍 숙여야하는 상황이더라고요. 근데요, 진짜 고마웠어요. 그런 분들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분들 한분 한분께 고마웠고요. 제가 아니어도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서 포기했습니다. (웃음) 저는 대신에 남한 사회를 공부해보자 했죠.

진행자 : 사실 그런 생각이 쉽게 들 수 있어요. 북한에서 온 친구들이 왜 북한을 공부할까? 이미 살다 나왔으니 다 아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지철호 : 저희가 북한에서 나온 지도 이제 5년이 넘었어요. 그러니까 그 사회도 변했잖아요? 그러니까 많이 찾아보고 해야죠. 북쪽이랑 정기적으로 전화 통화도 해요. 저희 <나우> 모임은 보통 토요일 날 만나는데요. 그 자리에서 서로 북한의 쌀, 옥수수 가격 동향 등 현 재 북한의 상황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이수연 : 저는 탈북 청년들이나 어른들이 북한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남한에 탈북자 2만 명이 넘었지만 대세에 맞춰서 어떻게 하면 티 나지 않게 살까를 고민하는 탈북자들이 더 많거든요. 아마 이런 말을 듣고 저를 욕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웃음)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게 너무 가슴 아파요. 저희가 남한에 생계나 자유나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왔겠지만 이 땅에 발을 내딛은 순간에는 사명과 소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탈북자라는 것이 왜 창피해요? 저희가 가진 무기에요. 우리가 북한을 더 많이 알아가서 나중에 통일 됐을 때 우리가 역할이 있습니다. 통일의 시기에 우리가 바로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배움이 정말 필요한 것이죠.

진행자 : 북한을 공부하는 것은 역시 탈북 청년들의 소명이라는 말이군요.

이수연 : 그리고 저희가 북한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회 체계가 어떤 것이라는 걸 몸과 피부로 기억을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윤곽은 없는데요. 공부를 하다보면 아, 그래서 그때 선거를 했구나, 그래서 그때 그 사건이 있었구나 하고 무릎을 칠 때가 있어요. 그런 게 중요하죠. 북한을 더 깊숙하게 알아갈 수 있으니까요.

진행자 : 아무래도 학문적으로 공부하면 사회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알아갈 수 있으니까 무릎을 탁 치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사실도 생기겠네요. 근데 여기 와서 북한에 대해 공부하면서 새롭게 안 사실 있나요?

지철호 : 주로 역사 문제가 그렇습니다. 저희는 항일 무장 투쟁사에서 김일성만 알았는데 김두봉의 연안파도 알게 됐고 남침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정말 저에게는 새로운 사실이죠. 사실 보면 김일성을 부각시키다보니 역사 속에서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마저 다 평가 절하됐어요. 그 사람을 제쳐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이수연 : 저는 근대사 전체를 다르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됐어요. 조국해방전쟁이라든가 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김일성만 부각시켰는데 여기 와서 새로운 인물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박헌영도 그렇고 김일성 주석도 러시아 군인으로 있었던 것도 그렇고요. 보천보 전투 같은 것도 북한에선 역사 유적지까지 만들었지만 여기 와서 배운 걸 토대로 생각해보면 광복에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요. 그런 걸 알게 되니까 허무하다기보다는 이런 사기꾼들... 막 끓어올랐어요.

진행자 : 어쨌든 역사 부분도 그렇고 북한에 대해 계속 공부가 필요하겠네요.

이수연 : 당연하죠. 남쪽에서 살다보면 질문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대북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김정일 위원장 죽었을 때도 정말 별의별 것을 다 물어보는 거예요. (웃음) 그런데 그런 때 저의 말 한마디로 사람들이 탈북자 전체를 평가한다거나 북한을 평가하게 돼요. 그래서 저의 입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잘 배워서 정확한 답변을 줘야죠. 또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팽배한 것들도 많아요. 예를 들면 탈북자들은 다 배고파서 북한을 나왔다... 이거 그렇지 않거든요? 사람들이 탈북 한 이유도 틀려요. 예전엔 배고파서 나왔지만 요즘엔 교육 때문에 또 자유를 찾아서 탈북 하는 사람도 있고요. 이런 걸 제대로 설명하려면 제가 제대로 알고 있어야죠.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고요.

진행자 : 그래서 북한에서보다 남한에 와서 북한을 더 잘 알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두 분, 앞으로 더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부분이 있나요?

지철호 : 일단은 정치상황이나 주민들의 생활환경이요. 우리가 살아왔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기고요. 그래야 여기 사람들에게 전해줄 때 남한을 알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쉽게 전해줄 수 있고요. 저희들도 배워야죠. 계속 공부해야죠.

앞에서 잠깐 얘기를 들어봤던 북한학과 전공생, 이혜숙 씨는 아이를 낳은 뒤 북한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일하다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 공부를 마음먹었기 때문에 일단 취직 잘 되는 학과가 일 순위였지만 아이를 낳고 마음이 바뀌었답니다.

“아들을 낳고 보니 분단이라는 게 너무 가까이 느껴졌어요. 생각해보면 우리 조부모님부터 부모님, 우리 세대까지 남북은 계속 총부리를 겨누고 살았잖아요. 근데 세월이 흘러서 내 아들에게도 이런 상태를 대물림을 해주면 안 되잖아요?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일종의 소명이라고 얘기한 수연 씨, 철호 씨의 말과 통하는 면이 있는 얘깁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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