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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국경지역에서 바라본 사진 속 북한 주민들은 그들만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 시간이 멈춰버린 또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지만, 화려한 평양과 대비되는 황량한 국경지역 사진은 그 자체로 북한 당국이 애써 감추고 싶었던 현실을 보여줍니다.


최근 북중 국경을 따라 촬영한 사진들을 책으로 펴낸 한국 동아대학교 부산하나센터의 강동완 교수는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알려면 평양이 아닌 국경지역을 살펴봐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곳은 화려한 평양과 달리 북한 주민들의 고된 일상을 고스란히 불 수 있기 때문입니다.


nk3_py882-6-4.jpg공놀이를 하는 남자 어린이와 카메라를 향해 총을 겨누는 어린이.
NK3_py882.6_img_1.jpg물놀이를 하는 여자 어린이들.
NK3_py882.6_img_1_2_2.jpg강가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자.


2019년 4월부터 11월에 걸쳐 북중 국경지역을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장난감 총을 겨누는 남자 어린이와 중국에서 들여온 듯 영어로 이탈리아(Italia)라고 씌여진 옷을 입은 아이가 서 있습니다. 수영복을 입고 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여자 어린이들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합니다. 강가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엄마와 어린 아들의 모습에는 북중 국경을 가로질러 흐르는 압록강이나 두만강이 북한 주민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터전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강 교수는 북중 국경지역을 다닐 때 북한 주민과 인사를 나눴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남북이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를 표시하는 안내 표지판과 북한 어린이.

북중 국경에서 거리가 가까운 곳은 대화를 하면 들릴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안녕’하고 인사하면 북한의 어린이들도 손을 흔들어 주거나, 북한 어린이들이 강변에 나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제가 ‘뭐해?’라고 물었더니 ‘놀아’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고, ‘고기 많이 잡혔어요?’라고 물어보면 ‘잘 안 잡혀’라고 대답한 적도 있죠. 똑같은 우리 말을 쓰고 있는 사람들인데, 중국에서 압록강 너머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이었습니다.



강 교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압록강에서 낚시하는 남자 어린이의 사진을 꼽았습니다. 무릎 높이의 강에 들어가 물에 흠뻑 젖은 채 낚싯줄을 묶고 있는 남자 어린이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입니다.


나뭇가지에 낚싯줄을 묶어 고기를 낚고 있는 남자 어린이.

한 어린아이의 눈빛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나뭇가지에 겨우 낚싯줄을 묶어 여러 마리의 고기를 낚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었는데, 깡마른 체구와 무표정한 얼굴, 무엇보다 그 어린이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이 우리(한국) 아이들이라면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북한 어린이들도 지금 한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복지가 보장되는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RFA Korean · [뉴스 인뎁스] 북중국경서 엿본 북한의 속살 - 1




| 무거운 포대자루에 넘어지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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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짐칸에 타고 농촌 동원을 떠나는 북한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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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에서 작업하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 속 북한 어린이들의 삶에도 고단함이 묻어 있습니다. 파란 트럭의 짐칸에 빼곡히 실려 아슬아슬한 산길을 내려가는 북한 어린이들은 농촌 동원을 나가는 중입니다. 옥수수밭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는 아이들도 아직 앳된 모습입니다.



굉장히 마음이 아픈 사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을 찍을 때 굉장히 높은 곳을 촬영했는데, 북한의 허름한 트럭 뒤에 빼곡히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다름 아닌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는지 확인해보니까 농촌 지원을 하러 나가는 장면이었죠. 절벽 위로 차가 다니고 있었는데, 세계 어디를 봐도 어린이들을 그렇게 트럭에 태워 동원 현장으로 가는 모습은 없을 것 같은데, (북한에서)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죠.



2019년까지 북중 국경지역에 거주하다 탈북한 한서진(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는 북한에서 어린 학생들이 농촌 일손 돕기에 동원되는 건 일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내에 있는 학생들이 농촌으로 갈 때는 차를 타고 가지만, 농촌에서 농촌으로 갈 때는 걸어서 가죠. 한 번 나가면 한 달 정도 가 있는 겁니다. 북한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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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강변에서 모래 나르기 작업을 하는 북한 어린이. 모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넘어진 모습.

어린 학생들은 농촌 일손 돕기에만 동원되는 게 아닙니다.

촬영 당시 일요일이었는데도 강변의 모래를 담아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모래자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있는데요. 북한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 일요일은 공휴일로 지정돼 있지만, 마침 많은 어린이들이 강변에 나와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변의 모래를 담아 옮기는 작업인데, 아이가 워낙 어리다 보니 포대자루의 무게에 짓눌려 넘어지고 만 장면을 제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북한에서) 아동 노동이 매우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강도 혜산시가 고향인 탈북 여성 김혜영(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사용) 씨도 각종 동원과 작업 등으로 어린 학생들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사진 속 북한 주민의 생활이 더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어깨에 뭘 메고 일하는 학생은 아마 돌이나 모래 같은 것을 나르는 것 같은데, 집이나 학교를 보수해야 할 때 돌이라 모래를 내라는 과제가 있으면 아이들이 나가서 하는 거죠. (사진의 모습은) 더 옛날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요.





|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북중 국경의 북한 주민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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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밀고 끌고 가는 북한 남성들

철조망 너머 작은 수레에 무언가를 잔뜩 싣고 가는 두 북한 남성.

한 명은 앞에서 끌고 다른 한 명은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온 힘을 다해 수레를 밉니다. 이를 악문 얼굴에는 힘겨운 표정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압록강 끝에서 두만강 끝까지, 북중 국경지역에서는 화려하게 꾸며진 평양과 확연히 대비되는, 북한 주민들의 고단한 진짜 삶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RFA Korean · [뉴스 인뎁스] 북중국경서 엿본 북한의 속살 - 2



| 북한 주민 생활, 최근 10년 사이 큰 변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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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국경지역의 북한 주택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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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사이에서 보이는 모자이크 벽화.

사진 속 북중 국경지역의 모습은 몇 년째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15년 전 고향을 떠나 온 김혜영 씨는 사진 속 북한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15년 전 그때와 비슷하긴 하지만, 더 한심해 보이는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파요. 오히려 옛날보다 더 못한 것 같아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고요. 그냥 너무하다는 생각만 드네요. 그래도 김일성 주석 당시에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는 정말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도 뭐가 발전됐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이 사진을 보면 변화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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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가는 북한 주민들.

반면 2019년까지 북중 국경지역에 살았던 탈북 여성 한서진 씨는 사진 속 북한 농촌 지역이 과거보다는 많이 발전한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씨는 사진에 나타난 모습이 그다지 발전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그래도 옛날보다 나아졌다’라며 ‘최소한 요즘에는 밥 굶는 사람이 없고, 옷차림도 이전보다 수준이 높아졌지 않냐’라고 반문합니다.



제가 볼 때는 그래도 10년 전보다 농촌 현실이 많이 발전된 상태에요. 제가 10년 전에 농촌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막연했거든요. 그래도 요즘은 굶는 사람도 없고, 옷도 너무 못 입지도 않아요. 농촌에서 식용 기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지금은 시골 사람들도 기름이며, 흰밥 다 먹고요. 그런 점에서는 10년 전보다 발전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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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국경지역의 한 마을의 모습. 자력갱생을 강조한 선전 문구가 눈에 띈다.


RFA Korean · [뉴스 인뎁스] [뉴스 인뎁스] 북중국경서 엿본 북한의 속살 - 3



같은 북중 국경지역이라 해도 도시와 농촌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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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선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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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난 때문에 밤에는 선전 구호와 공공건물 외에는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북중 국경의 여러 도시를 다녀봤다는 한서진 씨는 시내에 사는 북한 주민이 농촌에 비해 옷차림부터 먹는 것, 심지어 피부색까지 큰 차이가 난다고 말합니다. 또 같은 도시라 해도 신의주와 혜산의 발전된 모습이 다르지만, 전력 사정은 어디나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한 씨는 덧붙였습니다.

강 교수는 북중 국경지역을 다닐 때마다 남북 간 생활 수준의 격차는 물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북한 주민의 삶을 계속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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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국경의 감시초소에서 경비 근무를 서는 북한군.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들이 이 사진 속에 담기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누리고 살아가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들이 이 사진들에 담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진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의 실생활이 바깥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고 이들의 삶이 더 나아질 때까지 그가 북중 국경지역의 모습을 앞으로도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기록하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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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완 교수 프로필
동아대학교 하나센터장
유튜브 '강동완 TV' 운영


| 주요저서
『평양 882.6km: 평양공화국 너머 사람들』,
『평양 밖 북조선: 999장의 사진에 담은 북쪽의 북한』,
『그들만의 평양: 인민의 낙원에는 인민이 없다』,
『엄마의 엄마: 중국 현지에서 만난 탈북여성의 삶과 인권』,
『사람과 사람: 김정은 시대 북조선 인민을 만나다』 (2016 세종도서),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
『김정은의 음악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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