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신의 탈북자 한영진씨는 남한에서 북한관련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신문 데일리 엔케이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남한생활 2년째가 되는 안씨는 남한에 입국해서 가장 놀랐던 것이 여성들의 자기표현이 과감했던 것이라고 회상했습니다. 서울에서 이진서 기자가 한영진씨를 만나봤습니다.
36세의 총각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 소개를 직접 해주시죠.
제 고향은 평양이고요. 탈북은 98년에 했습니다. 두만강을 넘어 고향을 떠나오면서 제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집이 있고 원초적인 배고픔만 없다면 저도 안 떠났을 것이고 부모, 친척과 헤어지지도 안았을 것입니다. 저의 탈북 배경을 보면 98년 당시는 젊은 사람들이 전혀 할일이 없었습니다.
모든 공장들은 전부 멎어서고, 봄철이 되면 특히 식량난에 시달리곤 했는데, 그때 젊은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자기 생계를 유지하겠다,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 보겠다 하는 작은 희망조차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나가 노동력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서 인간답게 살아 보겠다. 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기 생계를 유지해보겠다는 이런 소박한 심정에서 결국엔 탈북이라는 길까지 들어서게 됐습니다.
평양에서 살았다면 집안도 좋고, 인텔리였던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요?
물론 대학은 졸업을 했습니다. 북한도 대체적으로 다양한 계층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중앙당에 고위 간부나 중앙기관 사람들과 일반서민들이 사는 실태나 환경이 심각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중앙기관에 입사를 한다 하면 대체로 중앙고위관리 자녀들이 입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서민의 자식들은 취직도 안 되고 중앙기관에 들어 갈 수 없고, 자기의 희망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이북 사회거든요.
본인은 어느 계층에 속해 있었다고 봅니까?
저는 여기로 말하면 서민층에 불과하겠죠.
남한에는 언제 입국을 했고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요?
남한에는 2003년에 들어왔습니다. 중국에서 5년을 살았습니다. 그런 과정에 중국말도 좀 배웠고 엄청 힘들었습니다. 동남아로 나가서 중국을 벗어나야 우리가 북송의 위험 속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공안들의 통제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5년 전에 북한을 떠났고, 또 5년 후에는 중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광서성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몽골로 들어와서 수천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거쳐서 대한민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남한에 와서 보니까 본인이 생각했던 그런 곳과 같던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소개해 주시죠?
제가 일단 대한민국에 2003년 7월에 들어와서 수사기관의 소정의 단계를 거치고 거리 구경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나가보니 사람도 많고 차도 많더라고요.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이 아가씨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중국에 있을 때도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모습을 봤지만 일단 대한민국에 들어오니까 중국과는 다른, 북한과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이 눈에 딱 띄더라고요.
어떻게 다른 모습이었습니까?
일단 짧은 치마를 입고, 아가씨들의 키가 보통 160에서 166 많게는 170Cm 까지 키들이 전부 크고 이쁘더라고요. 남남북녀라고 해서 저는 북쪽의 여자들이 더 이쁘고, 남쪽의 여자들이 못하다는 생각을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평양의 여자들의 모습과 비교해서 남쪽에 오니까 어디라도 할 것 없이 아가씨들이 이쁘더라고요. 그래서 남한 선배님에게 설명을 부탁드렸는데 그것은 화장을 하고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통제를 안 한다, 그래서 참 자유가 있는 사회라고 생각을 많이 했던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북한소식을 전하는 데일리엔케이 라는 기관에 근무하고 계신데 하는 일좀 소개를 해주시죠?
저는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일단 신문을 보고 들어오고, 인터넷 포탈사이트(검색)에 들어가서 대체적으로 어떤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내가 북한의 실상을 어떻게 하면 잘 알려줄 수 있겠는가 하는 그런 기사를 찾습니다. 보통 하루에 업무량은 16절지 3장 정도를 씁니다. 제가 처음 입사를 해서는 기사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점차적으로 이제는 심도 있고 분석하는 기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단독으로 입국을 해서 이제는 결혼정년기가 꽉찼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입국할 때부터 몹시 늦었다 이제 노총각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입국해서 들어오니까 의외로 남한의 청년들이 장가를 늦게 가더라고요. 또 남한 여성들도 보통 30세 이상에 시집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니까 대체적으로 여기는 자립할 수 있을 때 까지는 가정을 안 가지는 것이 보편적이더라고요. 저는 아직 늦었다고는 생각을 안 하고요. 좋은 아가씨가 생기면 앞으로 결혼할 생각입니다.
결혼은 어디 여성하고 하실 생각입니까?
제가 남한 여성과도 좀 사귀어봤고, 북한 여성과도 사귀어 봤는데 제가 편안하기는 북한여성이 괜찮더라고요.
이진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