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태양 아래’ 주민 자주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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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서울에서 개봉한 영화 하나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비탈리 만스키라는 러시아인이 만든 ‘태양 아래’라는 기록영화입니다.

만스키 감독은 북한의 평범한 소녀의 일상생활을 통해 북한사회를 있는 그대로 조명하는 기록영화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북한 당국자들이 기록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부터 상황, 심지어 길거리 모습까지 조작했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북한 당국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카메라를 켜두고도 촬영하지 않는 것처럼 현장에다 방치해뒀습니다. 그래서 기록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당국자들이 이렇게 말하라, 저렇게 행동하라 지시하는 것, 길거리 행인들의 연기를 가르치고 통제하는 모습들을 몰래 다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촬영한 필름은 복사해서 감춰두고 문제가 없을 법한 부분만 북한 보위부에게 매일 검열을 받고 사용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러시아에 돌아가서는 복사해 둔 필름으로 이 기록영화를 편집제작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평양의 진미라는 8살 여자아이의 일상생활을 보여줍니다. 진미는 봉제공장 기술자인 아버지와 콩우유 공장의 근로자인 어머니와 살고 있고, 태양절을 앞두고 ‘조선소년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진미의 소년단 입단식과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학교생활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영화의 표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만스키 감독이 진짜로 보여주는 영화는 진미의 일상생활을 조작 통제하고 연출하는 북한 당국자들의 모습입니다.

북한당국은 만스키 감독을 활용해서 잘 꾸며진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는 선전영화를 만들려고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당국자들의 숨은 의도를 역이용해서 오히려 북한의 거짓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감독은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북한사회 모든 곳에 거짓과 연출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전선동으로 사회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이 모두 통제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구소련의 스탈린 시대와 비교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옛 소련에서도 정부의 선전선동이 있었지만 아무런 영향력은 없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반체제 인사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국민들은 자유롭게 생각하며 새 세상을 꿈꿨기 때문에 정부의 선전을 믿지 않았다”라고 만스키 감독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정부의 선전선동과 주민들의 생각에 거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북한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간단한 자신의 의사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당국은 간단한 말조차 어떻게 표현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일일이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생각이나 자유의지가 없어서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당국의 철저한 우상화 주입교육, 3대까지 처벌하는 잔혹한 연좌제, 그리고 전 인민과 사회를 꼼꼼히 엮어놓은 조직생활의 감시망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탁아소에 다니면서부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혁명역사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되고 7살이 되면서 소년단에 가입하면서 조직생활은 시작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주민들은 반드시 조직에 가입해야 하고 정치조직을 통해 사상성과 조직성을 점검 받으며 당과 김정은이 지시하는 바대로 어긋남 없이 생활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2014년에 나온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에도 북한당국의 ‘사상표현의 자유 위반행위’는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선소년단 가입을 시작으로 전 인민들에게 혁명역사 교육을 주입함으로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심과 외세에 대한 적개심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영화에서 진미도 이제 막 조선소년단에 가입했으니 본격적으로 조직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조직생활을 하면 어떻겠냐는 감독의 질문에 진미의 큰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감독은 진미를 달래기 위해 즐거운 생각을 해보자며 기억하는 시라도 한번 외워보라고 다독입니다. 진미는 바로 “나는 자애로운 할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키워 주신…”이라고 시작하는 ‘조선소년단 입단선서’를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읊었습니다.

이것이 ‘태양아래’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북한당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주민들의 의식을 지배하여 자주성과 창조성을 말살하고 있는가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