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조중 동맹조약 흔들리나

김태우·동국대 석좌교수
2017.05.10

중국의 환구시보라는 신문은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로서 중국 지도부의 복심(腹心)을 전달하는 선전매체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가 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수용하면 중국이 한국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내용을 흘린 것도 환구시보였으며,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 중국 정부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위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중국내 매장들을 사실상 폐장시키고 있으며 한국 수출품에 대한 통관 지연,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 금지, 한류 연예인들의 중국방송 출연 금지 등 다양한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구시보가 이번에는 “중조 우호조약을 유지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사설에서 환구시보는 “북한의 핵개발은 조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지적하고 핵문제를 둘러싼 중북 간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동맹조약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 지도부의 복심을 대변한 것이라면, 1961년 이래 북중관계를 뒷받침해 온 북중 동맹조약이 마침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양정권의 고집스러운 핵개발이 국제사회로부터의 따돌림을 초래한 것을 넘어 이제는 북한의 마지막 보루인 중국과의 관계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래 북한의 동맹국으로 자리매김을 해왔습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을 통해 한달 만에 남한 국토의 90%를 점령하는 전적을 올렸지만, 유엔군의 참전으로 북한군이 패퇴해야 했고 평양정권은 패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鮮)’와 ‘구인자구(救隣自救)’의 기치 아래 참전하여 4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정권을 지켜주었습니다. ‘항미원조’란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돕는다는 뜻입니다. ‘구인자구’란 이웃 친구를 구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뜻인데, 이는 중국이 북한을 자신들을 보호하는 전략적 완충지대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두고 중국 사람들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2012년 최고지도자로 취임하면서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의 정권과 체제를 지켜주는 중국의 역할은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여 교역량이 2,500억 달러가 넘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북한이 끊임없이 핵개발을 하면서 역내 불안정을 조성하는 중에도 중국은 석유공급과 식량제공을 통해 북한정권의 생존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중조 우호협력상호원조(友好合作相互援助) 조약은 이 과정에서 체결된 북중 간 동맹조약으로서 중조 혈맹(血盟)관계의 상징입니다. 중조 동맹조약은 1961년 자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김일성이 서명했는데, 제2조는 “한쪽이 침략을 받으면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자동개입을 명시하고 있으며, 어느 일방이 수정이나 폐기를 요구하지 않으면 20년씩 자동 연장되는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1961년 9월 10일 발효되어 1981년과 2001년에 자동 연장되었으며, 다음 만기일은 2021년 9월 10일입니다.

북한은 1961년 7월 6일 구 소련과도 자동개입 조항을 포함하는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 바가 있습니다. 이 조약은 매 5년마다 연장되어 왔는데, 1992년에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자동개입 조항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고, 2000년 2월 9일에는 러시아의 요구에 따라 북러 친선선린협력조약(신조약)으로 갱신되었습니다. 즉, 북러 간 동맹조약이 폐기되고 통상적인 우호협력 조약으로 바뀐 것입니다. 2014년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지만, 러시아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입니다. 핵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로 인하여 유엔안보리가 일곱 개의 대북결의를 채택한 상태이며,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외교·금융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금년 4월초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도 북핵에 대해 종전과 달리 강력한 경고음을 내고 있습니다. 지난 2,3월 중국은 북한산 수출용 석탄의 반입을 금지했고, 4월 14일에는 중국국제항공(Air China)이 베이징-평양 노선을 잠정 폐쇄했습니다. 환구시보는 4월 12일자 사평을 통해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면 원유공급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밝혔고, 4월 17일자에서는 “미국이 북한 핵시설에 대해 군사행동을 하더라도 미군이 38선을 넘지만 않으면 중국은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며, 이어서 5월 3일에는 조중 동맹조약의 유효성 문제마저 제기하고 나선 것입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환구시보가 동맹조약의 필요성을 거론하는 것은 북한의 핵포기를 압박하는 외교카드 수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하는 경우 고립이 심화됨은 물론 북한정권을 지탱해준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정권이 ‘불패의 핵보유 강성대국’을 외칠수록 스스로를 위한 생존기반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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