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9월의 호국영웅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김태우·동국대 석좌교수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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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한반도에는 9월 내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의 지난 7월의 ICBM발사와 9월초의 제6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연거푸 대북결의를 채택했지만, 북한은 일본 상공 너머로 미사일을 쏘았고 태평양 쪽으로 수소탄도 발사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하여 “로켓맨이 자살임무를 수행중”이라고 비난했고, 21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장소에서 북한을 향해 “스스로를 고립과 몰락으로 끌고 가는 무모한 선택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어서 열린 한미일 삼국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리용호 외무상은 ‘과대망상이 겹친 정신이상자,’ ‘거짓말의 왕초,’ ‘악의 대통령’ 등의 막말과 함께 여차하면 미국에 대해 가차없는 예방적 선제타격에 나설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그 무렵 괌 기지에서 발진한 미국의 B-1B 랜서 폭격기들은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미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동해안을 따라 북한쪽 공역을 비행했습니다. B-1B 는 60여 톤의 폭탄을 싣고 음속 1.25의 속도로 날 수 있는 초대형 전략폭격기이며, 유사시에는 B61과 같은 전술핵 24개를 탑재하고 두 시간 만에 한반도로 날아올 수 있습니다. 리용호는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이상 앞으로 미군 항공기가 북한 영공을 침범하지 않더라도 자위적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이렇듯 북핵을 둘러싼 긴장이 이어지는 중에도 9월 22일 오전 11시 서울 은평구에 있는 평화공원에서는 민관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950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 해군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를 기리는 추모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쇼 대위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와 선교사로 봉사하던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 의 외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은 죽기를 다해 한국을 위해 봉사하던 쇼 선교사를 ‘서위렴’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서위렴 선교사의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는 평양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미 해군에 입대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후 1947년 전역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미 군정청 소속으로 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는 학업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밞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있던 부모님에게 편지를 보내 “대한민국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고 있는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선교사로 가려 하는 것은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그리고는 미 해군에 재입대하여 해군 정보장교로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고, 작전 완수 후에는 지상전투를 자원하여 미 해병 5연대에 배속되어 서울탈환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1950년 9월 22일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서 후방정찰 중이던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 매복조의 공격을 받아 격렬한 교전 끝에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습니다. 그가 전사하고 일주일 후 유엔군은 서울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정부는 쇼 대위의 지인들이 모은 성금으로 1956년 그가 전사한 자리에 추모비를 세우고, 평생 한국을 위해 봉사한 그의 부모님과 함께 서울 합정동 양화진의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요한복음 15장 13절의 성경구절이 새겨졌습니다. 한미 양국의 정부는 충무무공훈장과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했습니다. 이후 그의 추모비는 응암동 어린이공원으로 옮겨졌다가 2010년에 새로 조성된 은평평화공원에 이전 설치되었습니다. 쇼 대위의 동상도 건립되어 2010년 9월 22일에는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2010년 제막식에는 쇼 대위의 큰 며느리인 캐럴 쇼(Carole Cameron Shaw) 여사, 둘째 아들 스티븐 쇼(Stephen Richard Shaw)와 부인, 두 명의 손자 윌리엄 쇼와 데이비드 쇼 등이 참석했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추모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고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고인이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갈 것을 호소했습니다. 제막식 행사를 주관한 은평구청은 쇼 대위의 죽음에 대한 더 많은 자료를 모으기 위해 국방부, 해군본부,미 해병사령부 등을 통해 1950년 당시 함께 싸웠던 미군들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모두 고인이 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2010년 한국 국가보훈처는 쇼 대위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고 2017년 서울지방보훈청은 그를 서울을 지킨 ‘서울 호국영웅’으로 지정했습니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 7천 명에 달합니다. 살아서 돌아간 병사들도 대부분 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작은 감사가 모여 공원과 동상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쇼 대위의 한국 사랑은 오래동안 한국인들의 곁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금년 추모식에 참석했던 한국의 해군장병들과 퇴역군인들은 내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9월이 되면 제2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숨져간 쇼 대위를 추모하러 이곳에 나올 것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되어가는 현재 북한은 핵을 앞세우고 또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지켜주기 위해 싸우다 숨져간 동맹국 장병들을 기억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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