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국민을 귀중히 여기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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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2일 평양국제공항에서 항공기에 탑승하려던 미국 시민권자를 구금했습니다. 구금된 사람은 한국계 미 시민권자인 토니 김(김상덕)이며 그는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1개월 정도 회계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현재 북한에는 토니 김 외에 버지니아 주립대 학생인 21살 오토 웜비어와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인 김동철목사가 구금되어 있습니다. 대학생인 오토 웜비어는 지난해 1월 북한을 관광하던 중 숙소 호텔 제한구역에서 벽에 붙인 구호판을 훔치려고 했다는 이유로 국가전복 음모죄로 체포돼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인 김동철목사는 미국과 중국, 북한을 오가면서 북한주민 후원활동을 하던 중 한국인들과 공모해 북한 군사 기밀을 빼돌렸다는 죄로 2015년 체포돼 10년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현재 토니 김이 무슨 죄를 졌는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 가능성과 미국 핵항공모함 칼빈슨 호의 동해 진입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발생한 미국인 억류사건은 북한이 인질작전을 펴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인질이란 특정한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해 생명을 담보로 잡힌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세시대에는 국가 간 정치적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인질이 이용되었고 그를 볼모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들이 돈이나 요원 석방 등을 목적으로 인질작전을 펴곤 합니다. 그런데 중세에나 이용되던 인질작전을 북한이 펴고 있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인질작전을 펼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은 독재국가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죄인으로 만들어 구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국가는 북한처럼 죄 없는 사람을 마음대로 구속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북한은 자국 주민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대국가에 자기국민이 인질로 잡힐 수 있는 위험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국가는 자기국민의 생명을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구원해야 합니다. 정부가 주민들의 생명을 소홀히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정권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외교 갈등이 심각해지자 북한당국은 자국 내 말레이시아 국민의 출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말레이시아인은 북한 주재 대사관 직원 3명과 그 가족 6명, 유엔세계식량계획 관계자 2명 등 총 11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는 대사관성원뿐 아니라 외국파견 노동자 등 1000여명의 북한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말레이시아인의 출국을 금지하면 당연히 말레이시아에 있는 북한주민도 출국이 금지 될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실제 말레이시아도 북한주민의 출국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말레이시아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북한은 1000여명 북한주민의 생명을 걸고 도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자기주민의 생명을 위해서 북한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북한은 2010년엔 6월 유나 리, 로라 링 미국인 여기자 2명을 비자 없이 북한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가 그해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틀 전 석방했습니다. 또 그해 1월 북한의 기아와 인권실태를 고발할 목적으로 중국을 거쳐 불법으로 북한에 들어갔다 체포된 미국인 곰즈도 8년 노동 교화형을 선고했지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국제사회는 구금한 미국인은 미국정부와의 협상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미국정부가 자국 내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양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 당국의 잦은 미국인구금사건으로 이러한 사실이 주민들 속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당국이 반인민적이라고 비난해온 미국이 평범한 자국국민의 생명을 그렇게 귀중히 여기다니? 북한주민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