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비전향장기수와 인권

김현아∙ 대학 교수 출신 탈북자
2015.03.23

북한에서는 3월 19일 비전향장기수 이인모씨가 북한으로 송환된 22돌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맞이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인모씨의 신념과 의지, 그리고 혁명 전사를 끝까지 조국의 품에 데려온 수령의 사랑을 잊지 말도록 교양사업을 잘하라고 한 것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이인모씨는 전쟁 전 남한에 파견된 공작원으로, 1952년 빨치산 활동 중 검거되어 7년간 복역했고 1961년 다시 붙잡혀 15년형을 선고받는 등 34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3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2000년 9월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송환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송환행사를 크게 조직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주민들은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영웅들에 대한 존경심보다 남쪽에서 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63명 장기수들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외국관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같이 외모도 멋졌고 혈색도 좋았습니다. 주민들은 놀랐습니다. 북한에서는 정치범이라면 감방에서 살아 돌아올 수 없고 경제범 교화소에서도 30여년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북한에서는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말이 돌았습니다. 이인모씨가 북한의 감옥을 보고 싶다고 해서 그래도 괜찮다는 교화소를 준비시켜서 구경시켰는데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곳에선 단 3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면서 죄수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당에 제의했다는 것입니다.

짐작하겠지만 남한의 감옥은 외부와 격리된 곳이어서 그렇지 북한 일반사람들의 생활하는 곳보다 훨씬 나은 곳입니다. 특히 모범수들이 갈 수 있는 감옥은 북한의 중산층이 생활하는 곳보다 더 낫습니다. 울타리도 없고 감방안도 멋있고 주변도 공원처럼 꾸려놓았습니다.

27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구금되었던 감방도 북한에 비하면 휴양소와 같은 곳입니다. 그의 회고록에 의하면 일부 자르기도 했지만 편지도 보낼 수 있었고 면회도 허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치료도 제대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7년간의 감옥생활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정치범을 구금한 남아프리카 독재정권의 열악한 감방실태를 비난했습니다.

감옥의 수준은 그 나라의 인권수준을 보여줍니다. 남한도 전후에는 감옥이 한심했습니다. 그리고 수감자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한이 민주화되면서 수감자들에 대한 처우도 개선되었습니다. 남한은 1998년부터 전향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정견과 신앙은 인간의 자유이기 때문에 정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구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전향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도 다 출소할 수 있었고 북한으로의 송환도 가능해진 것입니다. 지금 남한에는 정치범이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정치범이 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의 상황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합니다. 누구도 그곳에 가본 적이 없고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도 없습니다. 남한에서는 수십 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냈지만 북한은 단 1명의 정치범도 남한에 보낸 적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말하면 북한은 그것이 날조라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전향장기수들을 보면서 그들의 신념과 의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땅같이 차이나는 남북의 인권상황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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