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돌아보는 6.25 전쟁

김현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2016.07.25

7월 27일은 6.25전쟁이 종료된 날입니다. 남북이 같이 겪은 전쟁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이합니다. 우선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에 대한 견해부터 상반됩니다. 북한은 현재도 전쟁은 미국의 지령에 따라 남한이 먼저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합니다.

국제사회에서는 6.25전쟁이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데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1990년 이전에는 사회주의국가들이 북한의 입장을 지지했으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고 남침을 승인해줄데 대한 김일성의 요청을 담은 중국과 소련의 외교문건이 잇따라 공개되고 중국과 소련 당국이 이를 시인하면서 이제는 북한의 남침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되었습니다.

6.25전쟁의 결과에 대한 남북의 생각도 판이합니다. 남한에서는 6.25전쟁을 민족상쟁의 비극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알려진 것처럼 6.25전쟁은 수백만 명의 사상자, 1천만 명의 이산가족, 수많은 전쟁고아를 만들어냈습니다. 인명피해는 북한이 더 컸습니다.

북한의 거의 대다수 가족이 전쟁 시기 귀중한 가족성원을 잃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되고 많은 산업시설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특히 북한은 공중방어역량이 약했기 때문에 폭격으로 평양을 비롯한 도시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파괴되었고 농토는 폭탄구덩이로 변했고 공장들이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남북은 농업생산이 줄어들어 극심한 식량부족을 겪어야 했고 공업생산량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남한에서는 전쟁으로 사람들 간의 반목과 적대감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시기 남한군은 북한에 동조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북한군은 남한과 관련된 사람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죽였습니다. 다정하게 살아오던 이웃들이 치안대와 당원가족으로 갈라지고 서로 잡아가고 죽이다보니 철천지원수로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계급교양의 성지로 되고 있는 신천군에서의 대중적 주민학살도 주민호상 간에 적대감이 고조되어 생겨난 비극이었습니다. 남한역시 이러한 상황이 펼쳐졌고 남한주민과 북한주민사이의 적대감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남북분단을 공고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됩니다. 임시로 나뉘었던 3.8선은 군사분계선으로 고착되고 서로의 침략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져 군사분계선에 무력을 증강했으며 따라서 남북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의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되었습니다. 통일을 목적으로 진행한 전쟁은 분단을 더욱 공고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6.25전쟁을 미제를 타승한 반제혁명전쟁으로 평가합니다. 6.25전쟁은 김일성의 현명한 영도와 주체전법으로 세계 최강의 미국의 무릎을 꿇게 한 전쟁이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6.25전쟁은 남한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한 미국과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한 중국의 역할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북한은 6.25-7.27을 주민들의 전쟁의식을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6.25-7.27을 맞으며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깨뜨려버린 수령의 위대성을 자랑하면서 신천박물관 견학, 청년학생들의 복수결의모임, 평양시군중대회 등을 열고 반제반미계급교양을 강화하여 미제와 계급적 원수들에 대한 증오심을 높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미제와 남조선과 끝까지 싸워 이길 각오를 가지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왜 미국과 남한을 미워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지 의문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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