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클린턴은 왜 웃지 않았는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8월 4일 평양을 방문해서 북한 당국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인 여기자 2명을 석방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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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은 만 하루가 못되는 시간을 평양에서 보내면서 김정일과 회담을 하고 백화원 만찬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클린턴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논평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김정일과 만난 클린턴의 모습에 이상한 점이 발견된 것입니다. 클린턴은 세계의 정치인답게 사교술이 뛰어나고 특히 그의 웃음이 자신의 상표라고 할 만큼 잘 웃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사진과 영상에는, 김정일과 클린턴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같이 사진을 찍었지만 서로 악수를 하거나 포옹하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순안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평양을 떠나기까지 클린턴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김정일과 같이 찍은 사진에서도 김정일은 아주 만족스럽게 활짝 웃는 모습이었지만 클린턴은 무표정하고 무뚝뚝했습니다.

왜 클린턴은 웃음이 없었을까요? 속내를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무표정한 모습을 지은 것일까요? 아니면 정말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미국의 문화와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생각할 때, 저는 클린턴이 정말 웃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존중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든다면 바로 '약자에 대한 보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미국 사람들의 생활에 젖어든 습관입니다. 예를 들어, 건물 현관에서도 항상 약자를 위해서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도록 권하는 것이 생활방식입니다. 그런 미국사람들의 눈에 나약한 여기자 두 명을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체포해서 12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한 북한정권이 어떻게 비치겠습니까? 더욱이 두 여인의 고통을 미끼로 삼아서 미국의 전직 대통령을 불러들이고 최고지도자의 건재를 과시하고 선전하는 쇼를 벌이는 북한체제가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미국인들은 약자를 보호하는 생각이 강한 만큼 약자를 이용하려는 비열한 행동을 가장 증오합니다. 미국이 인권문제를 중시하는 것도 바로 독재치하의 주민을 약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해서 웃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약자의 고통을 미끼로 정치적인 이익을 챙기는 비열한 북한 정권'이라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박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클린턴의 방북을 통해서 미국은 두 여기자를 사면시킨 김정일에게 고마워하기 보다는 지금의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한계를 다시 한 번 절감했을 것입니다. 말썽을 일으켜서 이득을 보던 북한의 전략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종착점에 도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