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독재자의 호화 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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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웃나라를 협박하던 독재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권이 무너진 지 몇개월이 지난 2003년 12월 자신의 고향인 북부 티크리트의 한 농가에서 미군에 의해 생포되었습니다. 그가 붙잡힐 당시 경호원 두 명과 함께 어둡고 좁은 무덤과 같은 굴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후세인이 붙잡힌 농가와 그의 티크리트에 있는 궁정은 3킬로미터 거리밖에 안됩니다. 2006년말 후세인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후세인이 1969년부터 2003년까지 석유가 많은 이라크의 정권을 장악하는 동안 이라크 국민은 정치탄압, 인권유린, 전쟁, 전범과 대학살에 의해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고 살았습니다. 반면 사담 후세인은 가족과 함께 엄청난 재산을 불법으로 모으며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최근에 사담 후세인의 놀라운 재산에 대해 또다른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라크와 프랑스와의 법정 공방 끝에 이라크 소유로 인정받은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오션 브리즈' (Ocean Breeze)라는 요트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요트는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하고 이라크로 돌아갔습니다. 해결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라크 정부는 계속해서 새 주인을 찾겠다고 주장합니다. 1982년 덴마크에서 건조된 '오션 브리즈'라는 요트는 현재 약3천만 달러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요트는 일반 사람들이 상상 조차 못할정도로 화려합니다. 길이 82m의 '오션 브리즈' 요트는 객실마다 황금 수도꼭지를 갖춘 욕실이 있고 증기 사우나와 첨단 오락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또 다른 독재자의 요트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2009년6월 세계 언론은 이탈리아 당국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주문한 호화 요트 2척을 압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1718호와 1874호를 이행한 결과였습니다. 이탈리아 당국에 따르면 요트 2척의 가격은 미화로 1천850만 달러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실패한 공산주의 중앙경제계획, 김씨 일가를 중심으로 하는 1인독재와 고위간부들의 부패 때문에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 최고 지도자가 그렇게 비싼 돈을 들여 고급 요트를 주문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나 후세인과 같은 독재자뿐만 아니라 다른 공산주의 독재자들 중에도 이러한 경우는 있었습니다. 냉전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하던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인 엘레나도 인권을 탄압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을 굶기면서도 사치스러운 명품을 많이 샀고 요트도 몇 척 있었습니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에서 일어난 반공산주의 혁명으로 차우셰스쿠와 부인 엘레나는 사형을 당했고 차우셰스쿠 부부가 사망한 후 그들의 요트까지 포함해 재산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리더'라는 요트는 이제 루마니아 백만장자의 재산입니다. 몇 년 전 루마니아의 경제상공부 장관이 그 요트 위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차우셰스쿠가 요르단 왕에게서 선물로 받은 '우정'이라는 요트는 1989년 이후 경매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요즘 옛날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국가들처럼 빈부차이가 심합니다. 지난 몇년동안 북한과 거래를 하는 중국 상인들, 탈북자들과 다른 북한내 소식통은 빈부차이가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고 보도해왔습니다. 몇년 전 일본의 TBS 방송국은 북한의 빈민층과 특권층의 빈부 차이에 관한 기록 영화를 방송했습니다. 일본 촬영팀은 북한 시골에 있는 일반 가정집에서 식사를 준비 하는 장면과 북한 간부 가족이 고급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해 비교했습니다. 이 기록 영화는 평등주의를 설교하는 북한에서 특권층과 빈민층 간의 빈부 격차가 극심함을 보여줍니다.

북한 일반 가정집에서는 거의 먹을 것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다 먹을 것이 있어도 야채나 감자, 밀가루 등의 단순한 음식 재료가 있을 뿐입니다. 특권층은 빈민층과 달리 기념 축하 잔치를 즐기고 고급 중국식당에서 맛있는 불고기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독재자와 공산당 간부들은 공산주의 사회가 노동자를 위한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 북한과 많이 비슷하던 루마니아의 경우에도 빈부 격차는 심했습니다. 그것은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의 기본적인 모순이었습니다. 일반인은 식량 부족과 인권 유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독재자와 그의 아내, 가족과 공산당 간부들은 주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 자신들의 생활 수준, 생활 양식과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유지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와 공산주의 독재 정부도 평등주의를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옛 소련의 지배력을 받은 다른 동유럽나라들처럼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정부는 모든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일을 공평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대다수 루마니아 사람이 인권 탄압과 경제 위기에 의한 식량 부족과 전력난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살았는데도 공산당 간부들의 생활 수준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루마니아에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독재자는 사형을 당했고 몇 명을 제외한 공산당 간부들의 운명은 달라졌습니다. 독재자 정권 하에서도 돈과 지식이 있고 발이 넓었던 그들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루마니아의 백만장자들 중에는 공산당 간부 출신들이 많습니다.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루마니아에도 빈부 차이는 있습니다. 빈부 차이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고 위험합니다. 중요한 점은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고 성공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또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는 자가 더 많이 벌기 위해 돈을 투자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고 기존의 기업을 확대시키면서 일자리가 생기고 또 번영하는 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능력이 있는 노동자들도 많은 해택과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와 같은 동유럽 나라에서 옛날 공산당 간부가 개방 후 기업가로서 성공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실패한 공산주의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포기하고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 경제에 의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며 노력하는 생활을 한다면,또한 과거 인도에 대한 죄를 범하지 않았고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후회하고 인정하는 공산당 간부들과의 화해와 용서는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