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새해의 희망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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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은 세계가 기념하는 큰 명절입니다.  이 날 전통적으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새해의 희망과 계획을 결심할 때입니다. 제가 루마니아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신정은 1990년 1월 1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당시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1990년 1월 1일에는 루마니아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지 2주밖에 안되어 온 국민이 수 천 명의 혁명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을 때여서 신정을 그다지 기쁘게 보내진 못했습니다.
어릴 적 기억으로 공산주의 독재에 의한 고통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바로 신정이었습니다.  루마니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는데 전기와 석유를 아끼기 위해 정부는 아파트 건물의 중앙난방을 꺼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실내 온도는 영상 3-4도까지 떨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언어학자이신 저의 어머니는 집에서 글을 쓰실 때 겨울 털 잠바를 입고, 모자와 장갑까지 끼었다는 기억을 아직까지도 가지고 계십니다.
공산주의 시대에도 신정 때 루마니아 사람들은 문화예술회관에 가서 음악회를 감상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예술회관의 실내 온도가 너무 낮아 연주자들이 손가락이 없는 장갑을 끼고 악기를 연주하곤 했습니다. 사회주의 시대 루마니아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잠자러 갈 때 잠옷으로 갈아입지만, 루마니아 사람들은 유일하게 겨울 잠바를 입고 잠자러 갑니다.’
이 날은 아이들이 있는 부모가 신경이 제일 많이 쓰일 때입니다.  신정이라 아이들에게 귤이나 바나나 같은 과일을 사 주기 위해 노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날씨가   안 좋고 눈이 오더라고 바깥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습니다.
당시 루마니아에서 정전이 잦아지자 공산 정부는 전기를 아끼기 위해 TV방송을 많이 줄였습니다.  따라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하나밖에 없는 루마니아 중앙방송국을 하루에 2시간씩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1년에 한번씩, 바로 신정 때, 루마니아 TV는 새벽 6시까지 방송하였습니다.  밤 12시가 되기 직전, 즉 오후 11시 30분부터 공산주의 독재자의 신정 축하 연설이 방송되었습니다.  그것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아주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집안에서 겨울 잠바를 입을 정도로 춥고, 식량이 부족하고, 인권 유린이 그렇게 심한데도, 독재자는 거짓말만 하였습니다.  독재자는 항상 신정 연설에서 루마니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고, 경제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미래가 밝을 것이라 했습니다. 
반공산주의 혁명 이후 루마니아 부쿠레쉬티 대학교 일 학년을 다니던 저도 외무고시에 합격해 한국 유학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한국 명절의 깊은 의미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신정, 구정, 추석, 성탄절이나 석가 탄신일을 화려하게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추석과 구정에는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하기 위해 한국의 넓은 고속도로들은 주차장이 되어 버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려면 추석 같은 명절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24시간까지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살면서 루마니아의 명절 분위기와 가족을 그리워하던 저는 한국 사람들의 정과 한국의 인상 깊은 전통을 경험하면서 두 번째 조국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은 때와 장소 등의 제약 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민주주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2013년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남북한의 이산가족을 포함한 온 국민이 상봉할 날이 꼭 오리라 희망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