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은 로므니아 (루마니아) 국가 기념일이었습니다. 매년 이 날은 로므니아의 통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로므니아도 과거 한반도처럼 삼국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중 로므니아내 몰도바와 발라키아의 두 지역 주민들은 투표를 해서 1859년에 같은 왕을 뽑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몰도바와 발라키아는 통일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영토였던 트란실바니아라는 지방은 오스트리아 – 마쟈르 (헝가리) 제국에 속했기 때문에 20 세기 들어서도 통일되지 못했습니다. 로므니아는 제 1차대전에 참전해 동맹국인 프랑스, 영국, 미국과 로씨야 (러시아)에 합세해 전쟁에 이겼습니다. 그러나 적군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마쟈르 제국과 로므니아 땅에서 싸우면서 많은 로므니아 인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실제로 로므니아 군인 75만 명중 44.76%가 사망했고 16%가 부상을 입었고 10.66%가 실종되었습니다. 제1차대전이 끝난 후에 로므니아 군인 중 약 4분의 1만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다행이도 저의 친할아버지와 외증조할아버지는 가벼운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증조할아버지는 전투하다가 실종되었습니다.
전쟁이 로므니아 땅에서 치러지는 바람에 많은 민간인들이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고, 집도 파괴됐습니다. 당시 약 천만 명의 인구 중 민간인 26만5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결국 오스트리아-마쟈르 제국이 무너진 뒤 트란실바니아는 마침내 로므니아로 통일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918년 신발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이 지역 주민들은 아르바율리아라는 도시에서 모여 로므니아의 나머지 두 지역과의 통일을 선언했습니다.
로므니아와 남북한의 경우를 비교하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로므니아는 천년동안 분단되어 있다가 제1차대전 때 엄청난 희생을 통해 결국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약 천년동안 통일국가였지만 일제시대와 제2차대전이 끝난 뒤 분단되었습니다. 트란실바니아가 로므니아로 통일할 때 로므니아의 일반 사람들, 정치인과 학자들은 몇년에 걸쳐, 점진적인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당장 흡수통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들 모두 천년 통일의 꿈이 워낙 강한 나머지 흡수통일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로므니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살펴보면 오늘날 로므니아 상황은 98년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동안 로므니아 사람들은 몇 세대에 걸쳐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지난 1920년대와 1930년대초반 민주주의 국가였던 로므니아는 오늘에 이르는 동안 제2차대전의 고통과 소련의 침략, 그 이후 공산주의 독재에 의한 인권 침해와 식량 위기, 마침내 80년대 후반 공산정권 붕괴에 이은 민주주의 국가로 향한 전진 등 수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80년대 후반 로므니아에서 반공산주의 독재 혁명이 일어나 공산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로므니아 사람들은 국가 기념일을 바꿔야 했습니다. 로므니아 역사를 보면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3개 영토로 분열돼 있던 로므니아가 통일된 날이 가장 의미가 깊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인들은 90년대 초부터는 매년 12월 1일을 '국가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김씨 일가 정권이 핵과 미사일로 한국과 주변 국가들을 계속 위협하고 있고, 북한은 주민들을 사악하게 탄압하고 있으며 비인간적 반인륜 범죄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과 인권 유린을 포함한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번영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남북한의 통일은 한민족에겐 운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동유럽과 같이 독재, 탄압과 인권 유린을 극복하고 그 운명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북한의 젊은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