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아파트 붕괴를 보도한 이유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4.06.05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5월 18일 북한 언론은 평양에서 발생한 23층 건물 붕괴사고에 대해서 보도하였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것은 유감스럽지만 이런 사건은 세계 어디에든지 생길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북한처럼 기술 수준이 낙후하고 건축자재가 좋지 않은데다 건설공사에 통제가 약한 나라에서 이러한 참사가 생길 가능성은 더 높습니다. 그러나 잘 사는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가끔 생기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자체보다 북한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서 보도를 한 것입니다. 북한언론은 건물이 붕괴되거나 화재의 발생, 배의 침몰, 비행기 추락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절대 보도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당국이 사회주의 지상낙원에서 이와 같은 참사가 생길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북한당국이 사고를 보도했기 때문에 많은 외국 전문가들은 이것이 북한의 언론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이번에 북한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한 이유는 보도하지 않아도 세상에 알려질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붕괴사고가 발생한 곳은 청진이나 무산과 같은 지방도시가 아니라 3백만 명이 살고 있는 평양입니다. 평양 주민들은 지방 주민들보다 외국으로 더 자주 나가며 외부세계와 이런저런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는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울에 비하면 평양은 외국인이 거의 없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화교를 제외하면 북한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거의 모두 평양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3층 건물의 붕괴는 평양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격할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그 때문에 이 사건은 불가피하게 며칠 안에 해외로도 알려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와 소문뿐만 아니라 사진과 같은 영상자료가 외부로 흘러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북한의 정치 엘리트는 숨기기가 어려운 사건이기 때문에 바로 노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보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2004년 4월에 북한 용천역에서 큰 폭발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용천역 폭발 사건도 북한 언론에 의해서 인정되고 보도되었습니다. 이유는 비슷했습니다. 평양 아파트 붕괴 사건처럼 용천폭발은 숨기기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용천역은 중국과 가까워서 많은 중국사람들이 그 폭발을 멀리에서 지켜보았고 여러 언론기관의 기자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 기차를 타고 간 외국인들은 거의 빠짐없이 용천역을 통과하는 기차를 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소식은 불가피하게 노출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북한 언론이 평양아파트 붕괴사고에 대해 보도한 것은 북한 언론 정책의 변화라기보다는 불가피하게 보도한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 언론을 관리하는 지도층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을 숨기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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