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의 때 늦은 농업개혁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4.10.09

요즘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극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농사가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북한은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식량을 필요한 만큼 생산해 냈습니다. 북한의 주장대로 라면 올해도 북한이 외국의 지원 없이 식량을 자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언론은 이와 같은 풍작의 결과를 낳은 것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농업정책 덕이라고 규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풍작의 원인이 무엇이든 북한이 오랫동안 농사작황에서 고전했던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의 잘못된 농업정책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자국의 식량생산량이 증가한 이유는 6.28 방침 덕분이라고 주장합니다. 2012년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내린 이 방침은 농업에서 농가를 중심으로 하는 경영 방식을 실시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체제의 특성 때문에 북한은 이와 같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농가보다는 당과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종합해 보면, 이와 같은 농업개혁은 더 본격화 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제부터는 한 농가가 몇 년 동안 같은 밭에서 농사를 짓도록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은 수확한 식량을 작년의 30%보다 좀 더 많은 양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밭이나 땅이 개인소유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율 농업을 인정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농민들은 수확한 식량 중 자기 몫의 일부를 마음대로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중국에서 1970년대 말에 실시한 농업개혁과 유사합니다. 당시 중국은 농가를 강조함으로써 농가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농민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줌으로써 짧은 기간 안에 식량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수확하는 식량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 농민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아도 생산량을 많이 증가시켰습니다. 결국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사람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식량 자급률 100%를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현재 실시하고 있는 농업개혁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중국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의 정부가 이와 같은 정책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것입니다. 1990년대 말 이러한 정책을 미리 시작하였다면 고난의 행군 같은 비극적인 시대를 거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 당시 기근 때문에 굶어 죽은 사람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살아있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당시에 김정일 위원장이 이러한 개혁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국내 정치불안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경제에 대한 통제력이 조금이라도 약해질 때 체제가 흔들리게 될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지나친 우려였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나 공업 분야에선 경제자유화가 체제를 불안케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농업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정치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은 외부 생활이나 환경에 대해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북한이 뒤늦게라도 농업개혁을 시작한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을 늦게라도 시작했다는 것은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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