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남한에서는 통일에 대한 열정이 없어지고 있는 게 큰 문제입니다. 특히 남한의 젊은이들은 이제 북한의 생활상에 대한 관심도 별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저는 독일 통일에 대한 자료를 읽으면서 남한 젊은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서독은 헌법에서 '독일의 통일'을 정치 목적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서독 주민의 대부분은 세월이 지나면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습니다. 여론조사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1970년대 초까지만해도 서독 사람들은 '통일이 중요한 정치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독 주민들 중 '통일이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3~4%에 불과했습니다. 서독 주민 대부분은 '독일이 수백 년 동안 통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로 인해 통일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는 현재 남한의 학생과 청년들이 갖고 있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식과 아주 유사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동구권에서는1980년대 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통일에 대한 관점에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동독 사람들은 이웃 사회주의 국가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또 1989년 여름부터 서독으로 탈출하는 이들이 많아집니다. 매일 동독에서 서독으로 도망친 사람이 2000명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동독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9년 말 동독 체제가 무너집니다.
당시 동독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은 대부분 통일을 별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개량된 국가 사회주의였습니다. 하지만 동독의 일반 주민들은 지식인이 꿈꾸는 계량된 사회주의보다는 서독에서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자본주의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서독식 자본주의는 경제적 성공과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었습니다 .
이러한 배경 하에서, 통일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서독 주민들은 동독 주민들의 압력에 굴복하고 통일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한 주민들은 현재 통일을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통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할 수 없으며, 통일이 다가 올 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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