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시급한 남북 교류

2009-03-26

1940년대 초강대국 간의 경쟁이나 국내 갈등 때문에 민족분단의 참극을 당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3개국. 한국, 중국, 독일입니다. 한국은 남북으로, 중국은 대만과 중국으로 독일은 동서독으로 갈라졌습니다.

이 국가들 중 대만과 중국은 인구와 땅의 차이가 너무 커서 특별한 경우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과 독일은 비슷한 점이 많아 이 두 나라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두 국가의 반쪽 땅을 차지한 사회주의 체제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1940년대 말 소련의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강제적으로 도입됐고 이후 각각 문화적 전통과 정치적 환경에 맞게 체제가 수정됐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련 사회주의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 차이점도 많습니다. 제일 중요한 차이는 동서독은 남북한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점입니다. 정보 교류도 다양했습니다. 동서독은 면적도 크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서독의 방송을 동독의 어디에서나 쉽게 수신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국가인 서독에서는 당연히 아무런 제한이 없었고, 동독도 외국방송을 보는 것을 거의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서로 소식을 듣고 양국 간의 대중문화도 잘 알았습니다. 그런 근거로 얼마 전 어느 사회학자는 “독일 분단 45년 동안 문화적 공통성에 가장 많은 이바지한 것이 바로 동, 서독인들 모두 함께 볼 수 있었던 TV방송”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동독의 서점에선 서독 간행물도 팔았습니다. 물론 동독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하는 간행물은 아니었지만, 비정치적인 잡지나 책은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동서독 민간교류는 더욱 활발해졌고 서독사람들 누구나, 어느 때나 돈만 내면 동독을 별문제 없이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동독 정권은 외화벌이 때문에 서독 관광객들을 환영했습니다. 1970년에 동독을 찾아간 서독 방문객 수는 125만 명, 1980년에는 227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동독 사람들의 서독 방문도 가능해서 노령 퇴직을 한 사람이면 별 제한이 없이 서독을 방문했습니다.

이처럼 통일 이전에도 동서 독일은 서로 잘 알았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들으면 참 부러운 얘기입니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왕래할 수도 없고 서로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험을 보면 서로 잘 알던 나라에서도 통일 이후 적응은 쉽지 않습니다. 남과 북의 경우 이 적응이 더 어려울 겁니다. 바로 이것이 남북이 활발히 교류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민간 차원이든 정부 차원이든 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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