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스탈린과 김정은의 테러정치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5.06.11

얼마 전 북한의 상황을 분석한 한 러시아 전문가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환경이 1937년 소련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게 1937년은 비극적인 역사가 너무나도 많았던 해입니다. 당시 스탈린 정권은 고급 계층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테러 정치를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1937년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 4/5 정도가 숙청을 당하여,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고급 간부들이나 군인들 또한 비슷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1937년의 테러 정치 때, 고위간부를 제외한 일반 서민들은 어려움이나 위험이 별로 없었습니다. 숙청의 대상은 서민들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3년 동안 북한에서도 아주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 시대의 고급 간부 대부분은 퇴직을 당하거나 숙청을 당하였습니다. 김정일의 사망 무렵, 노동당에서 제일 힘이 컸던 장성택은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인민군에서 힘이 가장 셌던 이영호 또한 숙청을 당하여 현재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입니다.

많은 분석가들은 이와 같은 숙청과 공포정치가 북한의 대내 불안정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음모나 정변을 무섭게 생각하여 위험해 보이는 고급 간부들 혹은 군인들을 없애려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숙청한 고급 간부들은 압도적으로 그의 정치노선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테러 정치가 북한 내에서 정변이나 음모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1937년 스탈린이 아주 비슷한 테러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에 반대하거나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소련에서 스탈린은 하나님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스탈린에 의해 학살된 고급 간부들은 스탈린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스탈린이라는 사람의 절대적인 권력에 도전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 북한 또한 이와 비슷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현영철, 이영호, 장성택 등 고급 간부들을 숙청한 이유는 직접적인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라기 보다 이미 튼튼한 권력 기반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정책은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숙청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 간부들이 체제에 도전할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이와 같은 정책 때문에 북한이 곧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테러 정책은 북한 서민들의 생활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북한 주민들은 사실상 그들도 믿지 않고 싫어하는 고급간부들의 숙청을 오히려 속시원하게 생각하며 환영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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