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 경제계획과 02-03년의 실패한 계획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7.12.07

북한 김정은이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아주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조용하게 개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거나 도입해 온 이 ‘암묵적인 개혁’ 덕분에 최근 북한 경제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당연히 북한 사람들은 개혁이라는 말조차 쓰지 않습니다. 그래도 김정은의 정책은 1980년대 중국의 개혁과 매우 유사한 모습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보면서, 당연히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만든 사람이 김정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이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어느 나라나 최고 통치자는 국가정책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몇 개의 제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북한에서 실시하는 포전담당제, 독립채산제, 기업소 책임관리제를 처음에 계획한 사람은 김정은이 아니라 박봉주 총리 같은 경제 일꾼들입니다.

흥미롭게도, 2013-2014년부터 실시하기 시작한 새로운 경제 정책은 원래 2002-2004년에 개발한 계획이 실현된 것입니다. 당시에 북한은 포전담당제와 독립채산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관리 방법을 검토하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의 개혁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당시에 북한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은 박봉주를 비롯한 경제 일꾼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얼마 동안 실험적으로 실시했는데, 2005년쯤 수구파 당 간부 원로들의 압박에 굴복해 제한적인 개혁노선을 포기하였습니다. 북한식 개혁을 지지했던 간부들은 숙청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고위직을 유지하지 못했고 멀고먼 지방으로 좌천되어 갔습니다.

김정일이 당시에 경제를 살릴 수 있었는데도 개혁을 포기한 이유는,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식의 개혁이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김정일이라는 사람은 나이도 좀 많고 건강도 그리 좋지 않아서 죽을 때까지 체제에 위협이 되는 실험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결정하였습니다. 늙은 당 일꾼들도 비슷했습니다. 결국은 북한이 10년정도의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라는 젊은 후계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10년이나 20년 후에 자신이 죽을 줄 알았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운이 좋으면 50년이나 60년 동안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경제발전을 가속화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이유는 경제가 매우 약한 나라에서 군사력을 제대로 개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중봉기나 혁명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살기가 계속 좋아지고 있을 때에도 혁명을 시작한 민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주민들이 경찰과 싸움을 시작하고 목숨을 걸고 봉기할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김정은 자신은 인민의 복지에 아무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201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식 개혁을 반대하던 원로들은 은퇴하거나 죽었습니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개혁을 시도할 때 반개혁 세력은 김정일 시대만큼 심하게 반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15년 전에 처음 계획되었던 경제노선은 지금에 와서야 실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연히 북한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개혁을 아예 실시하지 않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과거 김정일을 비롯한 원로간부들의 경제개혁에 대한 저항 때문에 잃어버린 10-15년의 세월은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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