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칼럼] 김정은 체제의 ‘통미봉남’

송영대∙ 평화문제연구소 상임고문
2012.02.22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남북대화는 거부하면서 북-미 대화에는 적극성을 보이는 ‘통미 · 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남한 정부는 지난 14일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을 20일 개성 또는 문산에서 갖자고 북측에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측은 회담제의를 내용으로 하는 남측의 전화통지문 수령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명박 역적패당의 대화타령이 요즘 더 극성스러워지고 있다. 대화를 운운할 체면도 없는 극악한 대결 광신자들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북한은 미국과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오는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양국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 직전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 이행 및 약 20만 톤에 달하는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 등에 대한 추가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면 김정은 체제가 과거 김정일 시대에 자주 사용했던 ‘통미 · 봉남(通美·封南)’ 정책을 다시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북한이 남북대화를 거부한 것은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 협력은 포기하고 올해 남한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기를 기다리겠다는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남한 정부가 작년 김정일 사망 후 통일부 장관 교체 등 유연한 대북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김정은이 대남 강경정책을 희망하는 군부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됩니다. 아울러 북한이 남한 선거에 개입, 여당을 꺾고 진보진영의 후보 단일화를 지원함으로써 친북정권 수립을 지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는 한편 북한이 북-미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를 희망하는 중국을 의식한 측면이 강합니다. 아울러 미국이 제공하겠다는 영양지원을 받아들임으로써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 이용하고 김정은 체제의 유화적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태도는 매우 부당합니다.

남북 간에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는 이산가족의 고통을 해소해주는 일입니다. 남북분단이 67년째 지속되면서 헤어진 혈육을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는 이산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남측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12만 8,678명의 39%인 4만 9,776명이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별세했습니다. 그나마 생존자의 80%가 70세 이상의 고령자여서 매년 4천 명 가량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의 형편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가 이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적십자회담을 거부한 것은 천륜을 무시한 비인도적 처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최근 단행한 군(軍)인사에서 천안함 사건주범인 김영철을 대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북한의 대남공작이 남한 선거가 몰린 올해 더 격렬해질 가능성을 높여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김정은 체제가 보이는 첫 대남정책의 실체라고 할 때 남북관계 정상화의 길은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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