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일본과 일본인 유골반환 문제를 논의하면서도 남북적십자 회담을 거부함으로써 이산가족들의 한(恨)은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9일과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과 적십자회담을 갖고 북한지역에 있는 일본인 유골반환 문제에 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봤습니다. 리호림 북한 적십자사 중앙위원회 서기장은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어느 정도 합의를 봤다’고 말해 회담의 진전을 시사했습니다.
일본은 지난 2002년 북한과 일본인 행방불명자 확인을 위한 회담을 가졌으며 이번에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북한에서 사망한 일본인 유골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인 것입니다.
북한이 유골송환문제에 적극성을 보인 것은 김정은 정권이 인도적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키고 유골송환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챙김과 동시에 이를 계기로 쌍방 당국 간 회담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관계 정상화를 통한 경제지원 획득에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인도주의를 앞세워 일본과는 대화를 하면서 남북적십자회담은 거부한데 있습니다. 남한 정부는 지난 8일,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17일, 개성 또는 문산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당국은 남측이 ‘5.24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해야 이산가족 상봉을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북한당국이 사실상 남측제안을 거부한 것으로서 추석을 계기로 추진했던 이산가족상봉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현재 남쪽에 있는 이산가족 12만 8,713명 가운데 고령화로 인해 매년 3~4천 명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당국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문제가 아닌 ‘5.24조치’나 금강산 관광문제와 연계해 거부한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추석 가족상봉이 어렵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남쪽의 87세 된 한 할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피멍이 터지도록 기약 없는 세월 속에 한 맺힌 가슴을 적셔야 하는지요.’라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북한당국은 그동안 걸핏하면 자주, 민족,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를 주문처럼 읊조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절박한 남북이산가족상봉은 팽개치고 일본을 상대로 유골송환 장사나 하려는 반(反)자주적이고 반(反)민족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에 따라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는 전면적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상봉의 정례화, 상시상봉, 고령 이산가족의 고향방문 등 종합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쌍방이 중단된 남북적십자회담을 조건 없이 열어야 합니다.
이번에 적십자회담 재개와 관련, 북한이 전제조건으로 철회를 요구한 ‘5.24조치’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따라 남측이 취한 자위조치이며 금강산관광 문제 역시 남측 관광객을 사살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없이는 재개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에 따라 북한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 정권은 남북관계개선 없이는 북한이 시도하고 있는 경제개선 조치도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