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애는 현재 친자식들을 모두 해외에 내보낸 채 평양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들, 세번째 주인공인 김성애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수경 기자 입니다.
김성애는 김일성의 두번째 부인으로 조선민주여성동맹 (여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북한에서 1970년대 초까지만해도 김성애의 세력이 당의 세력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북한을 나온 고위 탈북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자 정성철(가명)씨입니다.
정성철 : 말하자면 치마바람이죠.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김성애가 김일성의 부인이다 보니까 민주여성동맹을 위원장을 하면서 당도 그렇고 조직들이 여맹을 올려줬습니다. 여맹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올라갔죠.
김성애가 당시 북한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그녀가 북한 주민들의 절대적 지도자인 고 김일성 주석의 부인이었고 그때 까지만 해도 김일성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던 김일성의 두 아들, 차남 평일과 삼남 영일의 어머니였다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김성애가 김일성을 처음 만난것은 1940년대 말, 김일성의 비서실에서 복무하면서 당시 빼어난 미모로 김일성의 눈에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김성애는 김일성의 본처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김정일이 8살 되던 해인 1949년 세상을 떠나자 1952년 김일성의 후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전쟁 기간이었기 때문에 김일성과 김성애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김성애는 김일성 과의 사이에서 큰딸 경진과 두아들 평일, 영일을 낳은 뒤인 1963년 김일성과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김일성의 공식적인 부인이 된 김성애는 1965년 조선민주여성동맹 부위원장을 거쳐 1971년 위원장이 되었고, 1972년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뽑혔습니다. 정치적으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한 김성애는 김일성의 첫번째 부인이자 김정일의 친모인 김정숙을 격하시키는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성애는 우선 김정숙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김정숙을 언급한 모든 문서를 삭제하고 김정숙과 관련한 글을 쓴 집필자들을 모두 지방으로 내려보냈습니다 . 동시에 김성애 스스로에 대한 우상화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김성애 가 여맹 위원장의 직분으로 각 기관 기업소를 현지 지도하는 사진이 전국에 배포되는가 하면, 김성애 여맹 위원장에 대한 책자도 나왔습니다. 김성애는 이와함께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 따라 배우기 운동'를 전개해 김일성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탈북자 정성철씨는 전했습니다.
정성철: 강반석이 김일성을 낳은 어머니인데 강반석이가 혁명가였던 남편 김형직을 위해서 많이 도왔다. 그러니까 그런 운동은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하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하는 사람이 혜택을 봅니다.
그러나 김성애의 정치적 세력 확장은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가 되는 1974년 이후부터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김정일의 처조카로 남한에 망명했다가 1997년 자신의 집 앞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한영이 수기 '대동강 로얄 패밀리'를 보면, 김정일은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 김정숙을 계모 김성애가 격하시키는 것에 대해 분노했고, 이를 김일성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에게 생모인 김정숙 동지는 항일 빨치산 시절부터 수령님을 보필하다 돌아가셨는데 김정숙이 북한 여성들의 귀감이 되어야지 어떻게 김성애 위원장이 좌지우지 할 수 있냐며 따졌다고 이한영의 수기 '대동강 로얄 패밀리'는 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김일성은 김정일의 항의를 받아들여 여맹의 조직을 격하시키고 김성애가 이후 어떤 공식적인 행사에도 나오지 못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1974년 김정일에 의해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발표되면서 김성애와 김성애가 낳은 자식들인 김평일과 김영일 김경진은 '곁가지'로 낙인찍히고 김정일은 자신의 이복형제들을 모두 해외로 내보냅니다.
김정일은 이 일을 계기로 계모 김성애와의 권력 투쟁에서 이기고 후계자로써 완전한 실권을 잡게 됩니다. 이에 대해 탈북자 강금철(가명)씨는 김정일과 김성애간의 권력 투쟁 사실을 주민들은 전혀 알지 못하며 북한의 신세대들은 김성애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증언했습니다.
강금철: 일반 국민들은 고위층의 권력 암투나 이런 것에 대해서 전혀 몰라요. 여기 한국에서처럼 정치에 대해 낱낱이 몰라요. 그리고 권력 암투가 끝난 후에도 그것에 대한 비밀을 고수했습니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말을 하면 정치범에게 잡혀가요. 그만큼 북한의 폭압 감시 체제는 잘되어 있습니다.
그 뒤 30여년동안 김성애는 1997년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 부부의 방북 때 잠깐 모습을 비춘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84살의김성애는 지난 2002년 독일 북한 대사관에서 일하던 둘째 아들 영일을 병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으며, 첫째아들 평일과 딸 경진은 각각 폴란드 북한 대사와 오스트리아 북한 대사 부인으로 해외에 보내놓고 현재 평양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