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북한이 한쪽에서는 나라의 창건일로 기념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의 수립을 선포하는 서로 다른 기념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여기에는 김일성 김정일 왕조가 출범하게 되는 우리 역사의 있어서는 안될 비극이 담겨있습니다.
이수경 기잡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소설가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에서 광복을 맞는 우리 민족의 기쁜 심정을 표현한 구절입니다.
8.15 광복은 그러나 결코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유럽등 연합군의 참전으로 마침내 항복을 선언한 일본의 패망과 수많은 독립 투사들과 국민들이 목숨과 피와 땀을 바쳐가면서 애타게 바랬던 결과였습니다.
마침내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 했지만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그로부터 3년 뒤 남과 북은 각각 다른 체제를 시작합니다. 북한에서는 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공화국 창건을 선언하게 되고 남한에서는 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정부수립을 공포하게 됩니다. 북한은 해방과 동시에 김일성이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고 인민공화국 헌법을 만들기 시작하는등 일단 자신이 주도하는 그리고 앞으로 자손 대대로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적극 나섭니다.
중요한 것은 이때 선출된 북조선 인민회의 위원들이 과연 조선 민중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나 하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영환: 북한 사람들이 뭘 알고 뽑은 것이 아니라 소련 사람들이 빨치산파 김일성을 앞세워서 다 조직하고 조정하고 소련사람들이 다 한것이죠 .
자기 사람들의 손으로 자기 입맛대로 만들어진 헌법을 서둘러 완성한 김일성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왜 북한은 48년 8월 15일, 즉 김일성이 그토록 내세우는 항일 운동의 기념일과도 같은 광복절인 8월 15일을 지나서 9월 9일에 공화국 창건을 선언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김일성의 공화국 창건 선언에 앞서 정부를 수립한 남한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에 대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방이 된 이후 남한은 분단된 한반도를 하나로 이은 통일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한반도 남북한 동시 선거를 통한 정부 수립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등의 한반도 침탈에 대한 야욕으로 남북한 동시 선거는 어렵게 되고 당시 유엔은 한반도 남쪽 남한만이라도 자유선거와 비밀 선거를 치뤄 국회의원을 뽑도록 하고 이들 국회의원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 남한을 대표할 대통령을 뽑도록합니다. 초대 대통령에는 이승만 박사가 선출됐고 광복 후 3년이 지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게 됩니다. 국제사회가 한반도에서 남북한을 통틀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이승만의 대한민국을 인정하자 북한의 김일성은 부랴부랴 공화국 창건을 준비하게 되고 그 날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20여일 뒤인 9월 9일이 되게 됩니다.
차이점은 당시 남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선언한 반면, 북한은 민족이 반토막난 가운데서도 공화국 창건, 즉 나라를 세웠다는 명분으로 9월 9일에 공화국 창건을 선언했다는 점입니다.
고영환: 북한은 소련식대로 내나라다 국가를 건국했다고 한 것이고 남한은 민주주의적으로 분단된 국가니까 나중에 통일되면 국가를 세우겠다라고 해서 정부수립을 선언한 서방식 사고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북한이 갈라져 서로가 다른 정치 체제를 시작하게 됨에 따라 분단이 장기화될 것이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졌고 특히 북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어느 개인을 위한 역사의 유래없는 일인 정권으로 변질됨에 따라 남북한이 통일이나 교류를 위한 접점을 찾기는 더 어러워 지게 됐습니다.
북한 정권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일인 지배 체제가 세습이 되자 북한 체제의 경직성이 더해졌고 그것은 국제 사회로 부터 북한이 고립되고 그 고립속에 경제난과 식량난이 더 어려워지고 결국 주민들의 고통과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란코프 : 북한 정권은 오직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만 관심 있고 주민들의 먹을 문제도 체제 유지를 위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남한은 정부 수립 이후 60년을 보내는 동안 경제 발전과 자유, 국력의 신장을 계속해오고 있고 이제는 친북, 좌파, 세력까지도 남한사회의 한 부분으로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이념적인 여유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친북 좌파 세력도 최근 발생한 금강산 남한 관광객 피격사건이라든지 북한의 남한에 대한 공격적인 자세들으로 점차 남한사회 여론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서울의 언론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체제를 달리 하면서 60년을 보년 남과 북은 이제 또 다른 큰 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고 지적입니다. 이제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겨 결국 북한의 배급체제를 유명무실하게 했고 남한은 한 때 극심했던 보수와 좌익의 이념 대결을 서서히 딛고 새로운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 소통할 수 있는 점접을 찾는 것이고 그것은 무엇보다 북한의 태도변화가 우선되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북한을 보는 탈북자들과 남한 사회의 한결같은 기대이고 주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