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배우며] 통일시대 역군으로 자라는 탈북 청소년들

돈이 없어서, 혹은 이런 저런 이유로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남한에서는 배우고 싶은 굳은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독지가나 지역 장학회의 도움 등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북한에서는 부모형제를 잃은 뒤 기차역이나 장마당을 배회하며 꽃제비 생활을 했던 탈북 청소년들도 남한에서는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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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을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안학교 등을 다니며 통일시대를 대비할 미래 역군으로 자라나고 있는데요, <일하며 배우며> 오늘 시간에는 남한내 탈북 청소년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김태산 씨가 전해드립니다.

언제부턴가, 살길을 찾아 북조선이라는 사회주의 국가를 떠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여기 자본주의 남한 땅으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그 수가 무려 1만 5천 여 명이나 됩니다.

남자, 여자, 어린 아이가 모두 함께 포함된 우리 탈북자들은 남한 땅에 와서 정착금도 받고 집도 받아서 나름대로들 살림을 펴고 자신들에게 맞는 일자리들을 찾아 잘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남쪽의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있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대학에도 갈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학 등록금이 적지 않은 이 남한 땅에서 탈북자들은 거의 무료로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보장돼 있습니다. 참으로 좋지요.

그런데 문제도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아무런 보호자도 없이 혼자 남쪽으로 온 미성년 어린 아이들의 문제입니다. 물론 이 어린아이들에게도 어른들과 같이 정착금과 임대 주택은 차려지지만 부모나 보호자 없이 어떻게 그 어린 것들이 밥을 해먹고 집안 살림을 하며 학교에 다닐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남쪽 정부에서는 미성년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따로 정하고 그 곳에 기숙사도 마련해주고 봉사자들을 배치해, 불편도 없이 먹고 살며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어린 것들이 먼저 저 세상에 갔거나 헤어진 자기의 부모들 생각은 왜 안 나겠습니까.. 그래도 부모형제도 없는 그들이 일단은 먹을 걱정을 안 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우리들입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탈북자들 속에는 지금 중, 고등학교를 다녀서 졸업을 해야 할 나이인데, 북한에서 거의 배우지를 못했거나 형식상으로만 학교에 다녀서 전혀 실력이 따라서지를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여기에 와서 동갑나이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없거나 대학입학시험을 치를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 역시 미성년인 것만큼 당장 일을 할 수도 없고, 더욱이 앞으로 이 젊은 사람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증도 없다면 이 남쪽 땅에서 더욱 설자리가 없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역시 남쪽 정부는 그런 학생들을 따로 교육을 시키는 학교도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를 비롯한 종교 단체나 자선봉사단체들에서도 거의 무료로 이런 탈북 청년들을 위한 학교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의 큰딸도 평양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남북이 서로 사용하는 각종 술어들이 다르고 또 외국어를 비롯한 학업실력도 이 나라 대학에 입학하여 따라가기가 힘들 것이므로 이런 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학교엔 제 딸뿐 아니라 많은 탈북자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학교에서는 하루 두 끼 이상 식사도 무상으로 보장해 주고 한 달 동안 지각과 결석이 없는 학생들에겐 통근비용까지 지급을 해주니까 아이들이 학교를 매우 좋아 합니다. 부모들은 애들에게 옷과 신발을 사주는 외에는 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물론 북한에도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을 데려다 돌봐주며 교육을 시키는 학원이란 곳이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부모들이 큰 간부였거나 큰 국가에 공로가 있는 집 자식들만이 갈 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북쪽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배급을 못 주게 되면서부터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게 됐고 부모형제를 잃은 수많은 어린이들이 거리를 방황했지만 그 누구도 어쩔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물론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강제로라도 데려다가 집단수용을 시키라는 정부의 지시는 계속 내려오지만 이런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는 고사하고 곯은 배를 채워줄 수도 없었습니다. 또 배고픈 아이들의 마음까지 가두어 둘 수는 없는 형편이어서 이 아이들은 또 거리로 나가곤 했습니다.

남쪽에 온 어린아이들 중에도 이렇게 부모 잃고 장마당과 도시를 떠돌다가 남쪽으로 오게 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남쪽에서 잘 자라주길 기대합니다. 또 남쪽 사회가 이 아이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베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장성해 남쪽 사회에서 자리 잡을 쯤엔 우리도 고향으로 갈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럼, 고향에 돌아간 이 아이들은 자기가 받은 것을 고향 땅의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것 입니다.

저 또한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태산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