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배우며] 북쪽에도 온 가족 함께 ‘외식’ 하는 때가 왔으면

2008-06-12

남한에서는 주말이 가까워지면 어린 자녀들을 위해 ‘가족끼리 무엇을 할까?’ 계획을 세우는 부모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거나 집 근처 대형서점에서 책을 사거나 아니면 야외로 나가거나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기는데요.

이렇게 나간 김에 가족들끼리 외식을 하는 것도 큰 즐거움 중에 하나입니다.

‘외식’이란 말은 청취자 여러분들에게는 생소하실 거라고 들었는데요.

오늘 <일하며 배우며> 시간에는 남한의 외식문화에 대한 얘기를 탈북 방송인 김태산 씨가 전해드립니다.

이 남한에는 북쪽에선 거의 쓰지 않는 <외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기 집이 아니라 밖의 식당에 나가서 식사를 한다는 뜻인데, 거의나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 주로 쓰는 말입니다.

오랜만에 저희 가족도, 지난 주말 저녁 온 가족이 외식을 했습니다. 외식을 하자면, 집에서 품을 들여 식사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주부들도 좋아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애들이 제일 기뻐합니다.

외식을 하자고 결정이 되면 그 다음은 어느 식당으로 가서 무엇을 먹겠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제 경우엔, 아예 딸들에게 맡겨 버리는 때가 많습니다.

저야 뭐, 아무 식당엘 가도 제가 좋아 하는 술 한잔 걸칠 수 있으면 만족이니까 말입니다.

지난 주말엔, 딸들이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양껏 집어다 먹을 수 있는 뷔페식 식당으로 가자고 해서 제가 친구들과 한번 본적이 있는 식당에 찾아갔습니다.

식당에 도착을 해보니 마침 주말 저녁이라 꽤 큰 식당인데도 빈 식탁을 찾아보기가 쉽지를 않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식당 안에 거의 빈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뻥해 서있는 저의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계산대 앞으로 갔습니다.

마침 거기에 서있는 식당 주인에게 저는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평양 사람입니다."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사장님은 "아! 평양에서 오신 분이 옳군요 . 어떻게... 가족 분들이 다 함께 오셨습니까? 하며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안해와 두 딸을 그 사장님께 인사를 시켰습니다. 서로 인사가 끝나고 그 사장님은 자리를 마련해 놨으니 따라 오라고 했습니다.

따라 가보니 마침 창문 쪽의 조용한 곳에 있는 빈 식탁 위에 <예약된 좌석입니다> 라고 쓴 표쪽을 치워주며 "여기 앉아서 식사들을 하십시요" 하고 친절히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자리에다 가방들과 겉옷들을 벗어 놓고 우선 음식들을 한 접시씩 담아온 저의 가족들은 저를 향해 질문들을 쏟아 냈습니다.

<저 사장을 어떻게 아는냐 > <평양 사람이라는 건 또 뭔지> 물으면서 아내는 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딸들은 무슨 마술쇼나 보는 듯이 궁금해 했습니다.

저는 일전에 친구들과 함께 와서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고 음식이 푸짐하고 좋기에 가족들을 한번 데리고 와야겠다 하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에 사장님에게 ‘평양사람이 이제 자주 오겠으니 전화를 하면 좌석을 예약해 달라고 아예 눈도장을 찍어두고 명함도 한 장 받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떠나기 전에 가족들, 몰래 옆방에 가서 사장님에게 전화를 해 식당 자리를 예약해 뒀습니다.

남한에서는 이렇게 집에서 전화로 그 어느 식당이든 관계없이 시간과 인원수를 알려주며 자리예약을 하면 이런 혜택을 얼마든지 받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탈북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저의 마술과 같은 예약 전화 덕에 이날 저녁 외식은 단순한 한 끼의 가족식사가 아니라 우리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더욱 튼튼하게 해준 즐겁고도 시간이었습니다.

두 시간 남짓이 식사를 하면서 주위들을 둘러보니 친구들과 같이 온 손님도 보였지만 거의나 애들을 데리고 가족들이 함께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식탁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이 남쪽에 와서야 처음으로 온 가족이 외식이란 것을 해 보았고 가족들을 위한 이런 자리가 인간들의 생활에서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 하는 의미도 알았습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외식 문화에 젖어있는 남한의 사람들이야 별치 않게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갇힌 세상에서만 살아온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자기가 당당하게 번 돈으로 그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재미나게 웃고 떠들면서 온 가족이, 그것도 아무 때나 밖에 나가서 마음껏 식사를 한다는 그 자유로움과 즐거움은 크고 귀중한 일입니다.

물론 북쪽에도 식당들은 있지요.

그리고 평양을 비롯한 몇 개의 큰 도시들에는 음식을 잘 만들서 외화만 받고 운영을 하는 고급 식당들도 있고 따라서 요즘에는 이런 고급 식당들에 가서 가족단위로 외식을 하는 가정들도 더러 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야 외국에 드나들거나 권력을 등에 지고 무역과 장사를 하는 몇몇 돈 많은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일입니다.

식당에서 한사람이 술을 포함하여 먹는 한 끼의 음식 값이 일반 노동자 사무원들이 받는 6개월 내지 1년 노임과 맞먹는 정도이니 배급도 주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일반사람들이야 온 가족이 고급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일이지요.

당국은 인민에게 <빈부의 차이가 극심한 남조선 사회는 사람 못살 세상이다.> 라고 요란하게 선전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남쪽 사회에서는 노동자와 농민들은 고사하고 전혀 일을 못하는 7-80살이 넘은 농촌에서 홀로 사는 늙은 노인네들조차도 북조선에서 일반인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먹어 볼까말까 하는 그 입쌀밥을 하루 세끼씩, 그것도 배불리 꼭꼭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전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지금 북쪽에서야 말로 직업을 가진 노동자 사무원들은 식량이 없어서 겨우 풀죽으로 온 가족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연명을 해가거나 그 보다도 더한 운명의 마지막 상황에까지 처하고 있는 것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이제 더는 숨길 수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권력을 등에 지지 않아도 떼돈을 벌지 않아도 한달에 한번이라도 가족들이 함께 웃는 얼굴로 마주앉아 외식이라는 걸 할 수 있는 때가 내 고향 북쪽에도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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