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올해 들어 현지 지도를 비롯한 공개 활동을 대폭 늘려 횟수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지병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기를 쓰고 하는 공개 활동의 이면에는 경제난의 타개, 후계 구도의 공고화와 같은 그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 분석됩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한국의 관계 당국이 내놓은 자료와 북한의 언론매체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김 위원장이 올해 펼친 공개 활동이 대폭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우선 그 내용부터 설명해 주시죠?
기자:
2009년 12월 1일 현재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1월부터 11월까지 모두 148회에 이르러서 월평균 13.5회를 기록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공개 활동에 나선 셈입니다. 김 위원장은 2008년에 95회로 월평균 7.9회, 2007년에 86회로 월평균 7.2회, 2006년에는 99회로 월평균 8.3회를 각각 기록한 바 있습니다. 올해에는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더 왕성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올해 기록은 11월 말에 이전 최고 기록이었던 2005년의 129회를 훨씬 능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은 특히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이고 공개 활동에 나섰습니까?
기자:
공개 활동은 경제 분야에 집중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반기에는 전체 40%인 31회, 하반기에 들어서는 11월까지 5개월 동안 44%인 31회를 공장과 농장과 같은 경제와 관련한 곳에서 공개 활동을 벌였습니다. 한국 통일부의 이종주 부대변인은 9월 3일 김 위원장이 이미 현지 지도100회를 기록했다면서 이중 36회가 경제 분야와 관련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아무래도 북한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고 경제난에 대한 김 위원장의 관심도 그만큼 높다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앵커:
김 위원장이 지병이 있는데도 올해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한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기자:
우선 그 이유는 경제난의 타개에 있다고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제2차 핵 실험, 미사일 발사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폐쇄적인 국가라고 해도 이 같은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는 인민의 삶이 퍽 고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공개 활동의 많은 부분을 인민의 생활과 직결된 공장과 농장 시찰 등에 할애하면서 인민에게 희망을 주려했다고 분석됩니다. 이와 함께 이는 후계 구도와도 유관하다고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세째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한 정지 작업을 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분석됩니다. 세째 아들이 권력을 인수해 가는 과정에서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해 그를 위해서 길을 열어주려고 이처럼 바쁘게 공개 활동을 했다고 보입니다.
앵커:
공개 활동을 통한 김 위원장의 건재 과시는 이외에도 다른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까?
기자:
자신이 북한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국제적으로 부각할 목적도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작년에 병을 앓고난 뒤 국제 사회가 북한과 하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후계 구도의 공고화보다도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입니다. 김 위원장은 국제 사회의 이런 우려를 씻어내고 협상 대상자로서 위치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어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고 보입니다. 그 결과가 올해 최고를 기록한 공개 활동입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에는 아무래도 최측근 인물들이 수행한다고 보이는데 그들은 주로 어떤 인물입니까?
기자:
2000년 1월 1일부터 올해 11월 26일까지 10년 동안 김 위원장을 수행한 인물은 모두 119명이며 개인별 누적 횟수를 합하면 모두 4474명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기간 총 1000회 정도 공개 활동을 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연평균 100회 정도입니다. 10년 동안 100회 이상 수행한 사람은 모두 12명이었습니다. 현철해 인민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은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435회를 기록해 매년 수행 횟수에서 수위를 지켰습니다. 그 뒤로는 이명수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이 359회,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306회를 기록했습니다.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은 한때 좌천을 당하는 바람에 197회를 기록하며 6위에 올랐습니다. 이런 인물들이 대체로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됩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과 관련한 특이점도 있을 텐데요?
기자:
북한 당국이 핵문제를 비롯해 대외적으로 강경한 발언을 할 때마다 현지 지도를 위시한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이 많았습니다. 몇몇 사례를 들 수가 있습니다. 북한이 유엔주재 대표의 이름으로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9월 4일 우라늄 농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때 김 위원장은 성지제강연합기업소와 김책대흥수산기업소를 찾았습니다. 또 4월 5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방문해 발사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북한 외무성이 4월 14일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할 때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맞아 대동강변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했다고 합니다. 유엔 안보리가 6월 12일 제재 결의를 채택할 때 동부전선의 북한군 제7보병사단 지휘부를 방문했습니다. 또 올해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김 위원장 수행이 급속히 늘었다는 점도 꼽을 수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중 장 부장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행 기록을 올렸습니다. 이 기록은 장 부장의 급부상을 알리는 대목입니다.
앵커:
김 위원장은 현지 지도와 같은 공개 활동이 인민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길래 이렇게 신경을 쓰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것입니까?
기자:
9월24일자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이를 설명하는 좋은 예입니다. 이 신문은 현지 지도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강행군이 김 주석의 유훈을 관철하려는 장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불면불휴(不眠不休)의 장정(長征)’이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에 대한 권력층의 시각으로 보입니다. 김 주석이 꿈꾸던 강성대국을 건설하려고 밤낮으로 뛴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한국의 시각에서 나온 설명도 있습니다.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은 <현지 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 리더십>이라는 저서에서 “현지 지도는 경제발전에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대중운동의 계기일 뿐 아니라 중앙집권적 권력 강화를 가져다 주는 정치 행위”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 전 차관은 북한을 이해하려면 현지 지도의 역할과 기능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쩍 늘어난 공개 활동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