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호텔의 시체 (A Corpse in the Koryo)’와 '비밀의 달 (The Hidden Moon)'에 이은 세 번째 소설은 북한의 사회안전부 소속 ‘오 수사관’이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북한 외교관 부인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북한의 미사일과 관련한 음모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장명화 기자가 가명을 쓰는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처치’ 씨와 이메일을 통해 대담을 나눴습니다.
장명화:
주인공 오 수사관 (Inspector O)이 이번 3 편에서는 파키스탄, 뉴욕, 제네바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북한의 은밀한 미사일 사업과 그에 따른 국제 관계가 주요 변수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습니까?
James Church:
제가 지금까지 펴낸 ‘오 수사관’ 연작물 (시리즈)은 모두 다 소설입니다. 비유법이 아니라는 거죠. 정치적 소논문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오 수사관은 이데올로기적, 혹은 도덕적 잣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 소설에서 ‘오 수사관’은 1990년대 말을 배경으로 활동하는데요, 이 소설에 나타나는 몇몇 사건은 실제로 당시 북한과 해외에서 발생했다고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장명화:
소설 제목이 ‘대나무와 피’인데요, 무엇을 암시하는 것입니까?
James Church:
뭘 암시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영어로 ‘대나무 (bamboo)'와 ’피 (blood)'가 두운법에 맞잖아요? 추리소설 제목으로는 멋지겠다고 생각했죠. 대나무와 피가 불러일으키는 영상 (image)이 불길한 대조를 이루잖아요. 하지만 솔직히 이 두 가지 영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오 수사관이 오랫동안 고민했던 진퇴양난의 처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간성을 없애버리려는 체제의 한 가운데서 그 인간성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고민하는 오 수사관의 입장을요.
장명화:
오 수사관은 외국인과 접촉할 기회도 많고, 외국에도 자주 나갑니다. 체제의 문제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 수사관은 스스로 '신에게 버림받은 (godforsaken)‘ 나라라고 부르는 북한을 왜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James Church:
많은 독자가 그걸 궁금해 합니다. 저는 오 수사관이 많은 북한주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쉽게 북한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 수사관을 포함해서 많은 북한주민이 종종 그런 생각을 하긴 할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많은 추억이 어린,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마음 (heart)이 자리 잡은 고향을 영원히 등진다는 것은 오싹한 일입니다. 비록 그 장소가 예전과 비교해 지긋지긋한 곳으로 변했다고 해도 말이죠. 물론 사람들이 결국 북한을 탈출하기도 하죠. 하지만 보통은 자신에게 뭔가 나쁜 일이 생긴 뒤라야 그렇게들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말이죠, 많은 탈북자가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제 2의 고향에서 마냥 행복하게 살지만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요, 오 수사관은 자신을 ‘북한 사람’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습니다. 오 수사관은 자신의 국적은 북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자신을 키워 준 할아버지 때부터 줄곧, 과거에 존재했던, 그리고 현재 지도상에 나타난 여러 선들이 다시 그려질 미래에 존재하게 될 하나의 ‘Korea'가 바로 자신이 속한 국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장명화:
좋습니다. 그럼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 수사관은 동유럽, 서유럽, 미국 등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여러 문제들을 알아갑니다. 물론 해결 방안 역시 생각하게 되겠죠. 그런데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오 수사관은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전쟁 영웅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특혜를 누리고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오 수사관의 사고방식은 북한의 상류층 (엘리트)을 반영하는 겁니까? 즉 아무리 상황이 심각해도, 북한을 떠나기보다는 이런 저런 혜택을 누리는 북한이 차라리 낫다... 이겁니까?
James Church:
제 소설 세 권에는 오 수사관의 할아버지를 비롯해,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뻔히 알고, 직접 목격하고, 이해하는 수많은 북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북한 체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절대 그 체제에 완전히 헌신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오 수사관도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적 인물입니다. 외국인이 북한을 냉소할라치면, 그들이 지적하는 북한의 문제를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북한을 변호하고 나섭니다. 하지만 오 수사관이 지하 운동을 조직하는 일종의 영웅은 될 수 없습니다.
장명화:
오 수사관은 자신이 접촉하는 외국의 외교관들이나 해외 인사들과 대화할 때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합니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고 나면 늘 해석이 다르게 나오는데요, 북한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모호하게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생존하기 위해 일부러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대화를 선호하는 겁니까?
James Church:
미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협상을 하다보면 깨지기도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외교나 어떤 형식의 인간 교류에서 항상 ‘명확성 (clarity)'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모호한 표현 (ambiguity)’은 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품위 있게, 두 발로 안개 속을 지나 앞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많은 사람이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키는 것을 어렵다고 여깁니다. 어떻게 보면, 의사소통, 즉 여러 문화에 속한 인간들이 서로 차이를 극복하고 뜻이 통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제 소설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네요. 오 수사관과 여러 외국인들은 여러 단어, 침묵, 몸짓, 그리고 행동으로 형성된 좁고 불안정한 다리 (bridges)를 넘어, 각자의 생각과 의도를 상대방에게 던지고 있는 셈이죠. 서로 중간 지점에서 만나지 못하게 될 경우, 대화는 아주 어려워집니다.
장명화:
마지막으로, 처치 씨의 소설 세 권에는 의외로 북한과 가까운 중국과 관련된 장면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북한과 중국 사이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교류가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James Church:
얼마 전부터 네 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는데요, 이 소설에는 중국이 오 수사관 연작물 (시리즈)의 주요 배경으로 나올 겁니다.
MC:
네. 지금까지 1990년대 북한과 하는 핵협상에도 관여했고, 남북한을 비롯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정보요원으로 수십 년간 활동해온 작가 제임스 처치 씨와 최근작 ‘대나무와 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