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 남발’ 힐 차관보에 등 돌린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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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북한과의 핵협상은 북한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더 이상 갖지 않음에 따라서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6자회담을 주도했던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과 중국, 일본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함에 따라서 6자회담을 이끌어나갈 동력마저도 잃게 됐다고 워싱턴 정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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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힐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 - AFP PHOTO / POOL / Claro Cortes IV

보름간의 아시아 순방외교를 마치고 4일 워싱턴으로 돌아온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이번 순방과 관련한 브리핑을 할 것이냐는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에 대해 미국 국무부 관리는 "그는 피곤하다, 아마도 집에서 쉴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힐 차관보 아시아 순방외교의 핵심은 북한 핵신고 문제에 대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힐 차관보는 특히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을 세 번씩이나 방문해서 교착 상황에 빠진 북한 핵신고 문제에 관한 우라늄 농축과 핵확산 문제를 비공개로 처리하는 ‘절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나 자신이 순방일정까지 바꾸면서 베이징을 다시 찾아 기다린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워싱턴 외교전문가는 힐 차관보가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을 펼치면서 북한에 대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바람에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우선 북한 고위관리들은 핵신고의 쟁점으로 떠오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핵확산 대목과 관련한 힐 차관보의 ‘약속 위반’을 사석에서 성토하고 있다고 이 외교전문가는 전했습니다. 즉, 힐 차관보가 핵협상 과정에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는 결국에 가선 미 정보기관간의 ‘실랑이’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푸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no big deal)이며, 시리아와의 핵 협력설 등 핵 확산 문제에 대한 해법도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북한관리들이 주장하고 있다고 이 외교전문가는 전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약속’의 연장선상에서 힐 차관보는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종료 문제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것임을 약속했다고 북한 고위관리들은 주장하고 있다고 이 전문가는 밝혔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같은 문제 가운데 어느 것도 풀리지 않으면서 북한측 불만도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이 외교전문가는 전했습니다.

워싱턴의 외교전문가는 미국의 핵심 우방인 일본도 힐 차관보의 협상과정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일본은 지난해 부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본측에 다짐했지만 힐 차관보는 북한이 핵신고를 하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해 일본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 외교전문가의 지적입니다.

또한 힐 차관보가 핵 협상시 과거 클린턴 행정부 당시 대북정책의 핵심을 차지했던 미사일 실험동결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은 것, 그리고 북한의 핵신고 유도를 위해 우라늄 프로그램과 핵 확산 대목을 비공개 신고로 처리하려 하고 있는 것 등등에 대해서도 일본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이 외교전문가는 전했습니다.

또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측은 힐 차관보가 제시한 북핵 비공개 신고안에 관해 협의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궁극적으로 비공개 신고안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책임은 중국이 아닌 미국이 져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이 외교전문가는 밝혔습니다.

이 전문가는 현재 미국과 중국, 북한 사이를 오가고 있는 비공개 신고안의 윤곽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는 상태라고 전하고, 구체적으로 우라늄 농축 대목과 핵 확산 대목과 관련해 미국과 북한이 각각 서로 상충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입장을 밝히는 정도의 ‘선언문’이나 ‘공동성명’ 형태를 띠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선언문이나 공동성명 형태의 신고안에 대해 북한측 관리들도 사석에서 ‘긍정적인 관심’(positive interest)를 표시한 것으로 안다고 이 전문가는 밝혔습니다.

미 해군대학의 폴락(Jonathan Pollack) 교수는 지금까지 힐 차관보가 대북협상 과정에서 지나치게 낙관론을 피력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힐 차관보는 협상을 하면서 늘 북핵 문제에 관해 잘 해결될 것이라고 거듭 거듭 말해온 터라 너무 많은 약속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그같은 낙관론은 정당화되지 못하고 있다”

폴락 교수는 그러나 힐 차관보가 여전히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현 단계에서 그의 위상을 너무 축소해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