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방북] 남 “억류 개성 근로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고 억류된 미국인 여기자들은 사면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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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전 대통령이 탔던 비행기가 평양 하늘에 접어들어서야 세상에 알려졌을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방북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한 이모저모를 김진국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007작전' 방불케한 클린턴 방북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다는 소식은 그를 태운 비행기가 평양에 거의 도착해서야 알려졌습니다. 북한을 향해 출발한 뒤 12시간 이상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졌던 방북 소식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태운 특별기가 북한 영공에 접어든 한반도 시각으로 4일 오전 10시 경에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에서 3일 오전 출발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러시아와 근접한 알래스카 주의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특별기에 탑승해 평양으로 향했다고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습니다. 민간인 자격으로 방문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민간 전세기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비행기에는 아무런 표지가 없어 실질적으로 미국 정부와 관련된 특별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날의 방북뿐만 아니라 방북이 결정되기까지의 협상 과정도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전격적이었다는 관측입니다. 그동안 뉴욕의 유엔 대표부를 통해 지난 5개월 동안 지속했던 미국과 북한의 접촉에서 이견을 좁혀가던 중 지난 주말 사이 양측이 전격적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입니다.

클린턴 이례적으로 굳은 표정

클린턴 전 대통령을 태운 특별기는 4일 오전 10시 48분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공항에 내린 일행엔 한국계 통역으로 보이는 여성과 경호원, 그리고 수행원으로 짐작되는 남성 3명도 포함됐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항으로 영접나온 북한 대표 중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이 근 외무성 미국국장 순으로 악수를 했습니다.

이날 텔레비젼 화면에 비친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북한 대표들의 표정이 또렷한 대조를 이뤄 눈길을 끌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비행기에서 내려 북한 대표들과 인사를 나눌 때까지 특유의 미소를 보이지 않고 딱딱한 사무적인 표정으로 일관했습니다. 반면, 양형섭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들은 밝은 표정으로 그를 맞았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항상 밝은 미소나 큰 웃음을 잊지 않았는데, 이날은 웃음을 가득 담은 화동이 꽃을 건넬 때조차도 웃음기 없는 얼굴을 보였습니다. 이는 그의 방북 목적이 장기간 북한에 억류된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서라는 점과 첨예하게 대립한 미국과 북한의 외교 상황을 계산한 의도적인 표정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자신의 방북이 미국과 북한의 우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무적이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 제재 조치까지 흐지부지 되지는 않는다는 경고를 반영한다는 해석입니다.

북한 유엔대표부, 클린턴 방북 “할 말 없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미국 측과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는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북한대표부의 박덕훈 차석대사는 4일 한국의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해 “보도된 것 외에는 알지 못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박 차석대사는 이번 방북이 미국과 북한 사이의 양자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할 말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북한 라디오 정오뉴스 방송사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하던 북한의 라디오방송이 소식을 끝까지 전하지 못한 방송 실수를 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북한의 대외용라디오방송인 평양방송은 정오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미국 전 대..”까지 말하고 갑자기 말을 멈췄습니다. 이후 아무 소리없이 10초가 흘렀고 경음악이 5분 정도 방송된 뒤에야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일행이 4일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의 대내용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도 정오 뉴스에 평소와 다르게 곧바로 뉴스를 보도하지 않고 경음악을 내보다가 평양방송과 같은 시점인 12시 6-7분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보도했습니다.

한국정부, 공식 반응 없어

한국정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나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과 관련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관해서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정부는 이번 사안이 북한에 4개월 넘게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씨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국의 연합뉴스는 북한이 미국인 여기자를 석방하면서 현대아산 직원을 계속 억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통일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했습니다.

클린턴 형제, 10년 시차두고 방북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이 형제간 10년의 시차를 둔 북한 방문이어서 주목됩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복동생인 로저 클린턴이 1999년 12월 5일 평양의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가수인 로저 클린턴은 당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김용순 조선아태평화위 위원장,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과도 면담했습니다. 로저 클린턴은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방법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대중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평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클린턴-김정일 면담 세계 언론 주목

세계 언론들은 4일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소식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AP통신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뒤 미국인 여기자들이 사면을 받았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습니다. 미국의 CNN 뉴스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소식을 매 시간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평양 순안 공항의 화면과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사진을 화면에 내보냈습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백악관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개인 자격의 방북이라고 규정하면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제재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랑스의 AFP통신은 북한이 고위급 당국자들을 공항에 보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영접한 사실을 주목하면서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