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서 북 대표단 쫓겨나는 모습에 승리감”

서울-목용재 moky@rfa.org
2017.02.17
kimkyumin_interview-620.jpg 지난 2015년 방문한 유엔에서 탈북 북한인권운동가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김규민(오른쪽에서 두번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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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탈북 영화감독인 김규민 씨가 제작한 기록영화 ‘퍼스트스텝’의 평가회가 지난 10일 열렸죠. 김 감독은 17일 자유아시아방송과 만나 자신의 세번째 작품인 ‘퍼스트스텝’을 만들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냈습니다. 조만간 북한의 한 가족을 소재로 한 ‘사랑의 선물’이라는 영화 작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김규민 감독을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만났습니다.

목용재: 김규민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김규민: 안녕하세요.

목용재: 먼저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은 탈북민 영화감독으로 북한인권 영화를 만들어오셨습니다. 이번에는 ‘퍼스트스텝’이라는 기록영화를 내놓으셨는데요. 영화 제작 계기부터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규민: 제가 예전에 만든 영화가 지난 2015년 열린 제12회 북한자유주간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가게 됐습니다. 탈북민 북한인권운동가들과 함께 갔는데 그들의 모습을 그냥 찍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볍게 촬영을 시작했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목용재: ‘퍼스트스텝’, ‘첫 발걸음’이라는 뜻인데요.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습니까.

김규민: 이 작품이 북한 붕괴의 첫 걸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퍼스트스텝’이라는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영화 속 유엔 무대에서 탈북민 북한 인권운동가들이 하나로 뭉쳐서 북한 대표단을 내쫓았습니다. 당시 북한 대표단은 망신을 당하면서 쫓겨나갔거든요. 그런 모습처럼 북한이 무너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을 정했습니다.

목용재: 지난 2015년 미국 북한자유주간 참석을 계기로 유엔 무대에 갔었던 이야기를 말씀하신 건데요. 당시 상황을 영화의 제목으로 정한 만큼 감독님께서 가장 내세우고 싶은 장면일 것 같습니다. 북한의 청취자들을 위해 당시 상황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규민: 저는 북한 대표단이 온지도 몰랐습니다. 당시 저는 촬영을 위해 기자석에 있었습니다. 그때 주변 기자들로부터 “북한 대표단이 현장에 와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를 당겨서 북한 대표단을 찾다가 김일성 배지를 단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유엔에서 활동하는 북한 대표단 정도면 제가 평생을 북한에서 살아도 실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고위직입니다. 당시 그들이 그렇게 앉아만 있다가 나갈 줄 알았는데 행사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치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적은) 책(서류)을 발언권도 없는 상황에서 읽으며 (탈북민의 증언을) 방해했습니다. 이를 보고 탈북민들이 일어나서 항의하고 야유하니까 북한 대표단이 견디지 못 하고 나가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승리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저들을 내쫓았다는 승리감이 굉장히 컸지만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그들이 “불쌍했다”고 말했습니다.

목용재: 그럼 반대로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있었습니까.

김규민: 두가지 정도있습니다. 촬영을 혼자하니 영상이 풍부하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로는 뉴욕으로 출발하는 당일 새벽 3시 30분에 박상학 대표 핸드폰으로 테러 위험을 알리는 문자가 왔어요. 이 문자를 보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나는 한번도 그런 위협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시 상황을 찍어야 한다는 본능 때문에 찍긴했는데 녹음기 버튼을 안 눌러서 영상밖에 못찍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음성 없이 짧은 장면으로 활용한 부분이 제일 아쉬웠습니다.

목용재: “테러 위험이 있다”는 문자가 미국 방문을 계기로 온 건가요?

김규민: 모르겠습니다. 박상학 대표와 영화에 출연하는 상당수 사람들은 그 전부터 북한의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정확히 그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도 테러 위협을 많이 받아왔으니까 그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박 대표를 위협한 편지도 봤는데, 거기에는 빨간 글씨로 “네 아내와 네 자식들은 너를 잘못 만났기 때문에 죽는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목용재: 지난주 금요일 퍼스트스텝의 영화 상영전 평가회가 있었는데요.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규민: 일단은 참가했던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울었습니다.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야 칭찬을 해주시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해서 행복했습니다. 반응은 좋았습니다.

목용재: 그러면 정식 개봉일정은 잡으셨나요.

김규민: 아직 정식 개봉일정은 잡지 못했습니다.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 갖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고 해도 영화라는 것은 수익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상영관을 잡기 힘듭니다.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이 (북한인권) 영화를 보도록 하는 겁니다.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를 오픈할 겁니다. 이를 통해 일정한 수익이 생기면 (영화를) 북한에 보내고 싶습니다.

목용재: 감독님은 퍼스트스텝 외의 다른 작품들도 만드셨는데요. 어떤 작품이 있는지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규민: 직접 감독한 영화는 ‘겨울나비’, 다큐멘터리 영화인 ‘11월 9일’이 있습니다. 이번이 세번째 작품입니다.

목용재: ‘겨울나비’와 ‘11월 9일’은 어떤 내용인가요.

김규민: ‘겨울나비’는 제가 북한에서 실제로 봤던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가정이 왜 파탄났는지에 대해 그렸습니다.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엄마가 자기 자식을 잡아 먹은 비극적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11월 9일’은 우리나라에서 ‘통일대박론’이 나오면서 우리가 통일을 맞이 할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다룬 기록영화입니다.

목용재: 이번 작품까지 세번째인데. 북한사람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김규민: 겨울나비는 북한 주민들에게 또 다른 슬픔을 줄 것 같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보여준다면 ‘퍼스트스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탈북민들은 한국에 왔지만 북한 동포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각자의 위치에서 북한 주민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요. 퍼스트스텝은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목용재: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말씀 해주십시오.

김규민: 이번달부터 다음 작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4월 즈음 되면 촬영에 들어갑니다. 다음 작품을 열심히 찍는 것이 다음 계획입니다. 제목은 ‘사랑의 선물’ 입니다. 남편은 북한 명예군인이고 엄마는 가족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죽게 되는지를 다룬 영화입니다.

목용재: 영화라는 것은 재밌어야 하는데요. 앞으로 재밌는 북한 인권 영화를 만들 계획은 있으십니까.

김규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재밌는 영화 제작을 안 하는 이유는 재미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면 사실을 미화한다든가 사실을 격하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능력이 부족한 것일 수 있지만 저는 재미보다는 신파적 요소를 많이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웃고 난 이후 영화를 기억하는 것보다 울고난 이후 기억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목용재: 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규민 감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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