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살아 있다면 북한경제 발전했을 것”

서울-박성우 parks@rfa.org
2016.12.07

앵커: 오는 12일은 북한의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처형된 지 3년이 되는 날이죠. 한국에서는 장성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 실화소설이 지난 8월에 출판됐는데요. ‘비운의 남자 장성택’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조선중앙방송 출신 장해성 작가는 “만약 장성택이 아직 살아 있다면 북한의 현재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비운의 남자 장성택’을 저술한 조선중앙방송 출신 장해성 작가.
‘비운의 남자 장성택’을 저술한 조선중앙방송 출신 장해성 작가.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장해성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박성우: 장해성 작가님,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북한에 계시는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이번에 쓰신 책에 대해 간략한 소개부터 해 주시죠.

장해성: 제가 이번에 쓴 책은 ‘비운의 남자 장성택’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북한의 당 역사를 사실 그대로 재구성해서 쓴 것입니다. 여기에는 허구가 한 20% 정도 됩니다. 아무래도 문학적인 요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머지 80%는 다 사실입니다. 북한 인민들에게 꼭 이 책에 담긴 말만은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보면 많은 인물이 나오죠. 그 중에서 왜 하필 장성택을 고르신 건가요?

장해성: 누구를 중심에 놓을 것인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장성택이라는 인물이 딱 적임자이겠더라고요. 김일성 시절도 접할 수 있었고, 김정일과도 연결되고, 김정은까지 연결된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인물들 중 장성택을 낙점했습니다.

박성우: 작가님께서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장해성: 남한 사람도 북한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쓰면서 기본적으로 늘 생각했던 건 북한 사람들입니다. 북한은 왜 이렇게 됐는가. 김일성은 과거 당대회 등에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 옷을 입고 살 것’이라고 했는데, 이후 몇십년이 지났습니까. 그런데 그 때보다 훨씬 못한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왜 이렇게 됐느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겠고 했는데 완전히 노예 봉건사회가 됐거든요.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박성우: 이 책을 보면 수많은 사건이 들어 있습니다. 김일성의 정권 수립, 김정일의 집권 과정, 그리고 3대 세습에 이르기까지 북한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이 다 나옵니다. 작가님께서 집필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장해성: 물론 신경을 쓴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 제일 많이 신경 쓴 건 장성택이 책임지고 담당했던 심화조 사건입니다. 심화조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건의 구체적 진모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결국 이제강(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작품이고, 이제강이 장성택에게 뒤집어씌워서 장성택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이구나. 또 실질적으로는 뒤에서 김정일이 보고 있었고, 앞에서는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채문덕이 진두지휘했구나. 이걸 알게 됐어요. 장성택도 물론 책임을 면하긴 어렵겠지만, 심화조 사건처럼 북한의 수많은 인민을 살해한 사건의 진모를 알게 된 거죠. 이 과정을 집필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박성우: 이 책의 2권 후반부로 갈 수록 장성택은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애쓴 인물로 묘사됩니다. 물론 가정입니다만, 만약 장성택이 살아 있다면 북한의 현재 모습은 어떠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장해성: 확신하건대 북한의 모습이 오늘과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장성택이 바랐던 세상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해서 적어도 중국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도 장성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 말하긴 그렇고요. 아무튼 이 사람이 생각했던 건 ‘중국은 저렇게 발전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같은 북한은 아닙니다. 이걸 좀 말하고 싶습니다.

박성우: 경제적으로 훨씬 더 번영한 국가가 돼 있을 것이라는 뜻인가요?

장해성: 당연하죠. 하루이틀 사이에 중국 같이 되진 못하겠지만, 중국을 따라 해서, 또는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 같은 걸 추진해서, 오늘과는 많은 면에서 달라졌을 겁니다.

박성우: 이런 질문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이 책을 북한에 있는 주민들이, 또는 당 간부들이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작가 입장에서 기대하시는 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장해성: 네, 있습니다. 물론 북한의 고위급 간부들은 겉으로는 ‘장해성이라는 놈이 남한에 나가더니 나쁜 반동, 알반동이 됐구나’ 그러겠죠. 그러나 속으로는 ‘이 자식 제대로 말했네. 이건 맞아. 이렇게 됐지 않았어’라며 다들 공감할 겁니다. 제가 죽은 다음이라도, 통일된 이후에 이걸 북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아 그랬었구나’ 하면서 북한 사람들이 나를 좀 칭찬한다고 할까, (웃음) 어쨌든 나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바람입니다만, ‘우리 북한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박성우: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 ‘이 소설의 80%는 사실에 기반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보면 되는 거죠? (장해성: 당연하죠.)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책 머리말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낮에는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글을 쓰고 밤에는 이불 속에서 고뇌에 모대기는(괴로워하는) 북한의 기자와 작가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라는 내용인데요.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부연 설명을 해 주시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장해성: 제가 북한에서 기자를 10년 했고 작가를 10년 했습니다. 기자를 했어도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기자를 여러 해 하다보니 분석력과 판단력이 생기더라고요. 김일성이 죽은 다음에도 그랬고 죽기 전에도 그랬는데, ‘어차피 이 체제는 아니다’라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낮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 하라는 글을 썼죠. 저녁에 집에 와서 혼자 밥상을 마주하고 술을 한 잔 마시면서 ‘이건 아닌데’ 이런 양심적 가책을 너무 많이 느꼈죠. 그래서 그렇게 쓴 겁니다. 북한의 기자와 작가들은 제가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지금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 하지 말라고 썼다가는 목이 잘리겠죠. 그러나 은근히 생각은 깊이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박성우: 일단 이번에 쓰신 책이 많이 팔려서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분명 북한으로도 이 책이 들어갈 수 있겠죠. 북한에서도 독자가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장해성: 감사합니다.

박성우: 지금까지 장해성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장 작가는 북한에서 1976년부터 1996년까지 조선중앙방송의 기자로 10년, 그리고 드라마 작가로 10년을 일했고, 1996년 5월 한국으로 귀순해 줄곧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다가 2006년 정년 퇴임했습니다. 이후 장해성 작가는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지난 8월 발행된 ‘비운의 남자 장성택’은 2013년에 나온 장편소설 ‘두만강’에 이은 두번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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