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연평해전, 염장무 투척이 발단”

서울-문성휘 xallsl@rfa.org
2013.09.05

앵커: 지난 1999년의 ‘제1차 연평해전’이 북한군의 염장무 투척으로 인해 포사격으로 까지 이어졌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북한 당국은 패배로 끝난 ‘제1차 연평해전’ 후 오히려 자신들이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1999년 6월15일 서해북방한계선 무력충돌의 시발점으로 된 ‘제1차 연평해전’, 한국해군의 완전한 승리로 끝난 ‘제1차 연평해전’이 북한군의 염장무 공격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주장이 복수의 북한 현지주민들 속에서 나왔습니다.

무역사업을 위해 국경연선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황해남도의 한 간부 소식통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과 가진 전화연계에서 “1차 서해사건은 참으로 어이없게 일어난 것”이라며 “우리(북)가 먼저 도발한 것은 맞지만 그렇게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제1차 연평해전 당시 주변 해군부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는 이 간부는 당시가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던 아주 어려운 시절이었다며 “황해도 주민들로선 꽃게를 한 마리라도 더 잡아 중국에 팔아야 외화를 벌어 쌀을 사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당시 북한군의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관련해서도 “최고사령부가 적들에게 절대로 먼저 도발을 걸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었다”고 밝힌 이 간부소식통은 “하지만 적들이 먼저 도발을 해올 경우 단호히 대처하라는 명령이 내렸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들에 ‘북방한계선’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며 때문에 당시 북한 해군은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놓고 외화벌이를 위해선 북방한계선을 침범해도 좋다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또 초기에 한국해군 함정들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군함들을 선체로 밀어내려해 북한 군함들도 맞대응으로 밀어내기를 했는데 형편없이 낡은 북한 군함들로는 한국해군 군함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북한군은 해군사령부에 사격명령을 내려 줄 것을 거듭 요청했으나 해군사령부가 끝내 사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며 어쩔 수 없이 한국함정에 밀린 북한군 병사들이 식당바닥에 뒹굴던 염장무를 한국군 함선들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고 언급했습니다.

바로 그 염장무를 수류탄 투척으로 오인한 한국군병사들이 북한군을 향해 자동소총 사격을 가했고 이에 북한군이 포사격으로 응대하면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이 이 간부의 설명입니다.

한편 황해남도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또 다른 주민은 “해주시에 있는 4군단 사령부에는 ‘서해전선승리 전시관’이라는 게 있다”며 “이 전시관에는 1차 서해해전에서 한국군이 섬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패배의 책임을 진 해군사령관과 장교들이 무더기로 해임했다”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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