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 첫 순서로, 올해 미국과 북한의 문화계를 뜨겁게 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영국과 미국 공연 추진, 그리고 탈북자 출신 피아니스트의 국무부 공연 등으로 결산하는 자리를 가집니다.
장명화 기자가 함께 했습니다.
올해 미국과 북한 간 문화 교류 분야에서 가장 큰 사건은 단연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사상 처음으로 평양 공연을 가진 것인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지난 2월 26일 저녁, 평양의 동평양대극장 안에서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졌습니다. 평양 공연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TV로 생중계되었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60년간 적대 관계였는데요, 북한이라는 동토의 땅에서 미국의 국가가 연주될 때는, 진정 미국과 북한 간 관계가 해빙되는 계기가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잠시 공연 내용 들어보시죠.
(‘성조기여 영원하라’ 연주곡)
MC:
저도 생중계를 봤습니다만,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인 로렌 마젤이 이끈 105명의 단원이 북한의 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공연장을 가득 매운 객석에서 숨소리마저 나지 않던 게 기억납니다.
기자:
북한에서 미국의 오케스트라가 북한의 국가와 미국의 국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북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는데요, 마침 자유아시아방송의 서울 사무국에서 생중계를 함께 시청했던 탈북자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김철웅:
일단은 깜짝 놀랐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된다는 것 자체가 이제 국가가 연주될 만큼 관계가 좋아졌다고 주민들이 생각할 것 같고 이때까지 나쁜 쪽으로만 만들었던 미국의 이미지를 이제 바꾸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기대감 절반과 놀람 절반. 그러니까 이때까지 우리의 모든 가난의 원초라고 생각했던 미국과의 관계가 풀어짐으로써 자신들의 생활고가 어느 정도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자:
뉴욕 필하모닉은 북한 국가, 미국 국가에 이어서 조지 거쉬윈의 ‘파리의 미국인,’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등 가장 미국적인 기질을 담은 곡들을 연이어 선사했는데요, 공연의 마지막 곡인 ‘아리랑’이 역시 제일 감동적이었습니다. 비록 이념의 차이로 나뉘어져 있지만, ‘아리랑’을 들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북은 서로 ‘한민족’이란 사실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하게 느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이 앙콜곡으로 연주한 ‘아리랑’ 들어보시죠.
(‘아리랑’ 연주)
MC:
사실 남북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자, 지휘자, 시청자도 모두 크게 감동받았죠. 역시 음악은 만국의 공용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뉴욕 필하모닉이 공연하기 한 달 전에,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이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영국에서 연주회를 갖는다는 특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기자:
네. 제가 1월 말에 영국 런던에 출장을 갔었는데요,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영국의 데이비드 알튼 상원의원이 마침 이 연주회를 주선한 사업가 데이비드 헤더 씨를 소개해 주어서 특종을 건졌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24일 북한 교향악단 영국 연주회를 처음으로 보도한 이후, AP가 다음날 자유아시아방송을 인용하고, 이어 캐나다의 CBC 방송, 영국의 Guardian지가 후속 취재에 나섰습니다. AFP는 나중에 Guardian지를 인용해 보도했고요.
MC:
그런데, 당초 계획했던 9월 공연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뭐랍니까?
기자:
제가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영국 공연을 추진해온 '북한 오케스트라 사업'의 조직위원장인 수잔나 클라크 씨와 지난 9월 중순 통화를 했는데요, 공연을 후원하기로 했던 영국은행이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연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설명하더군요.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영국에 초청해 연주회를 열려면, 연주자와 지원 인력의 비자를 신청하는 비용, 보험료, 숙박료 등 최소한 영국 돈으로 40만 파운드, 미화로는 대략 72만 달러가 든다고 합니다. 상당한 액수죠.
MC:
아쉽네요. 하지만, 장명화 기자가 지난달 20일에 조선국립교향악단이 빠르면 내년 3월에 미국 뉴욕에서 연주한다고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워싱턴 포스트가 뒤늦게 지난 13일에 이 공연 소식을 크게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기자:
네. 제가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프레데릭 캐리어 부회장을 회견해서 일찌감치 관련 소식을 보도하긴 했지만, 사실 지난 2월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에 참석했던 북한의 강능수 문화상이 미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미국이 정식 초청하면 북한 교향악단의 답방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데 착안해서 후속 보도를 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0월에 이미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미국 방문을 잠정적으로 허가했고, 현재 공연 장소로는 뉴욕 맨해튼의 링컨센터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과연 공연이 성사될지는 향후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더는 악화되지 않는가 여부에 달렸다는 것이 미국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MC:
조금 아까, 탈북자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가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보고난 소감을 잠시 전해주었는데요, 사실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으로 빗장이 열린 북한과 미국의 문화 교류가 올해 하반기에는 김 씨의 첫 국무부 공식 연주로 이어져서 큰 관심을 모았잖습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김 씨는 지난 10월 6일 정오에 워싱턴 중심가에 자리 잡은 국무부에서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김 씨는 북한에 있을 때 평양국립교향악단 수석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는데요. 국무부 연주회에서 자신이 편곡한 ‘아리랑 소나타’와 북한에서 인기 있는 ‘환희의 노래’ 등을 연주해, 100여명의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잠시 ‘환희의 노래’ 들어보시죠.
(‘환희의 노래’ 연주)
MC:
김 씨는 노동당 간부와 대학교수 부모 사이에서 자라 평양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뒤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유학한 상류층 출신이죠? 그런 김 씨가 북한을 탈출한 이유가 무엇인지 청취자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요.
기자:
한마디로 하고 싶은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자유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모스크바에서 공부할 때 팝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곡에 매료됐다고 하는데요, 이 곡을 애인에게 들려주기 위해 평양에서 연습하다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고 합니다. 그 후 평양국립교향악단 단원의 안정된 삶을 접고 탈북을 결행한 겁니다.
김철웅:
북한에서 제한하고 있는 재즈를 비롯한 모든 대중음악 속에서 자유를 느꼈습니다. 저처럼 자유가 뭔지 개념이 없었던 저 북한 음악인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그들에게 자유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C:
네. 이렇게 장명화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이고, 특히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 간에 통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란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되네요.
기자:
네. 국가 간에 화해의 전령으로 자주 쓰이는 것이 문화인데요, 새해에는 음악을 통해 미국, 북한, 남한, 나아가 국제사회가 서로 공감대를 만들고, 양자 간에, 또 다자 간에 외교의 저변이 두터워지고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MC:
장명화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기자: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