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방북] 미, 양자회담 전망 엇갈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향후 미국과 북한 간 양자회담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향후 대화 전망에 관해서는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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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화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의회 산하 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CRS)의 아시아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는 4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통화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평양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2명이 석방됨에 따라 미국과 북한 간 대화의 물꼬가 일단 열리겠지만 문제는 북한이 향후 양자 회담에 어떤 조건을 부과하느냐에 달렸다고 분석했습니다.

Larry Niksch: Will North Korea want some of these US sanctions lifted or some of the UN sanctions...북한이 미국의 대북 제재 혹은 유엔의 대북 제재의 일부 해제를 미국과 북한 간 양자회담의 조건으로 내놓을 수 있습니다. 또는 분배 감시(모니터링)없는 대규모 식량 지원을 포함한 각종 혜택이 담긴 일괄 조치를 조건으로 내걸 수도 있습니다.

닉시 박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여러 고위 관리와 회동을 통해 북한이 과연 전제조건 없는 대화의 재개에 열린 자세를 가졌는지, 아니면 일정한 조건을 달지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한 회동과 관련해 북한 언론은 4일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구두메시지를 정중히 전달”했으며 김 위원장이 이에 사의를 표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한 뒤 “진지한 담화”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언론의 보도 이후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미국 백악관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정황을 고려할 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소위 ‘북미공동성명’에 기초해 여기자들을 석방하는 문제 외에 북한의 핵 문제, 6자회담, 직접대화 등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했을 것이라는 게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박선원 초빙연구원의 판단입니다.

박선원: 제가 단언하건대 김정일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분명히 두 가지를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첫째, 한반도의 비핵화는 북한의 목표이며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둘째, 자신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6자회담에서 성의를 다했지만, 미국 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깨졌고 핵실험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가야 되고,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를 이룩하는 데 관심 있다고 말했을 테고,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만족해했을 겁니다.

2000년 10월 합의된 ‘북미공동성명’은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과 맺은 이른바 '북미관계 정상화 시나리오‘입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미북 관계의 근본적 개선, 정전협정의 평화보장체계로의 전환, 호혜적인 경제협조와 교류, 회담 기간에 미사일 발사 유예, 한반도 비핵 평화를 위한 제네바 기본합의의 이행, 인도주의 분야 협조,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방북 등입니다.

노무현 전 남한 행정부 내 외교안보팀의 핵심 인사 중 하나였던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특히 김 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미국과 충분히 입장을 좁힐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미국 측에 최소한 두 가지 사항을 추가로 요구했을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박선원: 북한은 우선 핵의 평화적 이용과 관리에 대한 보장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미국이 북한을 핵으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점을 재확인해 달라고 요구할 겁니다. 다만 김 위원장은 기본적인 입장만 전달할 것이고, 나중에 양자 협상이 벌어지면 북한당국과 오바마 행정부 사이에 그런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질 겁니다.

하지만 설령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 하더라도 협상이 순탄하게 진전될 리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북한이 핵보유국의 대우를 받으며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회담에 임하겠다는 입장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고, 미국 역시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의 정책기획실장을 역임했던 한반도 전문가 미첼 리스 박사의 말입니다.


Mitchell Reiss: So it is very difficult to see that there's any real basis for true negotiations. I can see a number of bilateral meetings, but I can't see...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양자 협상을 위한 실질적인 토대가 있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향후 양자 협상이 수차례 열릴 겁니다. 하지만, 이 같은 협상이 좋은 결과를 낳거나 지속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한편,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아시아담당 국장을 역임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4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북한의 ‘체면’이 서게돼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측에 제재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돌아서라고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터 선임연구원도 4일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방북을 미국과 북한 간 외교적인 돌파구로 인식해 북한의 거듭된 유엔 결의 위반에 대한 제재를 철회하는 구실로 삼으려고 할 것이라면서, 대북 제재의 약화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