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외화벌이를 위해 전세계 곳곳으로 주민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2016 연중 기획보도’ 북한 해외노동자 시리즈. 오늘은 그 첫번째 순서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북한 의료진의 실태를 소개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자가 직접 탄자니아를 방문해 북한 의료원의 실태를 보고 왔습니다. 취재에 홍알벗 기자입니다.
재래시장 ACT
아프리카 동중부 지역 바닷가에 자리잡은 탄자니아 최대도시 다레살람(Dar-es Salaam).
2016년 새해를 며칠 앞 둔 지난 해 말, 기자가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다레살렘 내 카리아코 지역의 재래시장을 찾았습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시장통을 지나 한 낡은 건물의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자 2층 복도 끝에 조그마한 방이 나타납니다.
북한 의료진이 진료를 하고 있는 북한 병원입니다.
병원 입구 벽에는 변변한 간판 하나 없이 영문으로 ‘Korea Medical Clinic’이라고 적힌 작은 종이 한장만이 붙어 있습니다.
흐릿한 형광등 하나 있는 방에는 화분 몇개와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 대여섯개가 놓여져 있습니다.
방 한가운데에는 넓은 책상이 있고, 한켠에는 작은 구식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자, 책상 앞에 있던 50대 중후반의 여자 한 명이 경계의 눈빛으로 답합니다.
북한 의료원 ACT: 안녕하십니까.
37도의 무덥고 습한 날씨지만 방에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 1대만 돌고, 텔레비전에서는 북한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습니다.
접수를 받는 북한 여성에게 팔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말하자, 잠깐 기다리라며 옆방으로 갑니다.
잠시 후 나타난 여성은 ‘의사가 외출해서 진료를 할 수 없다’며 다른 한국 병원에 가보라고 권합니다.
북한 여자 의료진 ACT: 죄송하지만 지금 의사 선생님이 없어서 진료를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자 의료진이 들어갔던 방에서 여러 명의 환자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 안에 의사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기자가 남한말을 사용하자 경계해 진료를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번째 장소에서 진료거부로 기자가 다시 찾아 나선 곳은 2015년 9월에 새로 세워진 우봉고 지역의 북한 병원.
한적한 시골마을에 깔끔하게 색칠된 이 곳은 병원이라기보다는 고급식당 같아 보였습니다.
접수담당자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 의사가 나와 기자를 한참동안 살펴 보더니 현지 안내인이 한국사람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하자 병원 안으로 안내합니다.
기자가 현지 안내인에게 영어로 말을 하면 안내인은 북한 의료진에게 탄자니아 나랏말인 스와힐리어로 통역해서 뜻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북한 의료진은 계속해서 경계의 눈빛으로 기자의 국적을 물어 봅니다.
북한 의료진 ACT: 캐나다? 캐나다?
병원 1층에는 진료실이 두 곳이 있고, 각 방에는 남자 의사와 여자 간호사가 한 명씩 있습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간호사는 인적사항을 물어 본뒤 몸무게와 키를 재고 혈압과 혈당을 측정합니다.
그리고는 간이 침대 위에 보자기 또는 여성용 스카프 같아 보이는 천을 깔고 누우라고 합니다.
선풍기 한대 없는 진료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자 방충망에 붙어 있던 먼지가 잔뜩 날아 들어 옵니다.
기자가 침대에 눕자 역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가 잠시 팔을 만져본뒤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는 중국산 저주파 치료기를 팔에 댑니다.
이 의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치료법이 북한의 동의학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남자 의사 ACT: 동의학이라고 아세요? 맞아요, Acupuncture..
이 병원 역시 텔레비전에서는 북한 방송이 쉴 새 없이 흘러 나왔고, 침대 옆에 누워 있던 현지 주민 남자 고등학생은 ‘코리아’ 의사가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세웁니다.
저주파 치료가 끝나자 전기 안마기로 온몸을 두드립니다.
모든 치료 과정이 끝나고 여자 간호사가 책상 서랍 속에서 보자기에 쌓인 여러 종류의 약을 꺼내 그것을 조금씩 덜어 종이에 싸서 줍니다.
진료비는 탄자니아 돈으로 현지 노동자 한 달치 월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만 실링, 즉 미화로 약 25달러 정도입니다.
탄자니아에 있는 북한 병원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전역 군인 제임스(가명) 씨는 북한병원의 진료비가 일반병원보다 비싸지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고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제임스 ACT: 처음 북한을 방문하면 진료카드를 만드는데 1만 실링을 냅니다. 그러고 나서 의사의 진료를 받고 나면 4만 실링 정도를 더 냅니다. 치료가 끝나고 나면 전체적으로 6만에서 7만 실링정도가 됩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가져왔다는 약까지 받으면 최대 150만 실링까지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탄자니아에는 북한 병원이 모두 12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 최대 도시인 다레살람에만 1991년에 세워진 마고메니와 테메케, 카리아코, 그리고 우봉고 등 네 개지역에 하나씩 있습니다.
그리고 탄자니아에 파견된 북한 의료진 수는 2009년에 스무 명이었던 것이 2015년 현재 1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임스 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탄자니아와 북한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서로 손을 잡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임스 ACT: 1990년대초에는 탄자니아의 집권당인 CCM(Chama Cha Mapinduzi)도 북한처럼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북한과 손을 잡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병원을 세우게 됐습니다. 마고메니 지역에 있는게 가장 오래되었고 계속해서, 심지어 몇달 사이에 잇달아 북한병원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 북한 병원은 대부분 1년 36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료를 하고 있으며, 환자가 있을 때는 밤에도 진료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탄자니아에 있는 북한 병원의 매출은 1년에 약 100만 달러에서 130만 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90퍼센트 가량을 북한 당국에 상납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각 병원마다 최소 2개조의 의료진이 파견돼 서로 감시하는 체계를 갖고 있으며, 현지 소식통이 입수한 주재국 취업비자 신청서 자료에 따르면 이들 북한 의료진의 한 달 월급은 미화 200달러입니다.
북한 의료진은 주로 북한에 자녀를 남겨둔 채 3,4년 임기로 부부 단위로 파견되며, 파견근무가 끝난 뒤 다시 연장해서 재 입국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의료진 때문에 탄자니아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겁니다.
제임스 씨는 무엇보다 영어는 물론 탄자니아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북한 의료진이 많아 환자의 질병상태를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환자 ACT: 언어소통이 힘듭니다. 어떤 의사는 스와힐리어를 아예 못합니다. 그러니 의사와 환자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게다가 북한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품은 출처는 물론 이름과 성분, 그리고 복용법 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2월 탄자니아 지역 언론이 북한 병원에서 처방해 준 의약품의 성분을 분석의뢰한 결과 일부 약에서 수은과 납, 그리고 비소 등 맹독성 중금속이 허용기준치의 100배를 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의료진의 오진 및 강압적인 치료 권유가 큰 문제입니다.
기자는 지난 해 5월 17일 탄자니아 일간지 니파쉐에 실렸던 북한병원 피해자 가족을 만났습니다.
어릴 때 축구신동으로 불릴 만큼 운동에 소질이 있던 19살 가브리엘 쉐이요는 잦은 기침과 가슴 통증으로 북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동네 이웃이 ‘한국 병원(Korean Clinic)’에 가면 잘 고쳐줄거란 말에 발을 들여 놓은게 화근이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차도가 있는듯 했지만, 한달이 넘도록 북한병원에서 지어주는 약을 먹어도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가브리엘의 부모는 북한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양약뿐만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한약까지 거액을 들여 반강제로 사 먹여야만 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 ACT: 돈을 전부 내면 약을 전부 다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 일단 절반만 줬습니다. 그런데 무슨 뿌리 같은걸 갖고 나오는 거예요. 끓여 먹이라고.
아들의 증세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의사에게 따져 물었지만 오히려 북한 의료진은 치료를 위해 더 많은 약을 써야 한다며 돈을 갖고 오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피해자 아버지 ACT: 여의사가 갑자기 울면서 "나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치료가 되겠냐"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아들의 점점 나빠져 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가브리엘은 피를 토했고 국립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뒤 가브리엘의 부모는 아들이 결핵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브리엘은 기자에게 북한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코리아(Korea)’라는 말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 가브리엘 ACT: 난 북한병원이 문을 닫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나를 죽일뻔 했기 때문이예요.
북한병원의 실태를 지난 1년동안 취재한 바 있는 탄자니아 현지 언론인은, 탄자니아 법에 따르면 모든 의약품에는 탄자니아 공용어인 영어 또는 스와힐리어로 의약품 관련 정보를 기재해야 하지만 북한병원에서 주는 약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현지 언론인 ACT: 의사가 컴퓨터도 없이 환자를 진단하고, 또한 (북한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이 무엇인지 전혀 알수가 없습니다.
또한 평생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은 사람에게 체내에 니코틴이 과다 축적돼 있다며 불안감을 조성해 고가의 약을 판매하는가 하면, 혈압측정시 사용하는 고무밴드는 폐타이어를 잘라 만든 것을 사용하는 등 진료시설과 장비, 그리고 의료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언론인은 북한 병원의 잘못된 의료행위로 피해자가 속출하고 보건 당국에 항의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북한 당국과 탄자니아 보건 당국 관계자와의 유착 관계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현지 언론인 ACT: 현재 대통령도 개혁의 의지가 있고, 식약청 공무원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병원과 당국 관계자 사이에 모종의 유착관계가 있어 문제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당국의 관리, 감독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탄자니아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 의료진이라고 명확히 밝히지 않은채 질 낮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북한 병원 때문에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인식이 악화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알벗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