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사태 20주년] ① '중국 인권과 북한 인권' - 충격 받은 북한 "주민 눈∙ 귀 가려라"

1989년 6월 4일 중국 북경 천안문 광장에 운집한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은 개혁 개방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중국 인민해방군은 탱크와 총칼로 무고한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천안문 유혈 사태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비극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 후 중국은 여러 부문에서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천안문 사태 20주년을 맞아 중국의 변화와 함께 북한의 개혁 개방 현주소를 조명하는 특별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첫번째 순서로 '중국 인권과 북한 인권'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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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에 이수경 기잡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언론인으로 일하는 중국인 피터 린 (Peter Lin) 씨는 1989년 6월 4일 새벽 천안문 광장에 있었습니다. 베이징의 중국인민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던 그는 학우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린 씨는 당시 학생들이 광장에 모였던 직접적인 이유는 공산당 관리들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린 씨는 공산당이 관리들의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과 언론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외치며 피켓을 들고 천안문 광장 앞에서 행진했다고 말했습니다.

Peter Lin: 천안문에 있던 학생들은 민주주의와 정치 개혁을 원했습니다. 당시 중국 지도부는 경제발전은 이뤘지만 심각한 부정부패의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부정부패에 반대하고 당이 투명하게 정책을 집행하기를 요구했습니다. 학생들은 시위를 통해 중국 정부를 대화로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평화적으로 말입니다.

학생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시위는 시민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20년 전 6월 천안문 광장에 있었던 또 다른 증인인 언론인 양 메이 첸(Yang Mei Chen) 씨는 언론인과 대학교수 등 지식인들도 학생들의 요구를 지지했고 일반 시민의 참여도 날마다 늘어났다고 기억했습니다.

Yang Mei Chen: 정말로 많은 사람이 천안문에 빽빽히 모였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는지 놀라울 정도로 말입니다.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음식을 주며 지지했습니다. 저와 같은 언론인들도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언론을 믿지 말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그러나 정치 개혁과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던 시위대의 행진은 중국 인민 해방군의 무차별 총격과 탱크 부대 앞에 멈춰서야 했습니다. 중국 당국의 유혈진압으로 시위대는 강제로 해산했고 수천 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중국 당국은 천안문 사태가 있은 이후 사회 안정을 이유로 언론과 출판,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더욱 철저히 통제했고 잘 살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은 잊어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주지시켰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의 소피아 리처드슨(Sophia Richardson)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국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은 심각한 침해를 당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Sophia Richardson: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시민들은 자유롭게 집회를 열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했습니다. 특히 천안문이나 자유, 민주주의 이런 얘기는 꺼낼 수조차 없게 되었죠. 물론 중국에서는 지금도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관련해 작은 시위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매우 신속하고 강력하게 이러한 시위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작은 시위들이 천안문 사태와 같은 대규모 시위로 번지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해서죠.

중국은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든 언론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제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방송 전파를 방해하는 조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이 천안문 사태와 관련한 보도나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구금한 언론인과 인터넷 사이트의 관리인들의 수도 수십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당시 천안문 사태가 가져올 영향권에 놓여 있던 북한은 동유럽 국가들의 붕괴에 이어 중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소식에 언론 통제를 통해 체제적 동요를 차단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의 김형덕 소장의 말입니다.

김형덕: 북한도 그때 정보 통제를 평소보다 심화했습니다. 왜냐면 앞서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정권이 몰락하면서 북한 사회에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대규모 시위의 소식이 북한에 전해지는 것을 차단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을 나온 탈북자 가운데 천안문 사태를 아는 이는 드뭅니다. 한국에 와서 들었거나 아예 모른다고 대답하는 탈북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의 김광진 방문연구원은 중국의 천안문 사태가 북한 주민에게 끼친 영향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김광진 연구원은 오히려 천안문 사태의 진압 과정을 지켜본 북한의 지도부가 개혁개방을 통한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이 공산당 독재체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는 점을 깨닫고 북한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합니다.

김광진: 천안문 사태는 당시 북한 당국에는 엄청난 충격과 긴장을 주었습니다. 북한은 유사한 사태, 즉 자본주의의 노란물과 민주주의의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많이 노력했습니다. 북한의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데도 외부 정보의 유입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조치가 결정적입니다.

북한은 외부 정보의 차단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폐쇄적인 국가입니다. 북한 당국은 모든 언론을 소유하고 통제하며 외부의 정보를 접촉한 주민들에 대해 심한 처벌을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고문과 구금의 처벌을 받고 남한 사람을 만났거나 기독교를 접촉한 경우에 공개 처형까지 당한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손정훈 씨의 말입니다.

손정훈: 북한에서 공개 처형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 남한이나 서방세계에서는 과연 공개 처형으로 사람 목숨을 쉽게 앗아갈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북한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 당국의 인권 탄압은 종종 국제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매년 발표하는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조직적인 인권 침해국으로 지목하고 유엔도 대북 인권 결의안을 2003년부터 채택해 왔습니다.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트 워치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도 매년 북한과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후 끊임없이 이어진 국제사회의 압력에 지난 2004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인권 보호와 사유재산 보호를 강화했습니다. 중국의 헌법 개정은 비록 문서상이긴 하지만 앞으로 중국 인권의 개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 상황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에도 요지부동입니다. 북한인권위원회의 김광진 연구원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민들의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김정일의 독재 체제가 끝나지 않는 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은 나아지기 힘들다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