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중장비 회사 여사장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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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터널 내에서 각종 중장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대관령 터널 내에서 각종 중장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고 합니다. 또 남녀평등 사회라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건설 분야 그것도 중장비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이 연상되십니까? 오늘은 서울에서 건설중장비 회사를 운영하는 탈북민에게 성공적인 사회정착에 대해 들어봅니다.

이미애: 정열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도전하면 충분히 성공한다.

탈북여성 이미애(가명)씨는 어쩌면 유일하게 건설분야 업체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2014년 가을부터 했으니까 햇수로 2년을 넘겼습니다. 그도 이제 어느정도 회사가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이미애: 사업하면서 느끼는데 한국 조세 법률이 참 잘 돼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종합소득세가 42% 나가요. 최고 38%에다 지방세 해서 42% 나가는데 순이익의 반을 세금으로 내는 것 같아요. 국가도 운영하고 공무원 월급도 줘야 하니까 그러는데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직원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운영하자면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죠?

이미애: 저희도 노조도 쎄고 하니까 머리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인맥관계, 대인관계 관리를 잘해야 해요.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잖아요. 나는 너무 고지식 하다는 말도 듣는데 딱 법대로 해요. 너무 욕심내 봤자 거기서 거긴데 먹고 사는데 지장 없으면 되고 현재가 좋아요. 회사를 더 키울 이유도 없고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남에게 당하지 않고요. 심사숙고를 많이 하죠 그러다 보니까 울어야 할 때 웃어야 되고  웃어야 될 때 울어야 될때가 많아.

북한출신이 남한에 가서 회사를 운영한다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어떤 사람이 사장이 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이 씨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미애: 능력이 되면, 내가 사업을 해서 직원들을 가족같이 경조사까지 챙길 수 있으면 사업을 하면 맞다고 봐요. 한마디로 정말 착하고 좋은데 사업을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보면 대인관계가  약해요. 울어도 주고 웃어도 주고 어른 앞에선 어른 흉내를 내고 어린아이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될 정도로 처세술도 있어야 되고요. 사람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으로 제가 승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

기자: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인맥 지연, 학연,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탈북자에겐 기회가 안오잖아요.

이미애: 제가 한국생활 7년 느낀 것이 있다면 우리는 맨손으로 왔잖아요. 여기서 살아남자니 배울 것이 많아요. 그런데 한국분들이 배워주는 사람이 없어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조직이 있어서 윗단위 조직  책임자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길을 안내하는 경우가 좀 있는데 한국은 스스로 알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챙취해야 해요. 예를 들어 용접을 배우고 싶은데 옆에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탈북자인데 좀 알려주세요 하고 한 번 부탁해서 안되면 열번이고 해서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일단 적극적인 마음으로 남한사회를 접해야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씨는 안정적인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 두고 사업에 뛰어들게 됐는데요 탈북자들이 정착에 성공하고 또는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를 나름 깊이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미애: 저는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정년퇴직을 해도 기술만 있으면 먹고 살수 있다고 봐요. 탈북자가 한국와서 공무원을 선호하는데 공무원 될 확률이 0.1%나 되겠는지 그러면 일단 기술을 습득해서 일하면 일생 살 수 있어요. 기술없이 막노동이나 하고 하면 미래 담보가 안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직을 하고 항상 불안한 상태에서 직업을 유지하거든요. 기술만 배워 놓으면 나중에 그 업체 사장이 될 가능성도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은 자식에게 기업을 넘겨주는 경우도 있지만 자식보다 정말 자기 일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업을 넘기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희도 고소득 업체라 1년은 일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 돈을 조금 받지만 2년부터는 400만원 3년차에는 500만원 그 이후에는 700만원을 넘겨 받아요.

기자: 탈북자들이 하는 얘기가 내가 북한에서 당간부를 했는데 어떻게 막일을 하는가 또는 반대로 배운 것도 없는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애: 그것은 생각이 잘 못 된거예요. 저도 북한에서 군복무도 오래했고 대학공부도 다 하고 왔어요. 그런데 여기서 시작할 때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울 자세를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기를 좀 낮추고 자신감만 있다면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겁니다. 채운다는 것이 기술만  배운다는 것이 아니고 대인관계 , 인덕도 채우고 부지런히 자신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그 사람이 세련돼 지고 마음이 채워져서 사회정착도 빨리 된다고 생각해요. 북한에서 당간부였다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인정 안합니다.

현재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고 노력하는가를 보는 겁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농장원이나 꽃제비를 했어도 여기 와서 박사가 되고 대기업에 다니고 할 때는 이 사람들이 과거를 다 내려놓고 노력했다는 겁니다. 완전정착은 한마디로 취업을 했다는 거예요. 마음을 다 비우고 말하는 것부터 배우고 법과 질서 규정 도덕을 배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자: 내가 남한에 가서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은 있는데 체력이 안따라 준다는 말이 있는데 남한의 노동강도가 북한보다 쎈겁니까?

이미애: 아닙니다. 북한에서 14살 때 탈북해 중국에서 살다가 21살에 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서 도와 줬어요. 현장에서 보니까 이틀을 하고 못하겠다고 나간 겁니다. 보니까 어려서 영양실조가 많이 와서 빈혈이 있는 거예요.  높은데 올라가면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거예요. 그런 분하고는 우리가 일을 못해요. 그사람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탈북자들도 그래요. 탈북민들 35세 미만을 양성해서 10년 후에는 사업주가 되게 하려고 하는데 그런 문제가 있는거예요. 제일 중요한 것이 또 이성문제인데 여성들이 여기 와서 생각이 좀 바뀐게 있는데 그 여자를 놓칠까봐 거제도에서 일하다가  택시비 30만원 주고 서울까지 온 사람이 있어요. 그 정도로 정착이 잘 안되고 들떠 있다는 거죠. 아픈 것도 있지만 사회문화 생활이 반대되는 것도 많고 자본주의를 잘 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정착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건설중장비 회사를 운영하는 탈북민에게 성공적인 사회정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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