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기지 소설 ‘풍계리’ 출간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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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기지 소설 ‘풍계리’ 표지.
북한 핵기지 소설 ‘풍계리’ 표지.
Photo: RFA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 핵기지인 풍계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남한에서 출간 됐습니다. 작가는 1990년대부터 2010년 탈북때까지 약 20년간 풍계리에서 살았습니다. 이 책에선 북한이 1970년대 후반 김일성의 명령으로 풍계리를 핵실험 기지로 확정했고 건설이 이뤄졌다고 전하고 있는데요. 오늘 소설가 김평강 씨와 책 내용에 대해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기자: 소설 풍계리는 그곳에 살았던 작가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실상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무슨 뜻입니까?

김평강: 탈북자의 문학이 지금 한국문학, 북한문학 중간에 탈북문학이 새로운 자리로 된지도 한참 됐습니다. 탈북민으로서는 북한의 이야기를 쓸 때 사실에 입각해서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자기 책임도 있고 소명도 있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써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자: 사실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것을 가미했다는 말인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 인가요?

김평강: 책에 나와 있는 일화는 전부 사실이고요. 거기에 저의 감성이 들어가 구성을 줄거리로 엮었다는 말이죠.

기자: 이 책에서 김 작가는 풍계리는 원래 개천에 칠색 송어가 헤엄쳐 다니고 송이버섯이 지천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는데요. 핵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풍계리가 어떻게 변한 겁니까

김평강: 풍계리는 진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바람과 그 산천의 냄새가 아직도 제 머리속에 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 들어서면서 풍계리를  군인들이 다 독차지 하고 핵기지가 되면서 황폐화 된거죠.

기자: 이 소설에서는 ‘새가 죽었다.’ ‘거기서 난 송이는 김정일에게 보내지 않았다’ 하는데 풍계리 인근으로 소개된 주민들의 방사능 피폭은 어느정도였습니까?

김평강: 그 사람들은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거기서 일하는 원자력 연구사는 알고  있지만 풍계리 땅에 사는 주민들은 자기들이 방사능 피폭으로 아프다는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사람들을 보면 결핵, 뇌졸증이 많고 대장염, 파라티프스 등 그쪽 마을에서 그런 환자가 많았습니다. 생태 환경이 파괴 되고 자연환경이 오염되면서 그곳에 물이나 나뭇잎이나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선 안되는 것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피해가 컸을 겁니다. 하지만 원자력 연구사들은 보호 장구를 갖추고 일을 했기 때문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현실에서는 방사능 피폭으로 죽어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기자: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장성택과 그의 부인 김경희의 연애 과정에서 편지를 주고 받는 이야기 그리고 장성택과 김정일과의 관계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요. 당사자 또는 최측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과 허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이야기를 쓰신 겁니까

김평강: 사실 그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그 사람들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몰입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동창이고 친구였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것을 토대로 글을 쓴 겁니다.

기자: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0년대 말 장마당의 상황이 267 페이지에 있는데요. 잠시 내용를 소개 하지면 “맛난 것만 골라 먹이면서 애지중지 키우던 사랑하던 어린 것들이 흩어져서 산으로 들로 먹을 것을 찾아 집을 나갔다. 이제 메뚜기든 잠자리든 혹은 개루리는 고급이었다”…..이렇게 전하고 있는데 그 당시 참혹상은 평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요? 평양은 어땠습니까?

김평강: 평양도 같았습니다. 황장엽 선생님도 북한사람들이 고난의 행군 시절 3일을 굶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북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할 정도로 간부들까지 다 굶었습니다. 평양 지하철에도 거지들이 득실거렸고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300만명이 아사를 했고 또 추우니까 동사도  많았습니다. 거리에는 비닐박막을 하고 옷을 깔고 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나날이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꽃파는 처녀’를 두고 김정일이 음악가들을 모아놓고 품평회를 하는 데 한 명이 클라멘타인을 표절한 한심한 작품이라고 해서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북한에선 다 알려진 사실입니까?

김평일: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입니다. 풍계리 소설에서 나오는 일화는 다 사실입니다. 그 일을 겪은 작곡가가 추방되는 일이 있었고 보위부에 잡혀가 죽은 일입니다. 예술가들이 피해를 본 사실을 일화를 통해 북한 인권현실을 고발하고자 한 겁니다.

기자: 꽃파는 처녀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평일: 너무 알려지고 명곡이라고 하면서 지금도 세계적인 명곡으로 알려졌죠. 제가 그 노래를 불러볼까요?

꽃 사시오 꽃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틀레멘타인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아름다운 집한채 …

거의 비슷하고 마지막까지 음률이 틀리는 것이 별로 없어요.

기자: 소설 풍계리에서는 북한의 지성인과 예술인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외국 노래를 부르고 중국식 개혁개방을 해야한다. 이런 말을 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특히 장성택과 그의 친구들은 그런 얘기를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김평강: 네, 평양에서는 밖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혁명가만 부르고 전투적인 노래, 김일성 장군님 노래 부르고 회의 할 때도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것처럼 김일성을 찬양하고 그랬지만 사실 지성인들의 마음 속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별장 같은 은밀한 장소를 찾아 모여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소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축출하면서 잡혀간 사람도 많았는데 그런 피해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기자: 414쪽의 두꺼운 책인데 풍계리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김평강: 북한의 진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풍계리가 시리즈로 나와서 북한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가?  북한 주민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김정은은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진짜 수준 높은 마음속에 인간됨을 가진 지성이들이 북한에 있고 풍계리에도 주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탈북작가 김평강 씨와 지난 4월 출간된 그의 소설 풍계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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