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상봉행사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5.10.22
old_couple_reunion_b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이순규 할머니(85)아 북측에서 온 남편 오인세(83) 할아버지가 밝게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과북의 이산가족이 만났습니다. 분단이후 생이별한 1세대 당사자들은 이제 90세를 넘긴 이도 많습니다. 오늘은 남북한 이산가족상봉행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리흥종: 휫파람 소리...

북한 금강산 면회장에서의 올해 88살인 북측의 리흥종 할아버지가 남한에서 간 딸을 위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60년 넘게 떨어져 있다 만난 딸은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됐고 아빠는 딸을 위해 젊을 때 자주 부르던 노래는 들려준 겁니다.

현장음: 아빠 다른 것 하나만 더 불러봐 .....

10월 20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시작된 제 20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 상봉단 96가족 389명과 북측 96가족 141명이 만났습니다. 상봉행사 어떻게 진행되는지 남한적십자사 관계자를 통해 들어봅니다.

적십자: 1차 1진으로 가신  분들은 북한주민이 저희에게 의뢰를 한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찾은 분들이 올라간 겁니다.

기자: 그분들이 몇 분이나 올라가셨습니까?

적십자: 389명이 가셨습니다. 당사자와 가족해서 최대 5명까지 해서 가신 거죠.

기자: 이번에 가신 분들이 2박 3일을 북한에 머무는 겁니까?

적십자: 네 맞습니다.

1차로 북한을 방문한 남한주민이 내려오면 2차로 북한의 가족을 찾는 남한 주민이 방북합니다.

적십자: 두 번째는 남한에서 저희가 북한 가족을 찾는 분들을 선정해서 명단을 북한에 보내  상봉하는 겁니다. 남측 의뢰자가 2차에는 올라가는 겁니다. 만나는 장소는 같은 금강산으로 1차는 북쪽 의뢰가족 2차는 남쪽 의뢰 가족이 만나는 겁니다.

2차로 북한을 찾는 남한주민의 수는 1차 때보다는 적을 수 있습니다.

적십자: 북에서 찾는 가족은 남쪽에서 최대 5명까지 갈 수 있습니다. 2진은 저희 쪽 의뢰자 90명과 그분들의 가족이 같이 가는 겁니다. 의뢰자가 연세가 많으시니까 부축을 하기 위해 배우자나 짐을 들어드리기 위해 가는 분 등 90가족이 가시는 겁니다.

기자: 총 북한을 방문하는 남한 분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적십자: 600여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23일 최종 등록이 끝나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오신다고 했지만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분도 있고 하셔서요.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는 구상연씨(98세, 남)로 북측에 있는 딸을 만나고 북측 최고령자는 리흥종씨(88세, 남),남한에서 간 딸을 만났습니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지난 2000년 8월에 남북한 100명씩의 이산가족이 고향방문단이란 명목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만나다가 4차 때부터 17차인 2010년까지는 금강산에서 남북한 총 3,600명이 상봉했습니다.

그러다가 금강산에 관광을 갔던 남측 관광객 박왕자 여인의 피살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산가족상봉행사도 중단됐습니다.

남한 통일부에 따르면 그동안 상봉행사를 원하는 남한 주민 12만8824명의 신청자 중 43%에 해당되는 5만5960명이 사망하였고 생존자 중 80세 이상 고령자는 50%인 3만6247명에 이릅니다.

이번 상봉행사에도 90세 이상 고령자가 적지 않아 남측에서는 방문단의 건강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모습니다.

적십자: 네, 당연히 같이 갑니다. 의료진이 의사 5명, 간호사 5명, 응급차 5대가 지원단으로 1진으로 갔습니다.

가족이 함께 하지 못하고 떨어져 살면서 생사확인조차 못하는 상황이 분단이후 벌어지는 한반도 상황입니다. 이산가족상봉행사도 남북관계가 차가울 땐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걸림돌인지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의 말을 들어봅니다.

도희윤: 남쪽은 상봉행사에 참여하지 못해서 병이 나신 분도 있고요. 정부 차원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분단이후 모든 정권의 일관된 기조였습니다. 다만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왜 북한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보냐하면 이들은 이산가족의 대상자들을 철저하게 감시해왔습니다. 즉 남쪽과 연계해서 자기들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으로 인지하고  그 부분에 대해 감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생활상 불이익을 줘왔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잘 못 번져 나갔을 때는 자기들 체제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는 겁니다.

또 북한 주민이 남쪽의 가족을 만났을 때 남한의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을 꺼리는 겁니다. 북한 지도부는 남북한 경제적 차이 국제적 위상 등을 다 알고 있지만 주민은 모른다는 겁니다. 주민들이 현실을 알면 자기들의 체제가 약화될 우려까지 하는 겁니다. 모든 이산가족의 만남 자체를 결국 정치적으로 자기들 체제유지와 연계해 보기 때문에 이산가족상봉 문제가 쉽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처음 이산가족상봉행사가 시작됐을 때는 남한주민의 관심이 대단했지만 이제는 그때만 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만큼 1세대 당사자들이 많이 사망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일 수 있습니다.

도희윤: 정말 생존해 계시는 1세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만남이나 서신교환 또는 화상상봉 문제가 상시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북한의 근본적 인식변화가 없으면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만약 1세대의 염원이 풀리지 않는다면 결국 남은 것은 이들의 자녀와 유해송환 문제가 남을 겁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분들의 마지막 안식처라도 마련해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이산가족상봉이 변화를 하지 않을까 보고요. 못다한 꿈을 이룬다 소망을 이뤄준다는 차원에서 의미는 있는 겁니다. 1세대 상봉의 애틋함은 떨어진다고 해도 연속적인 측면에서 의미는 계속 가져갈 수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소망에서 이제 서서히 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만났다가 헤어지는 순간은 다시 만남의 기약이 없기 때문에 고통입니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한 때입니다.

도희윤: 저희는 분노를 느끼는 겁니다. 이산가족상봉 문제를 예전의 동서독과 우리 남북한 현실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내부적으로는 정치적으로 해석했을 수 있었겠지만 외부적으로는 인도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만남을 허용했습니다. 분단해서 통일될 때까지 이산가족 상봉 교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동독의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저는 공산주의의 사악함을 이산가족상봉행사가 있을 때마다 떠올리면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남북한 이산사족상봉행사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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