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자 빨찌산 서철

김주원∙ 탈북자
20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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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시절 절친한 동료들과 찍은 사진으로, 가운데는 김일성, 그의 왼쪽은 안길 전 보안간부훈련대대부(1946년 당시 군 간부양성소) 참모장, 오른쪽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이다. 최현은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부친이다
사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시절 절친한 동료들과 찍은 사진으로, 가운데는 김일성, 그의 왼쪽은 안길 전 보안간부훈련대대부(1946년 당시 군 간부양성소) 참모장, 오른쪽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이다. 최현은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부친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일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싸우던 빨찌산 만주파 출신들은 대부분 소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일 항전에 참여했다가 해방 후 북한의 건국사업에 큰 몫을 담당했던 인물들은 전부 남로당계와 중국 연안파 출신, 소련파 출신들이었습니다. 만주파 우두머리였던 김일성은 중국에서 ‘길림육문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졸업도 못하고 중퇴하였습니다.

그 중 최용건은 평북도 태천군에 있던 오산중학교를, 김책은 중국 길림성에 있던 동흥중학교를, 안길은 중국 길림성 용정에 있던 대성중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이들은 같은 만주파 출신이라고 하나 김일성 계열은 아니었습니다. 최용건과 김책, 안길은 모두 동북항일연군 지휘관들이었으나 1940년 일제 관동군의 대토벌 작전이 있기 전까지는 김일성과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일제의 토벌이 시작되자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동북항일연군 부대들은 소련으로 넘어갔습니다.

김일성은 소련의 하바롭스크 주로 도주해 88혼성여단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는데 그곳에서 최용건과 김책, 안길을 처음 만났습니다. 김일성의 만주파 빨치산 출신중에 고학력자는 중국 흑룡강성 할빈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서철이 유일했습니다. 1907년생인 서철은 함경북도 온성군의 빈농 가정에서 출생해 부모님들이 벌어 보낸 돈으로 할빈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의학전문학교까지 졸업한 서철은 해방 전까지 동북항일연군에서 군의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중국인과 조선인들로 구성된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에 입대하여 항일 무장투쟁에 참전했습니다. 해방 후 김일성 계열의 만주파 출신들은 북한의 군부를 장악하고 고학력자들로 구성된 연안파와 소련파를 가혹하게 숙청했습니다. 지식인들에 대한 만주파 출신들의 불신감이 워낙 커서인지 해방 후 서철은 이렇다 할 요직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철은 정치나 경제, 외교문제와 남북문제에 있어서 김일성이 직접 조언을 들을 정도로 매우 아끼는 인물이었습니다.

서철은 23살 나던 1930년 5월 남만에서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청년동맹에 가입하였고 25살이던 1932년 11월에 양정우가 이끌던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에 군의처장으로 입대했습니다. 군사직책으로 따지면 김일성보다 훨씬 높은 급이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양정우가 이끌던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2방면군 소부대 책임자였습니다. 제1로군에 김일성과 서철, 최현, 오중흡, 안길, 김일, 이동광이 있었고 제2로군에 최용건, 강건, 이학복이 제3로군에 김책, 마덕산, 서광해가 있었습니다. 같은 동북항일연군이라 하지만 활동범위가 달랐던 만큼 김일성은 일제의 토벌을 피해 소련의 하바롭스크로 도주한 후 그곳에서 88혼성여단에 배속될 때까지 같은 부대에서 싸우던 최현, 오중흡 외엔 서로 얼굴도 마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김일성과 함께 싸운 서철은 의학자로 굳이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철은 안락한 의학자의 길보다 목숨을 내건 항일무장 투쟁에 뛰어들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서철을 주인공으로 한 북한영화 ‘혁명의 승리를 확신할 때’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영화 ‘혁명의 승리를 확신할 때’는 서철이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에 실은 ‘혁명의 승리를 확신할 때’를 원작으로 제작됐습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면서 많은 자료들이 폭로되었는데 그 중에는 1943년 초여름 하바롭스크 인근 브야츠크 촌에 있던 88여단 본부 앞에서 여단장 주보중과 대대장 김일성이 중국인 대원들, 조선인 대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사진속에는 북한의 전 노동당 검열위원장이었던 서철, 전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 전 민족보위상 김창봉, 전 제1부수상 김일과 최용건, 전 조직부장 김경석이 있었는데 그때까지 누구도 김일성이 앞날의 북한 지도자가 되리라 생각을 못했습니다.

사진속의 전 민족보위상 김창봉은 1967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를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어 생존여부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철은 김일성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 한 덕에 높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해방 초기 높은 직책은 받지 못했으나 1947년 9월 대남공작을 전담하는 강동정치학원 군사부원장을 거쳐, 외무성 제2국장, 1953년에는 중국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로, 1955년부터는 북베트남 주재 북한 대사관 대사로 편안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서철은 1958년 9월 ‘반 종파 투쟁’으로 소련파 최종학이 숙청되면서 그를 대신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이렇게 서철은 김일성도 조언을 받을 만큼 아끼는 부하였지만 김정일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 고마운 은인이기도 했습니다. 서철은 1992년 9월 30일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북한의 기록영화(다큐) ‘위대한 영장을 모시여’에는 서철의 시신을 돌아보며 오열을 터뜨리는 김정일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유일한 장면입니다.

서철의 경력을 보면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북한의 당당한 고위층 대열에 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서철의 거듭되는 승진과 높은 대우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오르기 위해 경쟁자들을 물리치던 시절과 겹친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다른 경쟁자들을 다 물리치고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선출되기까지엔 김일성 빨치산 출신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 중에서도 의사자격이 있고 빨치산 활동을 통해 의료적 경험이 특출했던 서철은 김정일과 남다른 관계였습니다.

김정일의 친모 김정숙은 변변한 의사도 없던 하바롭스크의 브야츠크 촌에서 김정일을 무난히 해산하게 되었는데 여기엔 군의로서 서철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랬던 것만큼 서철은 김정일의 친모 김정숙과 가까웠고 김정일을 남달리 보살폈습니다. 사실 김정일은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와 배다른 동생 김평일과 후계자 경쟁을 하기엔 지지 세력이 많지 않았습니다. 초기 빨치산 출신들도 김정일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을 더 지지했습니다.

다급했던 김정일은 빨치산 출신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제일 먼저 서철을 찾았습니다. 서철은 김일성 빨치산 출신들 중에 김정일이 마음 놓고 속생각을 털어 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조언자였습니다. 서철은 즉각 김정일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빨치산 출신들이 김정일을 지지하게 된 배경엔 서철의 노력이 컸습니다. 자신이 해산 방조를 하였던 김정숙, 평소 자신과 가까웠던 김정숙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자고 서철은 빨치산 출신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끈질기게 설득을 하였습니다.

결국 김정일은 당시 군부와 노동당 주요 직책을 차지한 빨치산 출신 원로들에 의해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1974년 2월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비밀리에 채택됐습니다. 그런 서철이었기에 김정일은 평생 동안 남달리 아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철의 아들 서동명도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고속승진을 거듭했습니다. 서동명은 1990년대 중앙당 38호실 24국 산하 향산지도국 초급당 비서였는데 저는 1995년부터 향산지도국 수출원천 분석실에 배치돼 서동명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서철에 대해 남보다 아는 것이 많다면 아마 서동명을 통해서였을 것입니다. 서동명은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동명이 김정은의 관심을 받을지 의문입니다. 제 고모부, 배다른 형까지 서슴없이 목숨을 빼앗은 김정은이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 서철처럼 서동명을 대해주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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