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목장의 노루사냥

김주원∙ 탈북자
2014.12.09
jeju_island_deer-305.jpg 제주목장의 노루.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여러분들은 노루고기를 드셔본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은 운곡지구에서 김정일과 고위층 간부들이 즐기던 노루사냥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노루는 한반도 전 지역에 살고 있는 초식동물입니다. 숲이 우거져 숨을 곳이 많은 10월경까지는 산 중턱 이하에서 살고 겨울이 되면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눈 덮인 12월 하순부터는 먹이를 찾기 위해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옵니다.

4월경이면 암컷은 새끼 낳이를 위해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데 5월 단오를 전후하여 한배에 한두 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는 낳아서 한 시간이면 걸을 수 있고 3일이 지나면 사람이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뛸 수 있습니다.

노루는 밤에 산기슭으로 내려와 곡식이나 풀을 먹고 새벽에 돌아가는데 이때 길목을 지켰다가 사냥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몰이사냥이 있는데 노루는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길어 오르막은 잘 톱아 오르지만 내리막길은 잘 달리지 못합니다.

이 약점을 이용해 여러 명의 몰이꾼들이 산기슭을 향하여 노루를 몰면 밑에 있던 사냥꾼들이 활이나 총을 쏘아서 잡았습니다. 물론 이런 몰이사냥방법은 인구가 적은데 비해 노루가 아주 많았던 옛날에나 가능했습니다.

숲도 다 파괴되고 마구잡이 사냥으로 노루가 거의 멸종상태인 북한에선 몰이사냥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북한에서 유일하게 몰이사냥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운곡지구였습니다.

운곡지구는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막은 마두산, 상산, 용림산이 특별보호림으로 주변을 철저히 감시하기에 외부인들이 절대로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울창한 숲속에는 많은 노루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지어 다른 지방들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산채로 잡아 올린 선물용 노루도 운곡지구에 풀어놓아 서식시켰습니다. 이렇게 김일성 일가를 위해서는 좋다는 동물들을 다 키우면서도 정작 이곳 관리원들에겐 개인용 가축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김일성 일가만을 위한 식재료들과 사냥용 야생동물 서식지여서 북한의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특징들이 많았습니다. 개나 돼지, 닭, 고양이 등의 가축은 식용이든 애완용이든 외부에서 반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개인들에게 가축을 허용했다가 병이라도 돌면 목장 내 식재료나 다른 동물들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외부에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꾼들도 목장 내부에 그대로 들어 올 수 없었습니다.

길목을 지켜선 경비병들이 몸을 샅샅이 뒤졌고 도중식사나 외부의 형제들이 만들어준 음식도 이곳에서 깨끗이 버려야 했습니다. 외부에 나갔다 올 땐 초소 주변의 8호 검진대에서 전염병 감염여부를 확인한 후에야 맡은 일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운곡지구에 서식하는 노루들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의 사냥감으로 북한에서는 아무리 높은 간부라 해도 절대로 넘볼 수 없었습니다. 특히 노루의 서식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곳에는 수많은 먹이 거치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가을철 밭에서 수확한 무시래기나 마른 풀들은 겨울철 노루들이 먹을 수 있게 먹이거치대에 얹어 주어야 했습니다. 이런 환경으로 하여 운곡지구는 ‘흔한 게 노루’라는 말이 있을 만큼 무리를 지은 노루 떼를 어디서나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의 사냥일행은 흔히 두석대의 일본산 사파리차량을 타고 나타납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겨울철 김정일의 사냥행렬은 주로 밤중에 목격되었습니다. 갑자기 숙소의 창문이 환히 밝아지면 또 김정일이 사냥을 왔구나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한 대의 차량위에 주변을 대낮처럼 밝히는 탐조등이 켜져 있었는데 운곡지구 종업원들은 밤중에 갑자기 외부 조명이 보인다든지 사냥총소리가 들리면 절대로 문을 열지 말고, 밖을 내다보지도 말라는 규정교육을 수시로 받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사냥일행이 도착하면 운곡목장의 곳곳에 호위사령부 군인들이 그물처럼 덮여 무장경계를 섰습니다. 한번은 실수로 문 열고 밖에 나갔던 종업원이 근처에서 경호를 하던 호위사령부 군인의 총 탁에 맞아 정신을 잃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 종업원은 당위원회와 경비관리국에 끌려 다니며 조사를 받고 ‘비판서’도 여러 번 반복하여 썼으나 끝내 용서를 받지 못했고 다른 종업원들의 본보기로 운곡지구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차량에서 내린 김정일과 그 일행들은 늘 승마복차림에 긴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반드시 여성들과 동행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키가 늘씬하고 젊어 보여 동생 김경희나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는 아니라는 느낌이 첫눈에 와 닿았습니다.

조명등이 비칠 때마다 ‘땅!’ 하는 총성과 함께 노루가 쓰러졌고 쓰러진 노루는 호위성원들이 차에 실었습니다. 김정일은 이곳 룡담분장에서 몇 마리의 노루를 잡고 동행한 여성들과 룡복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쪽에서도 총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노루는 먼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죽과 고기, 뼈까지 보약재로 유명한 동물입니다. ‘삼국사기’에도 노루를 잡은 기록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당시에 우리가 흔히 보는 누런색의 노루 말고도 흰색이나 자색노루도 잡힌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육류로서 노루고기 脯를 으뜸으로 한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노루고기를 얇게 저며서 참깨를 박아 말린 이 노루고기 포는 늘 먹어도 맛이 있고 영양이 풍부하여 주전부리 이를테면 간식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방에서 노루의 피를 장혈(麞血)이라고 하는데 허약한 사람들에게 먹도록 권유합니다. 노루피를 술에 넣어 만든 술은 ‘장혈주’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왕들과 봉건관료들이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이 술을 자주 마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노루고기 곰국은 관절에 효과가 있어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이 뛰어난 건강식품으로 애용하였습니다. 노루고기를 하루 종일 폭 삶으면 뼈까지 노긋노긋 해지면서 국물이 걸쭉해지는데 이것이 곰국입니다.

국물을 채로 받아 식히면 묵처럼 응고되는데 이것을 찬 곳에 보관하고 하루에 1~2번 데워서 먹으면 겨울철 보양식으로 최고입니다. 노루고기는 날 것을 말려도 맛이 뛰어나 옛날 양반들은 육포(肉脯)로 만들어 많이 먹습니다.

또한 육질(肉質)이 만문하고 다른 야생동물의 고기에 비해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아 전골요리를 해도 좋고, 양념을 묻혀서 구이를 해도 맛과 건강에도 아주 좋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야생동물의 고기는 봄, 여름에는 맛이 없고 가을, 겨울철이 되면 살이 찌고 기름기가 많아지면서 독특한 풍미가 나는데 노루고기는 가을과 겨울은 물론 봄과 여름에도 맛이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1988년 겨울 북한에서 홍역이 발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 철도여행도 제한하고 유동인원에 대한 통제도 강화됐습니다. 그런데도 김정일 생일 2월 16일을 앞두고 전국에서 선물용 노루 사냥이 허용됐습니다.

사냥도중 실수로 죽은 노루의 피는 지역 당위원회의 허락을 받고 홍역 예방약으로 사용했는데 그 때 노루의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었던 사람들은 홍역에 전염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노루의 고기와 피는 인간의 면역력을 높여주었습니다.

옛날에는 일반인들도 노루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노루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김일성 일가에 올리는 선물로 사냥이 허용되는 노루는 산채로 잡아야 합니다. 사냥도중 상처가 나거나 죽으면 허락을 받은 간부들이 소비합니다.

사냥을 즐겼던 김정일이 운곡지구에서 허송세월을 많이 보냈습니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노루고기도 누구보다 많이 먹었겠는데 제명을 살기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김정은이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운곡목장을 물려받았습니다.

집권 첫해 열병식장에서 김정은이 크게 외친 말이 있습니다. “다시는 우리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지 않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해마다 수천억의 자금이 탕진되는 운곡지구만 해체해도 북한의 인민들이 조금이라도 허리띠를 풀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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